신앙
오늘날 철학의 한계와 성경의 인문학
NOMAD in Seoul
2022. 1. 16. 23:28
철학이란 뭘까? 사람들은 '철학을 갖고 살아야 한다'라고 하지만 사실 철학은 읽으면 읽고, 파면 팔수록 이해되지 않고 알 수 없는 얘기만 한다. 왜 그런 것일까? 그건... 조금 과격하게 얘기하면 오늘날의 철학은 껍데기... 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철학을 의미하는 'philosophy'의 어원을 살펴보면 이는 '지혜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혜'란 무엇인가? 지혜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다. 이러한 지혜의 정의는 철학이란 결국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해석을 의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기까지다. 철학은 더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고찰 없이 껍데기,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썰을 풀면 그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그 재료에 대한 이해 없이 맛만 설명한다고 해서 그 어떻게 그 아이스크림의 맛이 나오는지를 이해할 수 있나? 없다. 우리가 아이스크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아이스크림의 재료와 그 재료의 성질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이 빠진 철학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인문학이 빠진 성경도 껍데기에 불과하다. 성경을 껍데기만 읽으면 그게 어떻게 한 종교의, 아니 사실 개인적으로 기독교를 종교로 분류하는 걸 이제는 좋아하지는 않는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는 다양하게 정의되지만 보통 사람들이 가장 공감할 정의는 아마도 '신을 숭배하여 삶의 목적을 찾는 일'일 것이다. 기독교가 신을 숭배해야 한다고 하나? 삶의 목적을 얘기하기는 한다. 그건 신이 내 안에 심어 놓은 것을 깨달아 알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살아내는 것 정도다. 그리고 성경은 사실 그 원리를, 그걸 찾아가는 원리와 사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게...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종교일까?
기독교는 어떤 신도 '숭배'하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성경은 사람이 어떤 존재이고, 신은 어떻게 일하며 이 세상의 질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서다. 그리고 성경은 궁극적으로 인간은 각자 자신 안에 심겨져 있는 것을 찾아 살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그건 자신만의 힘이 아니라 신과 예수님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설명해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단순하게 설명해 줘봤자 인간은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시는 과정을 통해서 그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느끼고 깨달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사고방식, 사람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알고자 하는 생각과 마음 없이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건 결국 껍데기만을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껍데기만 보게 되면 다원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껍데기만 놓고 보면 사실 종교들은 몇몇 지점들 외에 큰 방향성에는 차이가 없어보이니까.
오징어게임에서 다리를 건너는 게임을 생각해보자. 겉으로는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판 중에 하나를 밟으면 떨어져 죽고, 다른 하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는 그 게임.
겉으로 똑같아 보인다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인가? 아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접 밟아보지 않고 그 판으로 보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회가 된다면 그 판을 들어보고, 판을 받치는 받침을 봐야 한다. 그 판의 본질을 봐야한단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 '판'은 무엇인가? 결국은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진리를 말하고 있는지, 다른 종교가 진리를 말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와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들여다 보고 고민해야 한다. 그런 본질적인 고민이 없으면 불가지론자나 다원주의자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종교를 믿으면 지옥에 가냐고? 그런 어리석은 질문도 성경을 제대로 읽으면 할 수 없는 질문이다. 성경의 초점은 지독히도 현실에 맞춰져 있다. 사후에 어디에 가는 지는 나도 모르겠고, 성경에도 그게 하이라이트 되어있지는 않다.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하는 건 사후에 이렇게 저렇게 되는 게 아니라 지독히도 '현재'를 위해서다. 성경은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신이 인간을 어떤 존재로 어떻게 창조했는지에 대한 원리를 담고 있지 전우주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신은 인간과 소통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거기까지만 궁금해하고, 거기까지만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세상과 인간과 나의 본질을 들여다 보기 위한 노력을 살면서 하루, 하루를 살아내면 된다. 그 과정에서 주신 것들을 누리면서.
성경에서도 '사람'이 먼저다. 사람을 알고 나면 그 다음에 그 이면의 것들이 보이는 것이지 신비주의적으로 다른 게 있고 그 다음에 사람이 오는 게 아니다. 예수님도 그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