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여호수아 1-4장 말씀 묵상

NOMAD in Seoul 2020. 3. 10. 09:39

하나님은 항상 언약궤가 앞에 지나가게 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신비주의적으로 그러셨을까? 아니다. 그건 현실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이 본인들을 이끌어가고 계심을 잊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그렇게 질투하고 본인이 하나님 되심을 기억하게 하시려 할까? 사실 하나님이 질투가 많다는 표현은 일면 하나님을 쪼잔하게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그게 그렇게 좋게 보이지만은 않을 수 있는데 그건 인간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두려워하지 않으면, 믿지 않고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 본인 힘으로 살려고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런 하나님은 현대사회에서도 그 모습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신다. 하나님은 보통 정말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부인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뤄지도록 하시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걸 하나님이 본인이 하신 일을 티낸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사실 하나님께서 그 정도 티(?)를 내주시는 건 우리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더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치가 '세상에서 성공하고 세상에서 본인이 인정받는데' 초점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그렇게 되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도 더 좋다. 이는 조금만 풀어지면 습관처럼(?) 하나님을 떠나는 인간이 그러한 경험을 함으로써 하나님과 멀어지려고 할 때마다 그렇게 일하셨던 하나님이 떠오름으로써 중심을 다시 잡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강제하시거나 질투하시거나 하는 것은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굉장히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내 중심으로 평가하면 하나님이 웃기는 분, 쪼잔한 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평가를 하게 되면 하나님이 웃기신 분이 아니라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하기 때문에 본인의 마음이 어렵더라도 그 일이 일어나게 허락하시는 분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은 기준과 시선과 전제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1장에 나오는 이방 여인의 고백은 참으로 놀랍다. 그녀는 [너희의 군사력이 무섭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의 하나님을 무서워했다. 성경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뭔가 대단한 율법을 지키며 산 여인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이 했다고 그녀는 믿었다. 어렸을 때는 이 부분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나이가 들수록 그게 얼마나 큰 믿음인지가 느껴진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항상 교회 테두리에 있어서 나쁜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거, 좋은 일은 내가 잘나고 운이 좋았던거라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녀는 단 한 번도 어떤 교육이나 훈련도 받은 적이 없는데 그 신을 믿었다. 그런 믿음,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