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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관점에서 코로나에 대한 단상

NOMAD in Seoul 2020. 11. 21. 08:34

그저께 둘레길을 걸으면서 문득, 이후에, 내가 죽은 이후의 사람들은 코로나를 어떻게 기억할지를 생각해 봤다. 그들에겐 우리에게 스페인 독감이 주는 느낌 정도를 받지 않을까 싶었다.

이성과 합리성만 강조하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코로나를 어떻게 신앙의 눈으로 봐야 할까? 이성과 합리성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상적으로, 현실에서 그게 왜 일어나는지는 그것대로 따지고 분석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이 땅에 왜 일어날 수 있게 [허락]하셨는지도 고민하고, 기도하며, 공동체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코로나 상황에 내가 지금 이 상황에 왜 처하게 만드셨는지도 고민하며 기도해야 한다.

기도만 하지 않고 고민도 병행해야 하는 것은, 그래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나이들어감에 따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얼마나 모르는지에 놀라고, 나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지 않나?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허락]하시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최소한 지인들을 기준으로 했을 때 생각의 질과는 별개로 양이 상위 1% 안에는 들어가는 사람인 듯하다. 그리고 나의 행복이 굉장히 중요한, 심지어 로펌 인턴 면접에서도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고 했더니 '구진씨는 굉장히 행복에 집착하시네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내 자신을 잘 아는 편이라고 착각했었다.

내가 광야로 받아들이는 그 기간은 나에 대한 나의 편견들이 깨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야 내가 살아온 38년여 동안의 삶에서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했던 결정들이 보였다. 그게 내 진짜 모습이었고, 내가 내 모습이었다고 생각하는 다른 모습들은 세상이 '너 정도 갖춘 사람은 이 정도는 되어야지'라고 심어놓은 생각들이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이성과 합리성을 갖추기 전부터, 세상 속에서, 세상의 영향을 받으면서 사니까. 우리가 세상에서 격리된 듯한 광야의 시간은 평생동안 우리 안에 쌓여있던 세상의 영향력, 세상이 쌓아놓은 껍데기, 세상의 가치관을 벗어내는 기간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진짜 내 모습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코로나는 과학적인 차원에서 분석하고 여러 작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존중해야 하고, 그건 [현실]에서,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노력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차원에서의 고민과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건 거대하게 인류와 세계가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내]가 처하게 된 상황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다 같은 코로나라고 해도 그로 인해 우리가 처하게 되는 상황은 다 다르지 않나?

거대한 인류와 세계적인거, 우리는 알 수 없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어떤 목사님들은 이게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일이 어쩌니 하셨는데, 뭐 그런 면은 언제나 있지. 코로나만 그런가? 세상 모든게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건데? 말도 안되는 설교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당연한 설교를.

그게 중요하지 않다. [왜]가 핵심이다. 그리고 그런 설교들은 거창하고, 거대하게, 정치적인 해석을 하려 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거, 그들도 모르고 어떤 인간도 온전히 모르고, 더 중요하게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 설사 안다고 해도 우리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없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결정, 유일한 변화는, 내 안에 있다. 내 옆에 한 사람도,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우린 코로나와 관련해서도 내가 처한 상황을 보고, 내 상황을 하나님께서 왜 허락하셨는지를 고민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그걸 알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분 앞에 나가야 한다.

코로나 시대에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 상황을 왜 허락하셨는지를 깨닫는 것.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2차, 3차 유행이 오가는 현실에서 우리는 평안할 수 없다. 어떤 인간도. 하지만 그것을 깨닫는 순간 이 시간도 감사와 평안으로 지낼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자신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 그 과정에 시간을 쓰지 않는다. 현실에서 먹고 사는 고민,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아둥바둥 산다. 그것에만 집중하면서. 이 땅의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사람들은 자신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 생각하지만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그건 대부분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남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처럼 옮기는 것들이다. 결과론적으로 그렇게 되어서 그렇게 전달하면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생각하는게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들다보니 대부분 사람들은 그런 고민하지 않고 자신이 뭔가 본능적으로 꽂히는데 집착하기 시작하고 그걸 본인 생각이라 착각한다는데 있다. 지금 내가 내 생각이라고 말하는 것이 진짜 나의 생각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렇다고 착각하고 전달하는 것인지를 우리는 항상 살펴봐야 한다.

내 자신을 알아야, 내 진짜 모습을 알아야 하나님께서 내 안에 심어놓으신 계획을 이해할 수 있고, 내 삶에서 일어난 일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자신이 안다고 착각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게 하시는 일들에 대해 원망한다. 신이 없다고 한다.

오늘날 교회가, 기독교라는 종교가 이 땅에서 힘을 잃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난 형식으로서의 교회,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힘을 잃었을지 몰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힘을 잃은 것이 아님을 안다. 코로나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