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장을 보며 변호사시험을 보던 시절이 떠올랐다. 정말 최선을 다해도 계속 떨어지던 시절. 주위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것 아니냐고, 집중하지 않는게 아니냐고 했지만 난 정말 내 몸과 마음을 갈아넣고 있었다. 하나님께 당신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냐고 울부짖었고, 분노했다. 이삭은 그러고도 남을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우물을 파면 그 동네에 있던 이방인들이 자신의 것이라며 그들을 내쫓았다. 내가 한 노력인데, 내가 판건데. 그는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런데 그는 한번도 불평하지 않고 움직였다. 어떻게 그러할 수 있었을까? 이삭의 젊은 시절이나 이삭의 에피소드가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그건 아마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 안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27장으로 가면 야곱이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 야곱과 그의 어머니는 그냥 사기꾼이다. 그리고 리브가가 하는 행동을 보면 '아니 하나님은 겨우 이런 사람을 배우자로 주려고 그렇게 임하셨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같은 아들인데 그 중에 한 명을 편애해서 본인 남편을 속이는 아내라니... 그것이 인간이 가진 한계일 것이다. 누군가를 편애할 수 밖에 없는, 기울 수밖에 없는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일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가 구현되지 않으면 분노하고 하나님을 판단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것들마저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것을 하나님은 창세기 26-27장을 통해 보여주신다. 우리가 진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지금 당장 억울하거나 이상해 보여도 그것까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을 믿고 묵묵히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게 기독교인 다운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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