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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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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지원금을 신청하며 알게 된 것 작년 초에 아는 형이 프리랜서로 글쓰는 일에 나를 추천해 줬다고 했다. 그 후 코로나가 터졌고, 심지어 그 형도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 일은 없던 일이 되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작년에 내가 얼마나 벌었을까? 모르는 일이다. 본격적으로 프리랜서 탈을 쓰고(?) 나선 건 첫 해였으니까 (2019년에는 근로소득도 있었고, 사실 프로젝트성 일이 훅! 들어왔던 면이 있어서...). 어찌되었든지 간에 이래저래 해서 10월 정도까지는 잔고가 줄지 않을 정도의 수입은 유지가 되었고, 2차 지원까지는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내가 지원금을 받아야 할 정도로 힘든 것도 아니었고, 나보다 힘든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11월부터는 수입이 없진 않았지만 잔고를 깎아먹기 시작했고, 이번에는 신청해야겠다 싶..
글이 안 써진다 고민이 많아서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은 처음이다. 난 보통 고민이 있으면 그걸 글로 쓰면서 해결책을 찾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민이 많아서, 글이 써지지 않는다. 뻔뻔스럽게 '프리랜서의 일상생활'이란 매거진으로 만들었지만, 난 자발적으로 프리랜서가 된 것은 아니었다. 로스쿨을 졸업했지만 변호사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재미있어서 박사과정을 마쳤는데, 그 이후에 내게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도교수님께서 기관장을 하고 계시기에 거기 업무를 일부 하면서 받는 돈이 조금 있지만 그 돈만으로 생계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불안했고, 파트로 일했던 회사에도 들어갔다 나와 맞지 않아서 나왔으며, 그렇게 등 떠밀리듯 프리랜서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내 프리랜서 생활은 다른 '그..
슬럼프가 왔다 지난 금요일. 회의 직전에 난 혼자 신이 난 상태였다. 회사로 돌아갔다 나온 이후 처음으로 주말에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회의 중간에 논문 개재 탈락 이메일을 받았고, 그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때부터 슬럼프를 겪게 되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럴 땐 모든 걸 다 놔버려야 해. 마침 마감이 급한 것도 없잖아'라고 마음먹었다. 마감을 맞춰야 하는 일들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멍을 때리면서 보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내게 약간의 시간과 공백이 허락되자마자 내가 슬럼프에 빠진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논문 개재 탈락이라는 사실도, 그제야 깨달았다. 로스쿨을 다니다 ..
돈이 안되는 일을 하는 이유 여기에서 '돈이 안 되는 일'은 '돈을 받지 않고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일하는 것에 비해서 훨씬 돈을 적게 받는 일을 의미한다. 프리랜서들의 기준에서 그런 의미의 '돈이 안 되는 '은 내가 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썼을 때 보통 받을 금액보다 단가가 더 낮은 프로젝트나 건수를 의미하는데, 그건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장당 10만 원이 '돈이 안 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장당 5만 원을 받는 일도 '큰돈'일 수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들 중에는 내 단가를 기준으로 '돈이 안 되는 일'이 있다. 그 일은 다른 일들보다 받는 금액은 50% 수준인데, 내가 갖고 있는 전문성도 더 많이 투여되고 최근에는 쓰게 되는 시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사실 의리와 기회의 차원에서..
마지막 연주가 아니길 기도해야지 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 시절에 하셨던 밴드반 OB연주를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하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트롬본을 부셨고, 아버지는 클라리넷, 나는 트럼펫을 하지만 사실 아버지의 그 OB연주에 단 한 번도 같이 서 본 적이 없는 게 항상 마음이 편치 않다. 내가 악기를 워낙 오랫동안 놓고 있기도 하고, 사실 거기 계신 분들은 내 상황들을 대충은 알고 계시다 보니 내 상황이 나아지기 전에, 그분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부끄러워하시지 않을 수 있는 시점에 같이 연주를 서고 싶었는데 그 시기가 아직도 오지 못했다. 그런 아버지께서 내년에는 반드시 시골로 내려가시겠다며 요즘에는 귀농 교육을 받고 계신다. 난 아버지께서 시골에 가서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대기업에 다니시다 정년퇴직하고 나서 ..
난 글을 그냥 쓰는 줄 알았다. 글을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글 쓰는 게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편이었다. 브런치에서 글을 많이 쓸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술은 해야 할 때만 하고, 담배는 아예 피우지 않으며,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게임은 하지 않아 왔기에 난 내가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게 스트레스 해소 방법인 동시에 취미 비슷한 것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다. 글쓰기가 특기는 아니어도 취미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어쩌면 그 생각도 오만이었다는 생각이 지지난주에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프리랜서로 돌아와서 들더라. 글 쓰는 게 어려웠다. 겨우 3개월 정도 글을 꾸준히 쓰지 못했을 뿐인데 내 머리도 손도 녹슬어 있더라. 그리고 프리랜서로 하는 일들이 엄청 밀려 있으니 브런치에서 쓰고 싶은 글들은 잡히지가 않더라. 그러면서 처음..
프리랜서에게 사람이란? 연락이 조금 늦어지던, 기다렸던 연락을 줬던 일감에 대한 연락이 왔다. 그 회사를 방문해서 계약조건에 대한 논의를 했고, 원래 금전적인 보상이 1순위가 아니었기에 아무런 무리 없이 얘기가 수월하게 오갔다. 그리고 내가 할 업무에 대한 브리핑을 듣는데 폴더에 내 이름이 이미 있었다. 나: 뭐야? 나 이미 업무 할당되어 있던 거야? A: 그럼요. 뭐라고 생각했어요? 나: 난 계약이 안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A: 무슨 소리예요. 00 없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그렇다. A는 이미 내게 일을 주기로 했지만, 조건이 어떻게 맞춰질 수 있을지를 몰라 확답을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고마웠다. 나를 이렇게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프리랜서에게 이렇게까지 본인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고마운 ..
프리랜서 복귀 삼일차 지난주 금요일이 회사에 나간 마지막 날이었다. 이번 주만 해도 그 회사에서 알던 아이들과 식사 자리가 3번이나 있어서 실감은 나지 않지만, 난 공식적으로 그 회사와의 4대 보험 관계가 끊어졌다. 곧 건강보험 납부하라고 용지가 날아오겠지. 다시 프리랜서가 된 게 실감이 나지 않은 건 아마도 쉴 틈도 없이 그다음 날부터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몰아쳤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겸업 허용을 조건으로 회사에 들어갔다 보니 회사일을 하느라 밀려서 처리하지 못한 일들의 마감일이 다 10월 중으로 몰려있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엄청 많았다. 오늘 오전까지 보내야 하는 글 하나, 내일까지 보내야 하는 글 하나 작업물 하나, 이번 주까지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 하나. 좋게 말하면 항상 일복이 있는 편이다.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