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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 혹은 개독/일반적인 신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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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이란 조금 어려운 얘기를 하려고 한다. 아주 개인적이면서 예민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우리 집은 물질적인 영역에서 많이 구속되어 살아온 편이다. 그게 이상하거나 비정상적이지 않다. 부모님은 모두 가정 형편이 여유롭거나 중산층 이상은 됐었다가 가족 구성원의 사업이 망하면서 힘들어지는 것을 경험하셨다. 거기에 부모님은 양가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신혼생활을 시작해서 어쨌든 서울에 집을 마련하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사셨으니 그 과정에서 물질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겨졌는지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아버지께서 대기업에 다니시고, 월급이 안정적으로 들어올 땐 그래도 괜찮았다. 아니, 사실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건 내가 SK텔레콤에 다닐 때부터였다. 나는 주관이 분명한 편이다 보니 원래도 아..
성경과 이혼에 대한 생각들 한국 교회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이혼을 죄악으로 여긴다. 성경에 그러한 구절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성경에는 사실 이혼이 허용되는 경우에 대한 내용도 있다. 그리고 성경에 있는 모든 규칙과 원칙들을 다 지키는 게 기독교인의 삶이라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돼지고기도 먹어서는 안되고, 범죄를 저지르면 손을 자르고 눈을 뽑아야 한다. 그런 말씀은 지키지 않으면서 이혼에 대한 부분은 왜 편집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내용으로 여기는 것일까? 성경에서 원칙적으로 이혼을 하지 말라는 것은 결혼은 신의 인도하심으로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지켜내라는 의미다. 종교적으로 해석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이 말은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면 '결혼한 직후에는 서로의 다름으로 인해 힘들고 맞지 않는 부분들이 많겠지만 결..
구약에서 하나님의 폭력에 대하여 도킨스가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여러 근거 혹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과정에서 [구약의 신은 모든 픽션을 통틀어 가장 불쾌한 인물]이라고 말하면서 시기가 심하고,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옹졸하고 불공평하며 용서를 모르고 집착적인 통제광에 보복적이고 피비린내나는 인종청소를 자행한다. 여성혐오자이고 동성애혐오자이며 인종차별주의자이고 영어살해자이며 대량학살자이고 자식살해자이며 역병을 일크기고 과대망상자이며 가학피학성 변태성욕자이며 변덕스럽고 고약하게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고 주장한다. 그가 지적하는 부분들은 사실 오늘날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으면 맞는 말이다. 그걸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우리가 이 지점에서 해야 하는 질문은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라는데 있다. 당시에는 성..
말할 때와 침묵할 때 예수님과 바울이 당했던, 그들에게 가해졌던 조치와 비난들을 읽으면서 화가 났다. 예수님과 바울이 자신에게 던져지는 비난과 시선에 직접 대응하지 않는게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러다 최근에 뉴스를 보면서 나 혼자 부글부글 끓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예수님과 바울은 어떻게 그렇게 흔들림 없이 자신들을 향해 던져지는 억울한 누명을 버틸 수 있었을까? 그들은 왜 하나, 하나 항변을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세 가지였을 것이다. 첫 번째는 세상은 원래 그런 곳임을 알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자신들이 항변한다고 해서 그들이 설득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에,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해서 하실 일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의견을 내고 ..
한국교회와 성경공부 작년 언젠가부터 말씀이 참 달게 느껴졌고, 일이 많고 바빠서 말씀을 읽지 않은 날은 우울감을 느끼기도 했는데, 올해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서, 성경을 읽는게 재미있다. 행간이 보이고, 그 인물들에 감정을 이입해서 읽으니 어떤 넌픽션보다 더 깊고, 고민할게 많고 다이나믹해서, 성경을 읽는게 재미있다. 성경적 지식이 많아져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성경적인 지식을 익힐만큼 여유있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진 못하니까. 왜 성경이 이렇게나 재미있단 것을 몰랐을까? 너무 남탓하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그건 우리나라 교회들의 성경공부 방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는 성경공부를 무조건 깊게 시키거나, 맥락도 무시하고 무조건 암기하게 하거나, 시험을 보거나, 구절을 쪼개서 해석하는 방식으로..
기독교와 환생 아래에 신앙과 신학에 대한 글을 쓴 이후 문득, 최근에 하게 된 생각이 기억났다. 환생과 관련된. 그 문제가 전형적인 신앙과 신학에서 오해를 야기하는, 성경을 읽고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Surviving Death란 다큐를 봤다. 기자가 취재해서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든 다큐이고, 그 안에 환생에 대해 연구하고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내용을 보면 '이건 말이 안되는데...' 싶은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은 신앙이 아니라 [연구]적인 차원에서 추적이 이뤄진다. 그 다큐에서 20년 간 자신의 이전 생의 삶에 대해 이야기 하는 아이들을 연구한 교수는 '미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기독교 신앙을 가진 가정에서 발생..
신앙과 신학 공부를 본업으로 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다른 학문에 속하는 신학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다단하다. 이는 신학은 엄연히 말해서 신앙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신학의 내용을 어설프게 현실에 끌어오면서 신앙에 접목시키고, 그로 인해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복음주의, 자유주의 등에 대한 논의, 신학적으로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필요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하겠다. 사회에 접점을 갖고 있는 학문들이 사실 그렇다. 뿌리까지 뽑고 들어가서 근본에서, 기초에서부터 현실의 문제의 적용까지 나오는 과정을 자신의 주관으로,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학문이기 때문에 모든 학문은 주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고 믿음은 배제하고 이성과 합리성, 논리만 건조하게 남겨놓을 수밖에 없다. ..
우리 시대의 사도행전 29장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온누리교회는 한 때 사도행전 29장, Acts 29를 굉장히 강조했다. 사도행전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의 발걸음을 우리가 이어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런 정신은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주장을 하기 전에 우리 시대에 맞는 사도행전 29장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사도행전이 다루고 있는 시기에는 예수님의 복음이 그 제자들과 초대교회를 중심으로만 확산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은 기성 유대교회와 부딪히고, 갈등을 겪었고, 그 과정을 통해서 복음을 바로 세워야 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조금 과장을 많이 보태면 [종교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종교와 우상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은 다른 종교와 우상들을 비판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