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y married Moabite women, one named Orpah and the other Ruth. After they had lived there about ten years... But Ruth replied, "Don't urge me to leave you or to turn back from you. Where you go I will go, and where you stay I will stay. Your people will be my people and your God my God. Where you die I will die, and there I will be buried. May the LORD deal with me, be it ever so severely, if anything but death separates you and me.'(룻기기 1장 4, 16-17절)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고통만을 주셨다며 자신의 이름도 나오미라 부르지 말라고 한다. 이는 아마도 그녀의 아들들이 그보다 세상을 먼저 떠났기 때문에 그가 하는 얘기일 것이다.
인간의 시선에서, 인간의 기준으로는 그 말이 분명 맞다. 그런데 그게 과연 하나님의 기준에서도 그러할까?
아니다. 하나님의 기준에서의 축복은 인간이 생각하는 그것과 다르다. 그리고 나오미의 경우 실제로도 그랬다. 그에게 룻과 같은 며느리가 그의 옆을 지켜주지 않았나? 떠나라고 해도 남아있는, 그녀와 함께 평생을 하겠다고 하는 룻이 있지 않았나?
과연 그녀의 아들들이 있었다고 해서 그녀가 더 행복했을까? 아들들이 너 나은 아들이 되어 그녀의 곁을 지켰을까? 우리는 현실에서, 우리가 지금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물러났을 때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다.
Her mother-in-law asked her, 'Where did you glean today? Where did you work? Blessed be the man who took notice of you!' Then Ruth told her mother-in-law about the one at whose place she had been working. 'The name of the man I worked with today is Boaz,' she said. 'The LORD bless him!' Naomi said to her daughter-in-law. 'He has not stopped showing his kindness to the living and the dead.' She added, 'That man is our close relative; he is one of our kinsman-redeemers.' (룻기 2장 19-20절)
하나님은 사람들의 인생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알게 하신다.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일하신다. 룻이 보아즈를 만난것도, 그리고 그의 아내가 된 과정도 그렇다.
우리는 룻이 이방여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보아즈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우린 때때로 너무 형식적인 것들에 구속되어 하나님을 제한한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드리자. 우리는 그래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