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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결혼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

친구들과의 대화

아버지께서는 무역회사에 다니셨고, 그 때문에 나는 국내와 외국을 어린 시절에 많이 오가면서 살았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만큼은 한국에서 나와야 한다며 나를 한국으로 혼자 돌려보내셨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나는 어차피 한국 사람이고 결국은 한국에서 살아야 할 것인데 고등학교 친구들이 평생 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서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고, 한 학년에 2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학교를 다녔기에 우리 동기들은 서로의 근황을 은근히 계속해서 전해 들으며,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는 친구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얘기였다. 지금 나와 친한 동기들은 거의 결혼을 했는데, 이들이 결혼한 후에는 사실 서로 자주 보지도 못하지만 만나더라도 대화가 잘 통하지가 않는다. 서로가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가정과 처가라는 내게 없는 삶의 영역이, 매우 큰 삶의 영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 넷이 있는 카톡방에서 혼자 싱글인 나는 사실 그들과 대화가 잘 통하지는 않는다.

내 삶과 타자의 관심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관심이 더 많고 그 안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정상이다. 사실 우리 인생 하나를 버텨내는 것도 버겁지 않은가? 그런데 어떻게 주위 사람들을 다 챙기겠나? 양쪽을 모두 챙기는 사람이 대단한 것이지 그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주위 사람들을 잘 챙기지만 가정에는 엉망인 사람도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이 본인에게 너무 소홀하고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본인이 힘든 만큼, 본인의 인생의 무게만큼 다른 사람도 그만큼 무거운 혹은 그 이상의 무게를 지고 있다는 것은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본인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면서 다른 사람의 짐도 나눠지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에 본인에게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섭섭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사실 지인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해도 서로 공감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설사 정말 친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서 집에 돌아오거나, 어딘가에는 털어놓고 싶어서 지인들이 있는 SNS에 털어놔서 위로의 댓글과 라이크들이 눌리더라도 침대에 혼자 누워 있으면 허무함이 몰려오고는 한다. 

가족과 나

이처럼 '남'이 내 편이 되어주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은 내가 의지할 대상이라기보다는 내가 보호해 드리고,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아야 할 분들이 되어간다. 연세가 드시면서 부모님들은 보통 본인의 안위보다 자식들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의 사랑이고 말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대부분 힘들어도 부모님 앞에서는 내색을 하지 않거나 오히려 더 밝은 척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연스럽고 어쩌면 당연한 일인데, 그래서 사실 어느 순간부턴가 기존의 가족은 내 일과 상황에 온전히 공감해 주는 상대가 아니라 내가 품고 안아가야 할 대상이 되어간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부모가 품어준 시간을 생각해보면, 그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내 편'이 필요하다.

이처럼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은 주위에 '내 편'이 없어진다. 다들 본인 편을 만들어서 결혼을 하고 그 삶에 집중을 하게 되고,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져야 하는 인생의 무게도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온전히 내 편이 되어줘야 할 누군가가 필요하다. 사실 인생의 모든 것이 잘 나갈 때는 괜찮다. 평생 단 한 번의 실수나 실패, 좌절을 하지 않는다면 혼자 살아도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삶이 과연 존재할까? 회사원이 아니라면 매일, 매일이 치열한 전쟁터일 가능성이 높고, 회사원이라면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뒤처지기 시작하거나, 승진을 계속하더라도 치열한 정치와 견제와 싸워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 아닌가.

결혼을 한다는 것은, 그리고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그럴 때 내가 온전히 상대편이 되어주고, 상대가 온전히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은, 그 말이 갖는 여성 차별적인 느낌과는 달리 내 편이 없어서 혼자서 인생의 무게를 지고 가야 하는 사람이 그 무게에 짓눌리다가 예민해져서 나오게 되는 행동들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남자들도 자신의 가정을 꾸리지 못했거나, 꾸렸어도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 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것은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그런 것에 둔해서 평상시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술로 풀어버리고 뻗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본인이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회사 후배 등을 끌고 다니는 경우가 있다. 사실 본인이 같이 놀 사람이 없어서 부하직원들 데리고 억지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히스테리는 없지만 주위에 얼마나 민폐를 끼치는 자인가... 그런 경우에는 또 왜 그렇게 똑같은 레퍼토리를 반복적으로 말하는지...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사실은 그저 혼자서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서 그러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결혼을 하는 것,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많이 하는데 사실 그 과정에서 따지게 되는 조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경제력을 보는 것도 그렇고, 누군가의 외모를 보는 것도, 누군가의 집안을 보는 것도 언젠가 어떤 변수로 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 믿고, 신뢰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것 외에 다른 변수가 장점으로 보였던 모든 것을 덮어버릴 수 있기에.

하지만 만약 서로가 서로에게 온전히 상대편이 되어줄 수 있다면,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상대방이 힘든 순간에 그 사람 옆에 있어주고, 보듬어줄 수 있다면, 다른 조건으로 인해 발생하는 어려운 상황을 같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같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인생에 필연적으로 닥치는 어려움들을 두 사람은 같이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결혼을 한다고 다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한다면, 그건 그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이란 '인생을 같이 걸어가는 것'이라는 가장 중요한 의미를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기 전에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고 조건만 보고, 오래 만났기 때문에 결정을 해버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