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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결혼

결혼, 초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어떻게 고민할 것인가?

지금까지 난 정말 열심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모든 인간은 결혼에 대한 필요가 있음을 주장해 왔다. 아닌 척, 중립적인 척했지만 정말 둔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정도 눈치는 챘을 것이다. 그런데 그 글들은 논리적이기 위해서, 설명하기 위해서 개발한 논리를 담고 있을 뿐, 나 자신이 기회가 되면 내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확고하게 갖고 있는 이유는 사실 아니다. 내가 여전히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소망함을 갖고 있는 것은 머리보다 마음의 영향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결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항상 주장해 왔듯이 평생 함께 할 친구, 같이 살다시피 함께 할 친구가 있다면 결혼은 사실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친구가, 서로 이해관계를 허물고 가족 같이 지낼 친구가 대부분 사람들은 없다는 데 있다. 인간은 참으로 자기중심적인 존재여서, 사회적으로 스스로 약속을 하지 않는다면 그런 관계가 형성되기는 매우 어렵다. 법적으로 혼인을 하는 것도, 사회관계에서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던지,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은 주로 현재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자신들의 행복에 대해서 말한다. 맞다. 사실 젊었을 때는 혼자 삶으로써 기혼자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면이 없지 않다. 내가 결혼을 했다면 과연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을까? 아내 또는 아내 집안이 엄청난 부자가 아닌 이상 난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나 그 집안이 정말 잘 살았더라면 난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느슨해졌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내가 그나마 너무 길지 않은 시간 안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사실 내가 미혼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 성향에 비춰봤을 때 그렇단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인생은 길게 봐야 한다. 인간은 참으로 독특한 존재여서 과거의 일은 잘 잊어버리고 현재의 행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이미 2년 가까이 감옥에 갇혀 있는 과거의 권력자들이 과연 자신들이 과거에 누렸던 권력을 기억하며 '난 그래도 잘 살았어'라고 생각할까? 아니다. 인생이 말년에 좋아야 한단 말이 나오는 것도 인간은 결국 과거는 잊어버리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사실은 현재 나의 삶만을 놓고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늙었을 때,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해 보고 내려야 한다. 그에 대해서 본인이 '되고 싶은 모습'이 아니라 지금처럼 쭉 살면 그 끝에 어떤 모습일지를 최대한 객관화시켜서 고민해야 한다.

가정에 대한 소망함이 있는 이유

그런 고민 끝에 내가 가정에 대한 소망함을 포기하지 않기로 한 이유는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난 우리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이후에 혼자 살고 싶지도 않고 살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지 않나? 너무 이성적이고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사실 사람은 이 세상에 온 순서대로 떠나는 것이 남은 사람들을 위해서 더 좋은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부모님을 먼저 떠나보내는 것이 맞을 텐데, 부모님께서 떠나신 이후를 상상해보면 난 이 세상에 혼자이고 싶지 않더라. 나의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나누고 누군가의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함께 품어주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눈빛만 보고 손만 잡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은 이 땅에 있었으면 좋겠더라.

사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결혼을 너무 늦게 하고 싶지 않은 여러 가지 이유 중 한 가지는, 내 아이가 내 부모를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분명 시시때때로 부모님이 그리울 텐데, 그때 내 이야기에 공감하고 귀 기울여 줄 사람이 지금으로써는 내 친동생 정도이겠더라. 사촌들도 있지만 내가 부모님의 형제들에 대한 디테일을 모르듯이, 사촌들도 우리 부모님을 제한적으로 알 뿐이 아닌가?

그리고 개인적으로 난 이 세상을 떠날 때 혼자라는 느낌을 갖고 떠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세상을 떠날 때 내가 사랑받으며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그 사랑을 받은 이들이 이 땅에 있는 모습에 흐뭇한 마음을, 따뜻한 마음을 갖고 세상을 떠나고 싶다. 인간이 주는 사랑과 위안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그러한 순수한 사랑을 받다가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이 필요하고, 그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갖는 게 아닐까?

어떤 이들은 여기까지 읽고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본인만을 위해서 결혼을 하겠다는 거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들이 위에서 말한 삶을, 사랑을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를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살아가고 세상을 떠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필연적으로 희생해야 하고, 내 가족 구성원들을 엄청나게 사랑해줘야 한다. 그러지 않고 나만을 위해 가정을 꾸린다면, 그 사람의 삶은 가정을 꾸리지 않은 것만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개인적으로 이러한 나의 소망함이 나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떤 행복을 추구할 것인가?

어떤 이들은 또 여기까지 읽고 '그런 희생을 왜 하냐? 그 시간에 날 위해 살겠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 그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기꺼이 희생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을 주는 지를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사실 돈을 벌어서 나 자신을 가꾸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 행복이라기보다는 쾌락에 가깝다. 그런데 인간은 쾌락에 내성이 생겨서 같은 수준의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는 외부 자극의 수준을 계속 높여야만 한다. 예를 들면 처음에 차를 살 땐 모닝을 사도 흥분하던 사람이 사회생활을 조금 하다 보면 엑센트를, 조금 더 하다 보면 아반떼를, 그러다가 소나타, 그랜져로 올라갔다가 수입차로, 수입차에서도 점점 비싸고 좋은 브랜드로 옮겨타야 처음에 모닝을 샀을 때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일부 연예인들이 수억 대의 차를 몇 대씩 갖고 있으면서도 차를 계속 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쾌락은 그런 속성을 갖는다.

하지만 행복은 조금 다르다. 이는 쾌락은 겉면에 순간적인 자극을 주는 것이지만 행복은 가슴 안으로 깊게 들어오는 평안하고 따뜻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사실 그런 감정을 갖고 살고 싶어 한다. 마피아도 본인 가족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그 안에서만큼은 심적 안정을 누리고 싶어 하지 않나? 그리고 자신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한 것임을 인정받고 싶어 하지 않나? 아무리 극악한 사람이라도 말이다. 그런 모습들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필요로 하고 추구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행복은 깊은 관계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며, 그 행복은 현실적으로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가정 안이 아니면 느끼고 공유하기가 쉽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 깨어지는 것도 그 관계 안에서 행복이 아니라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닌가?

물론 결혼을 하는 것 자체가 그러한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결혼으로 인해 더 불행해지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결정은 신중하게 내려야 한다. 하지만 그게 결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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