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지역에 교회가 여럿 존재하더라도 목회자들끼리 같이 교류하고,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서로 다른 교회에 오가면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한다면 그건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는 한 블록 건너서 십자가가 있다.'
이 말이 그렇게 자랑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이 땅에 교회가 많은 것이,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좋았다. 마치 교회가 많으면, 교회 다니는 사람이 많으면 이 땅에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젠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한 블록에 십자가가 3-4개 서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갑갑해진다. '저 작은 지역에 저렇게 많은 교회가 필요할까?' 작은 지역에 교회가 여럿 존재하더라도 목회자들끼리 같이 교류하고,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우면 서로 다른 교회에 오가면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한다면 그건 건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 한 지역에 있는 교회들은 대부분 출석교인을 놓고 경쟁한다는데 있다. 그게 영업이고 사업이지 교회의 본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과 예수님은 믿지만 교회는 나가지 않는 가나안 성도가, 하나님과 예수님은 믿지만 교회는 필요 없다고 믿는 무교회주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바람직할까? 아니다. 사실 진짜 기독교인이라면, 성경에서 전제하고 있는 인간상을 믿고 세계관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가나안 성도나 무교회주의자가 될 수가 없다. 이는 성경이 인간을 자신 홀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소속되지 않아도, 교회가 없어도 나는 성경적인 가치에 따라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함을 넘어서 성경에서 전제하고 있는 인간상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나안 성도와 무교회주의자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이 증가하는 것은 교회의 탓이 6-7할 이상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땅의 교회가 정말 공동체답게, 성경적인 가치를 따라 운영되었다면 그래도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아니다. 가나안 성도들은 대부분 일정 기간 이상 교회를 다녔고, 여러 교회들에 실망하고 그런 결정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가나안 성도와 무교회주의자가 증가하는 것은 교회의 잘못이 크다.
여기에서 우리는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건물에 '교회'라고 쓰여 있으면, 교단에서 목사로 안수받아서 담임목사로 지정된 사람이 있으면 그게 교회인가? 물론,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교회가 진짜 교회인지 여부는 그 껍데기가 아니라 그 안에서 교회다움이 존재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가 교회 답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함께 함으로써 하나님을 더 바라보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어야 한다. 그런 공동체라면 건물이 없어도, 교단에서 안수를 받지 않았어도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교단'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교단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성경을 완전히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이단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고, 제대로 된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가 사는 시대에 성경과 기독교가 갖는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교단도, 신학교도 필요하다.
다만 문제는 교단이 생기고, 교단별로 신학교가 생기면서 폐쇄성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교회들은 교단별로, 사람들은 교회별로 무리와 패거리를 지어 대립하고 서로를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공동체'보다 '구분 짓기'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생기면서 교회의 껍데기를 갖춘 집단들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기 시작했다. 가나안 성도와 무교회주의자가 늘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만약 가나안 성도와 무교회주의자가 부인하는 교회를 '껍데기는 교회이지만 그 실질은 이익집단인 교회'로 범위를 좁힌다면 사실 그들이 더 성경적인 기준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껍데기만 교회인 교회를 교회로 믿고 하나님과 예수님이 아닌 목회자에 순종하고, 성경이 아닌 목회자의 말을 복음으로 여기는 사람들보다는 말이다.
가나안 성도와 무교회주의자들을 무조건 비판하기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교회들의 현실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이 땅에 제대로 된 교회 공동체들이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