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 시리즈에서는 대부분 프리랜서로 사는 것의 어려움을 다뤘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부정적인 면만 있다면 프리랜서들이 프리랜서로 남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나처럼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도 자리를 잡기 위해 아등바등거리는 프리랜서들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것이 좋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일면 부정적으로만 비칠 수도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쓴 것은 그 좋은 점과 장점들이 과대 포장되어 있고, 그 이면의 그림자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않는 듯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는 분명 장점이 많다. 더군다나 나처럼 조직 안에서 상하 계급 없이 할 말은 다 해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프리랜서로 사는 것이 갖는 장점이 엄청나게 많다. 물론, 프리랜서가 일을 받을 때 갑을관계가 없는 것은 아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갑을관계가 형성되는 것과 직장에서 형성되는 상하관계는 엄연히 다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한국에서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를 외국에서 보내서 그런지 몰라도 난 한국의 전형적인 상명하복의 문화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군대가 체질인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도 난 선임들에게 '나도 군대가 안 맞지만 넌 정말 안 맞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으니, 그런 체질은 내 안에 깊게 박혀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틀린 말인데도 그냥 넘어가야 하는 문화 속에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프리랜서의 가장 큰 장점이다.
우선 그 갑을관계는 일시적이라는 것이 다르다. 조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상급자와의 관계를 잘 형성해 나가야 하는 회사원과 달리 프리랜서들은 일단 주어진 일감이 끝나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끝난다. 물론, 그 업계에서의 평판 등을 위해서 관계를 깨면 안 되겠지만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발생하는 수입보다 더 대가와 비용이 큰 사람과는 그 일이 끝나고 나면 인연을 끊을 수 있다.
그리고 프리랜서는 엄연한 '파트너'다. 따라서 위에서 명령을 하면 복종해야 하는 조직 내 관계와 달리 프리랜서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지고, 진상들도 자신의 직원을 대하듯 프리랜서를 대하진 못한다. 물론, 그 자유도 '갑님'께서 주시는 범위 안에서 이긴 하지만 그래도 프리랜서에겐 스스로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무기가 하나 있다. 금전적 보상이 있다는 것과 어차피 남의 일이라는 것. '내가 다니는 회사'의 일을 하면 무엇인가를 잘하고 싶은데 그에 반하는 일을 시키면 그게 '내가 속한 집단'에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화가 나고 짜증 날 수 있지만, 프리랜서는 그러한 압박감에서는 자유롭다. 상대와의 관계를 해칠 수 있는 일을 하거나 말도 안 되는 퀄리티의 결과물만 내지 않는다면 프리랜서는 어느 프로젝트 하나로 크게 손해 볼 일은 없다.
일을 '어느 정도는' 선택할 수 있는 것도 프리랜서의 큰 장점이다. 물론, 그건 일이 '어느 정도 이상' 들어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아니다. 사실 본인이 큰 욕심이 없고 자유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일을 하면서 나머지 시간은 돈이 안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프리랜서로서의 삶은 나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그런 경우에는 안정적으로 계약되고 수입이 들어오는 경로가 확보되어있는 것이 전제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다양한 일을 내 마음대로 경험할 수 있는 것도 프리랜서의 장점이다. 난 글을 매개로 해서 번역, 통역, 글쓰기, 영상, 리서치 등을 주로 하는데 다양한 업계에 발을 어설프게 걸치고 있어서 '난 뭐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은 분명 조직에 구속된 사람이 누릴 수 없는 자유이고 그 과정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기회들이 주어지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되면서 내가 일을 받을 수 있는 업계도 그만큼 늘어나고, 그 다양한 일들 간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 일들이 상호 간에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그 일들이 결국은 상호 간에 시너지를 내기도 하더라. 그렇게 나를 확장시킬 수 있는 기회는 프리랜서에게만 주어진다.
또 이전 글에서는 휴가지가 사무실이 된다며 불평을 했지만, 그건 반대로 장점일 수도 있다. 이는 일단 휴가를 떠나서도 내가 일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단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회의를 주기적으로 하는 일이 있을 때는 길게 어딘가로 가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짧게 국내여행 정도는 누구의 허락 없이도 떠날 수 있는 것은 분명 프리랜서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다. 그리고 내 업무 패턴에 따라 일이 잘되는 시간에는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쓸 수 있단 것도 프리랜서로서의 삶이 주는 소소한 선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퀄리티가 되는 결과물을 낼 수 있고, 상대가 수용 가능한 결과물을 계속 낼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남의 일을 받아서 할 때는 그 일을 할 때는 내 일을 할 때와 같은 결과물을 내면서도 감정적으로는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또 프리랜서로서의 삶은 좋게 말하면 새로움의 연속이지만, 그건 반대로 늘 낯선 상황, 사람과 일에 도전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일을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레벨이 상당히 높아야 프리랜서로 살아남을 수 있다. 유명한 잡지에서 인정받는 에디터로 있다가 프리랜서를 선언한 아는 동생이 수입은 회사에 있을 때보다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던 일을 프리랜서로 한지 2년 만에 지쳐서 1년만 더 새로운 걸 조금 시도해 보고 회사로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프리랜서로서의 삶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프리랜서의 '허'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글에서 다루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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