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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휴가지도 사무실이 되는 기적

프리랜서들이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오해는 분명 '얼마나 좋겠어,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잖아.'라는 생각이 아닐까 싶다.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정말 마음대로 일할 수 있을 것이란 착각과 오해. 그게 사실 가장 억울하다.

평상시에는 그나마 그런 말을 잘 받아넘기는 편이기는 하다. 데드라인만 맞추면, 상대에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일정에 보내줄 수 있으면 지금 당장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내가 지금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 영화가 갑자기 보고 싶으면 집 앞에 있는 극장에 가거나 넷플릭스를 켜고 봐도 되니까. 그 이후 본인에게 주어지는 시간 중에 잠자고, 먹고, 씻는 시간을 줄일 각오만 되어 있다면, 뭐 심하면 일을 하고 있는 회사일을 더 받을 생각이 없다면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나마 일상에서는 그렇다. 내 다른 시간을 줄이거나 없애면 지금 당장의 자유는, 프리랜서의 프리함은 분명 누릴 수 있다. 하지만 휴가지에서도 일을 해야 한다면 회사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난 회사원이던 시절에 해외로 여행을 가면 휴대폰을 낮에는 꺼두고 저녁에만 밀린 게 있는지 확인 정도만 했다. 그리고 설사 급하게 연락해야 할 게 있어서 휴가지에서 일 관련 전화를 해도 상대가 보통 미안해했다. 휴가를 떠나 있는데 일 관련해서 연락해서 미안하다고 말이다. 평상시에는 9 to 6, 아니 최소한 7시까지는 반드시 엉덩이를 붙이고 사무실에 있어야 했지만 그나마 한국을 뜰 수 있는 휴가를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버텼던 것 같다. 그리고 휴가만큼은 휴가다웠다.

프리랜서는 다르다.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이후로 내 휴대폰은 영화를 볼 때를 제외하고는 꺼진 적이 없다. 새벽에 연락이 오면 그때 받아야 하고, 휴가를 떠났다 하더라도 나와 일하는 상대에게 휴가를 왔다고 말한 적도 없다. 아무 일도 없는 척, 일할 수 있는 척, 기분 나쁘지 않은 척, 스트레스받지 않는 척... 아주 가끔은 내가 연기자가 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많은 '척'을 하며 일 전화를 받았다.

프리랜서가 휴가지에서도 항상 연락이 되고 전화를 받아야 하는 것은, 언제 어떻게 일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연락을 받지 않으면 그게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수도 있고, 이미 계약되어서 일을 하고 있는 건이라면 언제, 어디에서 급하게 일이 터져서 내게 일이 던져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작년 하반기에 내가 했던 일 중에 하나는 영문 문서 작업을 하는 것이었는데, 갑자기 영문을 국문으로 변경해야 하는 작업이 급하게 떨어져서 예상하지 못했던 작업 공수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 일이 언제, 어디에서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프리랜서는 항상 연락을 받을 수 있는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한다. 휴가지에서도.

전화만 받을까? 아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동안 내 곁에는 항상 노트북이 있었다.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노트북을 바꾸고 싶지 않았지만 몇 '그램' 하지 않는 노트북을 마련한 것도 항상 노트북을 끌고 다녀야 할 현실적인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게가 조금이라도 더 나가면 몸이 지치고, 몸이 지치면 일의 능률이 떨어지다 보니 난 더 좋은 것을 쓰고자 하는 욕구나 욕망이 아닌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 새 노트북을 마련해야 했다. 그리고 내 노트북은 항상 휴가지에도 동행한다.

일이 생기면 노트북을 켜야 한다. 그렇다 보니 휴가를 떠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도 노트북을 켜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을 파악해 놓는 것이다. 숙소에서 집중하고 작업을 할 공간이 있는지, 근처 카페에서 와이파이는 되는지 등을 파악해 놓고 휴가를 시작해야 마음이 편한 것이 프리랜서의 현실이다. 올해 초에 떠난 제주도 여행 중에는 차를 몰고 가다 급하게 일을 처리해 달라는 전화를 받고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프리랜서들에게는 어느 장소나 작업공간이 된다. 아니,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조용한 곳에서만 작업이 된다거나, 백색소음이 있어야 작업이 잘된다는 사치 따위는 프리랜서가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아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신속하게 일을 잡고 처리할 수 있는 자세. 백사장에 누워 있다가도 연락을 받으면 노트북을 꺼내고 핫스팟을 꺼내서 일단 반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갑'의 경지에 이른 프리랜서가 아니라면 말이다.

사람들은 프리랜서들에게 '아무데서나 일할 수 있잖아. 얼마나 좋아! 자유롭고!'라고 할지도 모른다. 사실이다. 그런데 그 말은 바꿔 말하면 '모든 곳이 작업할 공간이야. 어디에서도 일과 떨어질 수가 없어'를 의미하기도 한다. 휴가지에서도. 그리고 진정한 프리랜서에겐 휴가지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무실이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프리랜서들이 휴가지에서도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들도 휴가는 온전히 누리고 싶기 때문에 보통 큰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 또는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을 듯한 일정으로 휴가를 떠난다. 그렇기 때문에 휴가지에서 일을 집중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프리랜서들은 휴가를 떠나도 머리 한 구석은 일을 위해 남겨놓고 일할 수 있는 기본적인 준비는 해놔야 한단 것이다. 언제, 어떻게 어떤 것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지내는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고 자연스러워야 프리랜서로 지낼 수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프리랜서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최소한 싫어하지 않고 가능하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그나마 버텨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