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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남사친 여사친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믿었다.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속한 집단의 특성상 여자들이 훨씬 많았고, 사실 지금도 마음 편하게 수다를 떠난 사람들은 누나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주위에 여사친이 많았기 때문에 난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가깝고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주제에 대해서 논쟁을 벌이면 난 항상 당연히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입장에 서 있었다.

하지만 주위에 그렇게 많던, 소개팅을 100번 넘게 주선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았던 여사친들이 결혼을 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 남편이 날 잘 알아도, 그 여사친에게는 따로 보자는 연락을 쉽게 하지 못하게 되더라. 심지어는 내가 소개팅을 주선해서 결혼한 부부에게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파리에 가서 신세를 졌던 고등학교 동기끼리 결혼한 집에 갈 때는 사실 여자 동기랑 훨씬 친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계속 남자 동기에게 연락을 하고, 어떻게 찾아갈지를 묻고 있더라.

이성과 친한 친구로 남는다는 것

그 이유는 분명했다. 어떻게든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내가 분쟁의 원인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많던, 또 가까웠던, 저녁 11시에 전화를 해도 서로 부담스럽지 않았던 여사친들이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녀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히 저녁 11시는커녕 7-8시에도 전화를 할 수 없었다. 하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녀들과 난 서로의 삶에 대해 공유하는 범위가 좁아졌고, 우린 자연스럽게 그렇게 멀어졌다. 그렇게 멀어진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른다.

사실 어디 이성 친구만 그런가? 동성 친구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결혼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린 만나서 공유하고 공감하기보다 이질감을 느끼는 시간이 많았다. 특히 친구들이 대부분 회사에 다닐 때 난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갔다 보니 우리는 공유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들은 처가댁을 챙겨야 했고, 그로 인해 2달 전에 잡은 약속을 어쩔 수없이 1주일 전에 깨야 하기도 했다. 어렵게 1년에 한두 번 모이면 그들의 관심사는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어떻게 중간자 역할을 할지와 육아에 집중되어 있었고, 내 관심사는 여전히 내 미래와 아직 누구인지도 모르는 배우자에 있었다. 동성 친구도, 각자 결혼을 하고 나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멀어지더라.

그런데 그게 이성친구는 더 심하게, 빨리 다가오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결혼한 여사친과 밥도 먹지 못한단 건 아니다. 난 여전히 주로 점심, 아주 가끔은 저녁을 같이 먹는 여사친들이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이들과의 관계도 깊어지지는 않더라. 아니, 미혼일 때의 관계보다 관계가 대부분 얕아지는 것을 나는 몇 년째 느끼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무 때나 전화해서 통화할 수 있는 친구와 만나기는커녕 통화도 하기 힘든 친구가 된 친구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난, 남사친 여사친이라는 관계를 잘 믿지 않는다. 아니 그런 관계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성이 절친이나 베프가 되기는 힘들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게 맞다고도. 또 그게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와 함께 가정을 꾸리는 사람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난 그 사람한테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다. 이 주제를 놓고 싸우거나 논쟁을 벌이고 싶지도 않다. 이성 간의 관계에서 우정 또는 친구로서의 관계는 한계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왜 이 얘기를 지금?

사실 이 생각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혼자 영화는 자주 봐도 혼자 콘서트는 간 적이 없다 보니,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11월에 예매한 콘서트 표 2장 중 한 장의 주인을 찾을 때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밥만 사라고, 표는 그냥 주겠다고 하는데도 같이 갈 사람을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더라. 20대 때는 여자 친구와 같이 보려고 뮤지컬 티켓을 예매했다고 공연 얼마 전에 헤어지게 되었을 때도 같이 볼 사람을 구할 수가 있었는데... 30대 중후반이 되니 그럴 사람도 찾기가 어려워지더라. 나름 페친이 1,300명 정도 되는 계정도 갖고 있었고, 소개팅을 100번 넘게 주선할 정도로 지인들이 많았었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 지인들이 결혼을 해서 사람을 구하는 게 어렵기도 했지만, 사실 그 과정에서 결혼한 여사친은 배제하고 여사친들 중에서도 연인이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없는 사람은 없는 대로 연락을 잘 못하겠더라. 연애를 하고 있는 이들은 남자 친구 눈치를 보게 될 것이 분명했고, 없는 사람은 내가 무슨 의도로 가자고 하는 지를 오해할 수 있기에...

그 과정에서 난 약 5년 전에 결혼한 정말 친했던 친구가 갑자기 내 연락을 왜 아예 안 받기를 시작했는지를 다시 한번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남편인 당시 남자 친구가 결혼하기 전에도 그 친구와 내가 둘이 종종 밥도 먹고 영화도 보는 걸 싫어했을 수 있겠더라. 결혼식에서 B컷을 찍어준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연락을 받지 않기 시작한 건 여전히 심한 듯하지만, 그 친구의 남편은 또 그 사람대로 그 친구가 나랑 친하게 연락하는걸 좋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 결혼하고 나서 배우자가 이성친구와 주기적으로 저녁 먹고, 영화 보고 만남을 갖는다고 해보자. 그게 흥쾌히 용인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주기적으로 만나지 않고도 관계가 깊게 유지될 수 있는 친구관계란게 있을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친밀한 남사친과 여사친의 관계가 유지되기 힘든 것은 이 질문의 답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