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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삼십대 후반에 연애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

서른여덟이 되었다. 한국 나이로. 만으로는 서른일곱. 같이 일하는 외국 파트너들과는 나이 얘기를 하지도 않지만 나이를 묻는다면 생일이 안 지났으니 서른여섯이라고 할 것이다. 사실 1월 1일부터 거의 계속 누워 있었기 때문에 새해가 왔다는 것이 와 닿지를 않았다. 그런데 타미플루를 5일 먹고 이제 그래도 앉아 있을 수 있는 상태가 되고 나니 나이 생각이 났다. 어느새 서른여덟이 되었다.

나는 내 서른여덟이 이럴 줄은 몰랐다. 스물여덟에 연봉으로는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회사에 입사했고, 이년 조금 넘게 다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로스쿨을 갈 때만 해도 난 서른여덟의 내가 이런 모습일 줄은 몰랐다. 이제 박사학위를 받는, 빚도 없지만 돈도 재산도 없는, 결혼 못한 삼십 대 후반. 이것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나를 평가하는 객관적인 지표다. 난 삼십 대 후반이면 빚도 있겠지만 집도, 차도, 아내도, 아이들도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 내 회사 및 로스쿨 동기들은 대부분 그렇게 살고 있고 그들 중 상당수는 너무 당연하게 억대 연봉을 받고 있으니 그때 내 생각이 착각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그리고 브런치에서는 본의 아니게(?) 연애에 대한 글로 구독자 수도, 하루 조회수도 그럭저럭 괜찮게 나오게 되었다. 주위에서는 그 글을 다른 블로그에 그대로 복붙 해서 블로그에 광고라도 달라고 할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지금까지 나 자신을 지독히도 숨기고, 또 숨겼다. 내 나이를 공개하는 것 또한 이 글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애매하게 30대 중후반이라고 쓴 글은 있었어도 숫자를 밝힌 적은 없었다. 그리고 마음먹으면 내 배경을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난 여전히 나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글을 쓰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우리 사회에서 '연애에 대한 글을 쓴다'는 이미지가 줄 수 있는 선입견 때문이다. 유튜브를 시작하겠다고 8월에 말을 꺼내놓고, 그 이후에 몇 번을 또 미뤄가면서 양치기 소년이 된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이다. 내가 있는 업계가, 내 배경이 보수적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그게 알려지지 않더라도 언젠가 중요한 시기에 '그 사람 연애에 대한 글을 되게 많이 썼었대'를 넘어서 '연애 얘기로 유튜브까지 했다는데?'라고 하는 순간 내 이미지에 박힐 수 있는 선입견들이 의식되어서 솔직히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고 있다. 

나이를 밝히지 않아 온 것도 그 때문이다. 내 글들 중 하나를 한 극단적인 성향의 커뮤니티에서 '30대 후반에 번탈남이 쓴 글'로 지목한 것을 보고 웃어 넘기기는 했었지만, 30대 후반에 결혼하지 못한 사람은 번식에서 탈락한 사람이라는 게 표현이 조금 과격해서 그렇지 우리나라에서 내 나이 또래에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는 시선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 나이에 연애에 대한 글을 쓰는 건 참 조심스러운 일이다. 

그러한 현실이 사실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이는 사실 내 경험상 20대에 내가 생각했던 연애의 의미, 그리고 30대에 바라보는 연애의 의미는 참으로 다른데,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렸을 때 몰랐던 것들을 보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그 누구도 그 연애의 또 다른 면에 대해서 말을 하기가 힘든 분위기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10대와 20대에 큰 고민 없이 감정으로만 하는 연애로 인해 상처 받고,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함으로 인해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제대로 된 연애와 사랑을 해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가정을 꾸려서 갈라서거나 갈라서지 않은 것만 못한 상태로 지내는 가정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사실 기혼자들은 연애에 대한 글을 쓸 수가 없다. 그건 그들의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내 주위에 결혼한 지 3-4년이 지난 기혼자들은 다 그런 얘기를 하더라. 연애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정을 꾸린 이상 그 사람들은 가정을 어떻게 잘 꾸릴 지에 집중하는 게 맞기 때문에.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당연하지도, 자연스럽지도 않은 일이다. 이는 사실 가정을 꾸리고 나서도 남편과 아내는 가정의 구성원임과 동시에 연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리고 우리 사회의 많은 가정들이 불행한 것은 연애를 항상 결혼으로 가는 과정으로만 치부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연애에 대해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이혼했다가 다시 연애를 시작한 사람, 40대에 하는 연애, 50대에 하는 연애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공유되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진짜 사랑과 연애가 무엇인지를 고민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연애가 진지하고 심각해야 한단 것은 아니다. 마음만으로, 감정에 휩쓸려서 하는 연애는 10대와 20대에 반드시 해 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힘들 때, 뭐가 뭔지 모를 때 참고자료로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공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단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연애에 대한 책이나 글들은 속된 말로 '짝짓기 지침서'의 수준에 그치고 있지 않나? 그게 안타깝단 것이다. 

내 글들을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은 느끼시겠지만 연애와 사랑, 결혼에 대한 내 글의 빈도가 많이 줄었다. 거의 2년 동안 써왔기 때문에 소재가 줄어든 영향도 있지만, 사실 누가 뭐래도 30대 중반이었던 한국 나이 서른여섯에 연애에 대한 글을 쓰는 것과 이젠 빼도 박도 못하는 30대 후반인 서른여덟에 그에 대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다른 것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그만 쓸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항상 여성 비율이 많은 집단에 속해서 살아온 30대 후반의 남자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그런 글들이 필요도 하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러한 사회적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진 못하며, 그래서 '이 나이 먹고 이런 글을 쓰는 게 맞을까?'란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다. 그런 생각, 마음과의 싸움을 해 나가게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2019년 첫 주말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