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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결혼

혼수가 과연 필요할까??

혼수가 정당화될 수 있으려면...

난 무엇이든지 일단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는 편인데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건 결혼할 때 양가가 하는 '혼수'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든 앉아서 혼수를 정당화해보려고 노력했지만 혼수는 이해할 수도, 정당화되지도 못했다. 두 개인이 만나서 가정을 꾸리는데 도대체 왜 두 가정이 상호 간에 물질을 주고받고, 심지어 직계도 아닌 친척들에게까지 선물을 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혼수가 정당화될 수 있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전제가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 첫 번째는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이 [개인]이 아니라 [가족] 간의 결합이라면 이렇게 혼수를 주고받는 것이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의문이 드는 것은 가족 간에 결합을 한다고 해서 혼수를 꼭 주고받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아니다. 그걸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래서 첫 번째 전제와 함께 자녀를 주고받는 '대가'로 무엇인가를 준다는 개념에서라면 혼수는 정당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결혼을 앞두고 우리는 혼수를 따지려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해야 한다. 당신은 결혼이 독립된 개인 둘이 만나서 새로운 가정으로 독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가족 간의 결합으로써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상대 집안에 '팔려'가는 존재여도 괜찮은가?

이러한 질문에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팔려가는' 것이라는 표현이 너무 강하지 않냐고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결혼을 한 이후 사람들의 삶을 보면 결혼할 때 혼수를 얼마나 해줬는지, 또는 누가 집을 해줬는지는 결혼 이후 권력관계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즉, 사람들은 점잖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결혼할 때 더 많은 것을 해준 신랑 또는 신부 측은 그 자녀의 가정의 의사결정 과정에 목소리를 더 내려고 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상대가 줄 수 있는 물질적인 요소를 주된 원인으로 상대방과의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은 사실 본인이 상대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상대가 본인을 '구매'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 누구도 이렇게 말은 안 하겠지만 그 결혼생활은 실질적으로 그런 방식으로 흘러갈 확률이 높을 것이란 것은 각오해야 한단 것이다.

혼수의 유래

생각이 이쯤 가자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다가 우리나라의 혼수 문화가 이렇게까지 왔는지가 말이다. 그래서 관련된 내용이 있는 책을 뒤적여 본 결과 혼수의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어른들은 '우리 때는 결혼은 다 부모님 말을 듣고 했어'라고 하면서 마치 결혼은 항상 그렇게 해온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그에 대한 반박을 해보자면 한반도에서 자유결혼은 이미 고구려와 신라 시대 때부터 있었던 일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고구려와 신라 후기에는 그러한 변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고, 우리가 흔히 아는 평강공주와 온달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오히려 혼인을 원인으로 해서 물질을 받는 것은 자녀를 노비로 파는 것과 같아서 무엇인가를 주고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고, 결혼할 때 연회를 하는 정도가 결혼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이라면 비용이었다고 한다. 다만 고구려에서는 결혼을 하면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 살았기 때문에 남자가 들어가서 사는데 필요한 돈과 비단을 여자네 집에 줬고, 그 이후 아기가 생기면 그들은 다시 남자네 집으로 옮겨갔는데 그 과정에서 또 사는데 필요한 돈과 비단을 여자네 집안에서 남자네에 제공했다고 한다.

이는 '혼수'를 양가가 서로 주고받았던 것은 사실 결혼하면 그 부부가 따로 집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집에 들어가 살게 됨으로 인해 식구가 늘어나는 만큼 일종의 경제적인 보조를 해준 것에서 유례 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어에서는 결혼한다는 말로는 'getting married'라는 표현밖에 없지만, 한국말로는 장가'간다'거나 시집'간다'는 말이 생긴 것도 이러한 풍습의 영향일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혼수가 어느 순간서부터 이처럼 '사는데 필요한 수준'을 넘어서 교환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일부 부유하고 세력 있는 집안들의 영향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경제력을 과시하기 위해서 결혼할 때 혼수와 예물을 엄청난 규모로 주고받기 시작했고, 17세기 이후 신분제가 변하고 기존 질서가 흔들리면서 중인과 상인들까지 혼인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혼수와 예물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문화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혼수가 어울릴까?

그렇다면 과연 현대사회에 '혼수' 또는 '예물'이라는 개념이 어울릴까? 우선 역사적으로 봤을 때 혼수는 기본적으로 결혼이 '가족 간의 결합'적인 성격이 강할 때 생긴 것이다. 물론 현대사회에서도, 그리고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결혼은 서로 가족이 된다는 성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결혼이 (1) 개인 간의 관계와 (2) 가족 간의 관계 중 어느 쪽에 무게가 실리는 지 여부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현대사회에서는 집단보다는 개인이 중시되고, 그러한 측면에서 결혼은 후자보다는 전자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최소한 조선시대에 '가세 자랑'의 차원에서 이뤄지던 혼수는 지양하는 게 문화적으로 맞지 않을까?

위에서도 인정했지만 물론 결혼을 한다는 것은 두 가족의 결합적인 성격도 갖는다. 다만 그 결합하는 방식이 결혼한 두 사람이 어느 한쪽 집에 들어가는 형태가 아니라 따로 사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은 상당히 큰 차이다. 그리고 고구려 시대의 혼인 풍습에서 알 수 있듯이 혼수는 사실 한 사람이 상대의 집에 '들어가서 살게 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과 필요'에 대한 대가로 제공되던 것이다. 또한 '남자가 집을 마련한다'는 풍습은 아마 조선시대에 결혼을 하면 보통 여자가 남자의 집에 '들어가서' 살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고, 여자가 혼수를 해가던 것은 여자가 들어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과 필요에 대한 대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는 두 사람이 독립되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인 만큼 누군가가 '혼수' 또는 '집'을 마련한다는 개념보다는 '두 사람이 독립해서 사는 기초를 형성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양가에서 각 가정의 경제적 수준에 맞춰서 일부 지원해 주는 정도가 결혼과 관련된 물질의 적정한 수준이 아닐까? 사실 혼수는 새로운 부부가 탄생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실적인 '필요'를 보충해 주기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전통이라는 것 중에는 계승할 것이 있고, 사회적인 변화로 인해 바꿔야 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는 특정한 문화나 풍습이 어떠한 배경과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형성된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런 기준에 비춰봤을 때 혼수, 예물, 남자가 집을 마련하는 등의 문화는 사실 누가 봐도 개인이 중요시되고 결혼이 가족 간의 결합으로써의 성격이 약화된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관습에 불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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