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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결혼

결혼할 준비가 안됐다는 말

결혼할 준비가 되었을 때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이가 더 어린 남자와 연애를 했던 동생이 있었다. 두 사람은 일 년이 넘게 만났고, 그 친구는 이전 남자 친구들보다 새로운 연인과 훨씬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관계는 무척이나 안정되어 보였고, 누군가의 결혼 소식을 들으면 그렇게 부러워하는 그 친구에게 물어봤다.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또는 그 친구와 결혼할 생각은 없냐고 말이다. 그때 돌아왔던 대답은 그랬다. 그 친구가 사회생활을 1년밖에 안 했기 때문에 결혼할 여러 가지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에 조금 더 만나다가 결혼을 하려고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얼핏 합리적으로 들리고, 사실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들과 가장 궤를 같이 하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감성적일 때는 소녀 같지만, 조언을 할 때면 때때로 냉혈한이 되는 내 반응은 차가웠다. "2-3년 후라고 너와 남자 친구가 생각하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어떤 이들은 굳이 그렇게 했어야 하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 친구의 연인은 꽤나 연봉이 높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내 경험상 그 정도 연봉을 받는 사람들은 1년에 정말 많이 모으면 3천만 원 정도를 모을 수 있다. 내가 다녔던 직장은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기업 연봉 순위 5위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데 그 직장에서 정설이 3년 다니고 1억 모으면 엄청나게 모은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1억을 모은다고 해도 집을 마련할 때는 대출을 껴야만 하고, 결혼식 비용 등을 생각하면 1억이 모여 있는 것은 생각보다 큰돈은 아니다. 회사에서 연봉을 수직상승시켜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서 3년을 더 다닌다고 쳐서 6년이면 2억, 9년이면 3억에서 4억 사이 어디쯤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벌어도 부모님의 도움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 서울에 본인 집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두 사람 모두 그 정도를 모은 상태라면 또 모를까. 

그런데 위 수치들은 한국에서 위화감을 조성할 정도로 엄청난 금액이다. 그리고 저렇게 모을 수 있는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사실 돈을 많이 버는 만큼 많이 누리고 쓰기 때문에 결혼하기 전에 저런 액수를 모으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러한 사실은 만약 '결혼할 준비'라는 것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어서 내 집을 마련하고 어느 정도 미래 수익이 보장되는 듯한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보통의 한국 사람들은 짧아도 10년 이상, 최악의 경우에는 평생 결혼할 준비가 되지 못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실 '결혼할 준비가 되었을 때 결혼하겠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정말 '준비'가 문제일까?

모든 커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결혼할 준비가 되었을 때 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직은 가정을 꾸릴 마음의 여유가 없을 뿐 아니라 함께 가정을 꾸리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만나는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할 준비'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경우에는, 대놓고 표현을 하지 않을 뿐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준비'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건 결코 나쁜 게 아니다. 그런 확신을 빨리 갖게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오히려 너무 빨리 확신을 갖는 게 이상할 수도 있다. 상대와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은 꼭 상대가 부족하거나, 모자라거나, 두 사람이 잘 맞는 부분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평생을 함께 살기로 다짐하기에는 두 사람 간의 신뢰 수준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그 신뢰 수준을 형성하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원인을 획일적으로 정의하거나 점을 보듯이 집어내기를 기대하거나 요구해서도 안된다. 사람마다 상대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되는데 필요한 시간, 요소,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결혼하기로 마음먹기까지 실제로는 '현실적인 준비'보다 상대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확신이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즉, 우리는 때때로 '준비가 안되어서'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건 '적절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거나 지금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망설여지는 요소가 있어서'인 경우가 더 많단 것이다. 그리고 그 망설이게 되는 지점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는 뭔가 찜찜하게 걸리거나 무의식 중에 작용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 A라는 사람과 만나면서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하더니 그 사람과 헤어지고 얼마 안되어서 만난 B란 사람과 수개월 만에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이 때문이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지금 그런 상태라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가 계속 그럴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이 더 오래 만나면서 많은 경험을 공유하면서 그 사이에 가정을 함께 꾸릴 수 있을 수준의 신뢰가 형성될 수도 있다. 

물론 서로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측면의 '준비'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에서 계산해 봤지만 부모님이 물려주시는 게 있지 않은 이상 사실 상대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사실 두 사람이 같이 가정을 먼저 꾸리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낫다. 이는 두 사람의 수입이 알 수 없는 계기로 엄청나게 증가하지 않는 이상 작게 시작해서 두 사람의 살림을 합쳐서 줄일 수 있는 것을 줄이는 것이 두 사람 장기적으로는 더 빨리 재산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외에도 준비가 정말 되어있지 않은 경우도 있다. 본인이 '결혼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고 생각하지만 사실 결정적인 순간에는 결혼보다 자신의 일이나 다른 요소가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는 경우가 그에 해당한다. 내 경험상, 그리고 주위 사람들을 보면 정말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우선순위에서 높게 올라가면 다른 것들을 하나둘씩 포기하게 되는 듯하다. 

위에서 설명한 동생은 결국 연인과 헤어졌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이 부딪히지만 맞출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의 영향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동생에게 사실 결혼은 지금 이 시점에 본인이 표현하는 것만큼 우선순위에서 높은 곳에 있지 않다는 느낌도 받았다. 

 

그럴 수 있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우선순위의 문제일 뿐이니까. 하지만 본인이 상대에 대해서 확신이 아직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결혼이 자신에게 우선순위에서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걸 인지하고 있는지 여부는 본인의 상황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끌고 나가는 방향도 달라지게 되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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