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었던 작은 결혼식
유행이 워낙 빨리 지나가는 한국에서 무엇인가가 유행하고 있다고 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작은 결혼식'은 큰 화두였고 한 때 유행처럼 번졌다는 것이다. 내가 결혼식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서인지 몰라도 요즘에는 예전만큼 '작은' 결혼식 그 자체가 크게 화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 내가 봤을 때 '작은 결혼식'은 한국에서 분명 일종의 트렌드에 불과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원래 결혼식은 작게 하고 싶었던 사람들 외에는 통상적인 결혼식을 올리게 될, 그럴 트렌드.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작은 결혼식'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한 가지 요소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 독립하고, 6.25 전쟁을 겪으면서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되어 생계만이 화두였던 것의 후유증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이 돈을 중심으로만 논의가 이뤄지고,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트렌드'로, '유형'으로 지나가는 것들에는 항상 돈이 화두가 된다.
작은 결혼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언론도, 사람들도 관심은 오롯이 돈에만 쏠려있었다. 그래서인지 작은 결혼식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작은 결혼식들이 다양한 형태로 열리고, 그러면서 큰 결혼식보다 오히려 더 비싼 작은 결혼식들이 생겨나자 언론도 사람들도 그에 대해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작은 결혼식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식으로.
작은 결혼식은 '싸야' 하나?
물론 나도 얄팍한 상술로 '비싼 작은 결혼식'을 만드는 업체들, 그리고 유행을 좇아서 작은 결혼식을 하면서도 화려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작은 결혼식들은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생각하면 그 업체들은 돈을 벌기 위해 전략을 쓴 것이고, 여력이 되는 사람이 결혼식에 돈을 많이 쓴다고 그게 뭐 그렇게 문제가 되겠나?
개인적으로 그런 비판들도 안타까웠던 것은 '우리나라는 결국 모든 것을, 정말 모든 것을 돈 만으로 환산하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전 세계 어느 곳에 가서 물어봐도 사람들은 돈은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돈 보다 중요한 게 있느냐고 물으면 그 나라에 여유가 있을수록 사람들은 돈보다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높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세계 12위 정도의 위치에 있지만, 겉으로 번지르르한 말을 할지는 몰라도 속으로는 돈을 1,2순위에 두는 사람들의 비율이 그에 비례해서 적지는 않을 것은 분명할 듯하다.
작은 결혼식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이런 얘기까지 하는 것은 난 '비판받을 만한 작은 결혼식'의 기준은 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은 결혼식도 돈이 많이 들 수 있다. 똑같은 음식을 해도 참석하는 사람의 숫자가 적다 보니 1인당 단가가 높아져서 큰 결혼식보다 오히려 돈이 더 많이 들 수도 있고, 이는 꽃 역시 마찬가지다. 또 작은 결혼식을 하는 장소가 본래 매출이 큰 곳이었다면 대관 비용이 비쌀 수도 있다.
돈은 항상 중요한 요소인 것은 맞지만 사실 돈이 본질인 경우는 많지 않다. 하물며 두 사람이 가정을 꾸리는 과정의 하나인 결혼식에서 돈이 본질일 수가 있을까?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선뜻 대놓고 '결혼식의 본질은 돈이야'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본인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 민망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이 그렇게 민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대부분 사람들은 결혼식만큼은 그 본질이 돈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식의 '본질'
돈이 아닌 다른 요소가 중요하다면, 우리는 결혼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이들은 결혼식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생각이 조금 다르다. 난 결혼식은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평생 함께 할 사람을 소개시키고,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는 자리'로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결혼식의 본질이라면, 결혼식은 그 본질에 최대한 가깝게 구성될수록 그 결혼식은 좋은 결혼식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 본질에 더 충실해지기 위해, 그 본질을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비용이 더 들었다면 난 그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그게 본인의 가처분 소득 범위 내에서 무리를 하지 않은 것이라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식은 필요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사하는 것처럼 하는)라는 말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젠가부터 결혼식이 그렇게 되어버리지 않았나? 자녀들이 원하지 않아도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있기 때문에, 부모가 축의금을 주위에 뿌린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회수하기 위해 하는 결혼식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가?
사실 그런 맥락에서의 결혼식이라면, 나 역시 결혼식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그런 결혼식은 별로 하고 싶지가 않다.
나는 항상 작은 결혼식이 하고 싶었다
나의 그런 생각은 사실 작은 결혼식이 유행처럼 번지기 전에 이미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작은 결혼식이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이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유행을 따라서 000를 하는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기에. 그때는 막연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하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결혼식의 영향이 컸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지인들이 본격적으로 결혼을 하게 되면서 시즌에는 하루에도 결혼식을 2-3번 갈 정도로 결혼식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결혼식을 접했는데 내가 느끼기에 그 결혼식들은 대부분 틀에 박혀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건 장소가 호텔인지, 식사 방법과 음식 종류, 그리고 음식의 질 정도.
그러한 결혼식 중에 한 결혼식에 나는 조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결혼식장 안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야 했고, 그 테이블에는 신부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들이 앉아 있었다. 결혼식장 가장 뒤에 있는 원형 테이블에 앉은 그들은 결혼식 자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결혼식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사업 얘기만 하고 있더라. 사업 때문에 사업 파트너 자녀의 결혼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결혼식 전체, 그리고 그 이후 식사까지 부득이하게 그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런 분위기가 불편하기도 했고, '나는 과연 내 결혼식에 온 사람들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어도 괜찮나?'란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를 않았다.
그때 시작된 그 고민은 '가능하다면 양가 친척과 정말 친한 지인들만 참석한 결혼식을 하고 싶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결혼식과 현실
나도 안다.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보통은 부모님들께서 그에 반대하시는 경우가 많고, 설사 부모님께서 찬성하시더라도 배우자 또는 배우자의 부모님께서 그에 반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결혼식의 규모와 형태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안다. 평생 함께 살, 가족이 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생각은 없기에 내 생각이 그렇더라도 그걸 강제하거나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결혼식이 그랬고, 그렇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내 결혼식이 어떤 형태로 이뤄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니 아주 솔직히 요즘에는 내 결혼식이라는 게 있을 수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_@. 하지만 만약 결혼식을 올릴 수 있게 된다면 난 그 결혼식이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고 그 사람에게 중요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인사하고,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이 내게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그 생각은 거의 10년째 변함이 없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이들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라던지 '섭섭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라고 하더라. 맞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젠 내가 결혼을 빨리 '못'하면서 아버지께서는 다니시던 대기업에서 정년퇴직을 하셔서 아버지의 지위와 일을 이유로 결혼식에 초대해야만 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고, 우리 집 역시 큰 결혼식을 좋아하지는 않는 분위기다 보니 일단 내 쪽에서의 걸림돌은 없다.
물론 내가 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도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았다고 섭섭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결혼식이라는 게 참 묘해서 지인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건너서 듣게 되거나, 내가 초대받지 못하면 괜히 섭섭해지기도 하니까. 그런 경우에는 사실 결혼식을 아예 확 작게 해 버리고 어떤 형태로든 공간을 빌려서 나와 내 배우자가 될 사람들의 지인을 초대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자리를 파티처럼 만드는 게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들도 주말까지 정장을 입고 얼굴도장 찍고 사진 찍기 위해 가는 결혼식보다는 그런 편한 자리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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