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 돌아가다
작년에 잠시 다시 회사로 돌아갔었다. 그렇다면 회사원이 된 것이냐면 그건 애매하다. 회사 대표가 내가 프리랜서로 하는 일들은 존중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무제한적으로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약속을 한 것은 아니고 일주일에 일정 비율의 시간은 개인 일로 회의, 강의 등을 하기 위해 회사를 비우는 것을 양해해주기로 한 것이다. 이런 건 일종의 '겸업 허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뭔가 프리랜서로서 일의 하나로 회사원이 된 듯한 느낌이지만 단순히 그렇다고 하기엔 또 회사원인 듯한 삶으로 진입했다.
자세한 조건들을 다 나열할 수도, 내가 대표에게 말한 얘기들을 다 설명할 수도 없지만 '세상에 이런 조건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누가 봐도 내게 좋은 항목과 내용이 하나 가득한 전제로 회사에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고민을 거의 2개월 가까이한 것은 내가 이 업을 평생 할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 회사들은 사람을 채용할 때 다 들어줄 것처럼 하다가도 막상 일이 시작되면 '그런 게 어디 있냐?'라는 식으로 나오기도 하지 않나? 나와 손 발을 일로 맞춰본 적이 있고, 그 전까지는 서로를 얇게(?) 오래 알아온 사이라 그 우려는 상대적으로 덜했지만 대놓고 파트타임일 때와 조금은 다른 형태로 회사를 들어가게 되면서 오히려 내가 그 안에 매몰될까 봐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대표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나와 10년 넘게 서로의 존재를 아는 것보다 조금 더 아는 수준으로 아는 사이였던 회사 대표는 작년 7월부터 올해 3월까지 내 커리어와 일들을 철저하게 존중해줬고, 나는 필요한 경우 최초에 얘기된 시간보다 일을 더 하더라도 내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박사학위 논문 작업을 마무리했다. 남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대표가 받고,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길을 놓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우려가 있으면서도 이 회사에 다시 조인하게 된 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를 한 번 경험해 봤기 때문에.
연봉은 어느 정도 수준이냐고? 고맙게도 대표가 내가 생각했던 하한선보다 높게 얘기를 하길래 나는 내가 생각했던 하한선으로 하자고 역 제안했고, 그 조건으로 회사에 다시 돌아오기로 했다. 이는 조금이라도 더 마음 편하게 합의된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로 나가게 되면서 개인 시간이 많이 줄어드는 건 분명하다. 회사에 출근하면서 내가 프리랜서로 하는 일을 다 하려면 난 퇴근 후에도 일을 해야 하고 주말에도 예외 없이 일을 해야 하기에.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프리랜서로만 살 때도 난 그렇게 살아왔다. 그때 조금 더 늘어지고 딴짓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을 뿐이고, 시간을 조금 더 압축이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을 뿐이라고 나는 스스로를 세뇌시키고 있는 중이다.
선택의 이유
이 선택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경제적인 안정감 때문이다. 올해의 경우 운이 좋게 일들이 적정한 수준으로 들어와서 나 혼자 먹고 살 정도의 수입은 보장되었지만, 내가 하는 일들의 특성상 당장 내년에는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는 매우 불투명했다. 그리고 내 경험에도 그렇고, 주위 사람들의 경우를 봐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계가 불확실한 상황이 되면 자신이 가고 싶은 길, 하고 싶은 선택이 아니라 상황에 쫓긴 선택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 선택에 대해서 후회를 하게 되더라. 내게 회사에 다시 나가는 것은 그러한 타협점을 찾는 선택이었다. 경제적인 안정과 내 자유의 일부를 바꾸기로 한 것이 이 선택의 핵심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대표를 신뢰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함께 일했고 같이 일할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나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가 끝까지 대표에게 조건을 계속 추가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입술이 부르트고 악몽을 꿀 정도로 많은 고민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내가 이러한 선택을 하는 데는 이 회사에서 일했던 경험과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프리랜서들은 다시 회사로의 유턴을 선택한다. 그리고 업종에 따라서는 내가 작년 7월부터 3월까지 일했던 것과 같이 파트타임으로 회사에 나가는 프리랜서들도 존재한다. 시니어가 필요한데 잘 없는 업계의 경우 회사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찾아서 파트타임으로라도 나와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되는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회사와 프리랜서 간에는 갑과 을의 균형이 살짝 프리랜서에게 기울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일해야 하는데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혹자는 물을지 모른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난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있고, 지금은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면 한 시점에 어느 정도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일에 할애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내가 프리랜서로 하는 일도, 이 회사가 속한 업종의 일도 하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고 재미있어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게 이 선택을 한 이후의 삶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괴롭거나 힘들지만은 않다.
회사로 돌아간다는 것
프리랜서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회사로 돌아간 프리랜서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회사원으로 돌아간 프리랜서들은 스토리화 되지도 않는다. 세상은 그들의 현재만을 보고 '회사원'으로 분류하고, 세상은 회사원에게 평범하다는 딱지를 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회사원은 자신만의 상황과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프리랜서를 경험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간 사람들은 더더욱 그렇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생활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또다시 돌아가기까지는 얼마나 더 많은 고민을 했겠나?
어떤 이들은 그 선택이 비겁하다고, 실패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프리랜서를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만 할 수 있는 얘기다. 프리랜서라면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 나처럼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일정 부분 유지하는 형태가 아니라 완전히 회사원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나처럼 겸업이 인정되는 형태로 회사로의 복귀는 비율적으로 따지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런 형태로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신뢰가 어마어마해야 하는데, 그런 신뢰가 회사 또는 대표와 개인 간에 형성되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원으로 돌아가는 프리랜서들은 대부분 풀타임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러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들이 있다. 프리랜서로서의 삶은 현실이기에.
스스로를 프리랜서라고 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다. 그런데 내가 어느 글에선가 정했던 '수입원의 개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그리고 내 자유와 자율도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나는 여전히 프리랜서가 맞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이 시리즈를 계속 쓸 예정이다. 하하하
'프리랜서의 일상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 세 가지 명함을 갖고 다닌다 (0) | 2020.01.19 |
---|---|
프리랜서에게 주말이란? (0) | 2020.01.18 |
프리랜서에게 계획이란? (0) | 2020.01.16 |
회사원 체질은 존재한다. (0) | 2020.01.15 |
프리랜서의 가족으로 사는 것 (0) | 2020.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