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주말까지 내 연구를 위해서 설문조사를 설계해서 업체에 넘겨야 했다. 크지도 않은 금액의 연구비에서 인건비를 쪼개서 사비로 의뢰한 설문조사다. 그런데 그 설문내용을 지금까지도 업체에 넘기지 못하고 있다. 내 전공으로 지원할 수 있는 대학 강사 자리가 지지난 주말에 많이 떠서 지원기간 내에 지원서를 작성하느라 일정이 밀렸고, 그 후에는 갑자기 다른 일과 관련된 회의가 갑자기 연달아 잡혔으며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더 급한 일이 밀려서 주말에는 그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처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중간에 급한 번역이 들어와서 긴 호흡으로 가는 일을 미룬 적은 이미 몇 번이나 있었다. 큰 수입을 올리지 않는 프리랜서인 나의 삶이 이렇다면, 더 큰 수입을 올리거나 일이 더 많은 프리랜서들은 그런 일들이 더 잦을 것이다. 이처럼 프리랜서의 계획은 깨지기 위해서 세우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계획이 외부 요인으로 인해 수시로 바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랜서는 매일, 그리고 매주 어떤 일을 언제까지 할 지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는 프리랜서는 외부에서 일을 강제하는 사람이나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 있지 않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프리랜서는 한 없이 늘어질 수 있고, 그로 인해 결과물의 수준이 떨어지면 일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들은 이처럼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이 외부요인으로 인해 깨지는 경험을 적어도 매달 몇 번쯤, 보통은 매주 몇 번쯤, 심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도 경험하게 된다. 가끔은 프리랜서로 살기 위한 가장 큰 덕목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정을 수정 및 변경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프리랜서들은 본인 시간을 본인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회구조에서 가장 말단에 있는 프리랜서는 본인의 계획과 뜻대로 시간을 쓸 수 있는 범위가 그렇게 크진 않다. 본인이 업계의 갑으로 서기 전까지는.
그렇게 계획들이 자신의 의지나 실수와는 무관하게 깨지는 과정에서 해야 할 일들은 계속 밀리고 쌓인다. 프리랜서들이 마감을 마치기 위해 저녁 늦게까지 일하거나 밤샘 작업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프리랜서가 아닌 사람들은 '네가 늘어져서 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 '넌 새벽형 사람이라서 그때 일하는 것 아니냐'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있고, 그런 사람이나 그런 경우도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해서 순간순간을 살아도, 11시에는 잠이 들어야 하는 체질의 사람도 프리랜서 일을 하다 보면 꽤나 자주 새벽 작업(?)을 해야 하는 순간들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중간에 아프기라도 하면... 프리랜서에겐 최소한 몇 주간은 헬게이트가 열린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내가 실수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오늘도 그 설문조사를 반드시 내일은 업체에 넘기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벌써 10번째 하는 다짐이고, 오늘도 내 일정은 당장 급한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어제, 아니 오늘도 새벽 3시까지 다른 일을 한 건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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