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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연애와 남녀평등

'할인카드' 찾는 남자

김옥빈 씨가 예전에 결제할 때 할인카드를 쓰는 남자를 보면 조금 없어 보인다는 말을 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김옥빈이라는 '사람'이 괜찮다고 느끼는 건 그 이후에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작가님들이 써줬어도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다면 내가 말하지 않지 않았을까?'라고 답한 것을 본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이 사람 참 솔직하고 건강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한 것이 20대 초반이었다는 것을 감안하고 가만히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에서 20대 초반의 여자분들 중에서 데이트를 마치고 쿨하게 카드로 확 결제를 하고 '가자'고 말하는 남자와 결제를 해야 하는 시점에 지갑을 뒤적이면서 '이거 포인트 할인돼요? 이거는요? 이런 거에서는 할인 안 되나요?'라고 묻는 남자 중에 선택을 하라고 하면 후자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대부분이 전자가 '남자답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김옥빈 씨의 그런 발언에 대해 반감이 없는 것은 그녀의 그런 말이 사실 최소한 어렸을 때, 혹은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의 무의식에 깔려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말이다. 마치 본인이 쿨하게 결제하고 여자한테 사는 게 남자다운 것이라고 느끼고 생각하는 경향은 분명 남자들에게도 있다.

남자의 마초성

그런데 문제는 남자와 여자 모두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 그런 '쿨함'의 이면에는 남자의 '마초성'이 있다는 것이다. 결제를 할 때 그런 방식으로 리드하는 남자들은 데이트 코스, 둘 사이의 의사결정, 스킨십에서도 '쿨하게' 자신의 방식대로 '리드'하려는 경향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고, 이성과 의사소통을 할 줄 알고 들을 줄도 아는 일부 사람들은 그게 변해갈 수 있겠지만...

반면에 이와 같은 남자들의 마초성에 반발하며 모든 것을 본인이 주도를 하려는 여자들도 존재한다. 데이트를 마친 후에 반드시 남자를 집까지 본인이 굳이 데려다주겠다는, 밥값은 본인이 반드시 내겠다거나 엄격하게 더치페이를 하겠다는 여자는 실제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계적인 평등은 사실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항상 '누가 뭐를 더했는지, 덜했는지'를 정확하게 계산하게 만들면서 그 관계에 균열 가져오기도 하기에 굳이 그렇게까지 기계적인 평등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연애에서 남녀평등

어쩌면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진정한 남녀평등은 두 사람이 다른 것은 다르다고 인정하고, 서로의 성역할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굳이 의식하지 않고 상황에 맞춰서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자가 더 벌면 남자가 조금 더 쓸 수도 있고, 여자가 여유가 있으면 여자가 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또 남자가 '남자라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고 안전하게 집에 데려다주고 싶다면 그럴 수도 있지만, 남자는 차를 갖고 오지 않았는데 여자가 가져왔다면 여자가 데려다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보면 결국 연애를 힘들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의 틀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남자와 여자는 분명 다른 면이 있고 그런 다름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사실 그러한 타고난 다름이 아닌 것으로 인한 것이 아닌 이상 두 사람의 상황에 따라 다른 것들은 맞출 수 있는 것 아닌가?

이쯤 되면 일부 남자들은 '그래, 결혼할 때도 왜 남자가 집을 해 가야 돼? 여자가 해올 수도 있는 거잖아?'라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 이면에 '나는 가진 게 없으니까 있는 여자가 해와야지'라는 생각이 있는 것이라면 많은 남자들이 비판하는 '잘 사는 남자 잡아서 놀면서 풍요롭게 살고자 하는 여자'와 그 남자가 다를 바가 뭐가 있나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사실 때로는 많은 남자들이 본인보다 잘나거나 더 많이 가진 여자와 결혼하면 '가오'가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열등감을 갖지 않는가?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남자가 여자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마초적인 생각은 아닐런지...

이상적인 연애와 남녀평등

분명한 것은 남자의 조건만 보고 풍요로운 삶만을 목적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결혼하고 나서 그 집안과 그 사람의 의사결정에 끌려다닐 가능성이 높고, 본인은 가진 것도 없으면서 남자가 다 해야 한다는 건 사회적으로 불평등하다며 '여자가 이것, 저것, 저것도 할 수 있는 거잖아'라고 입 밖에 내는 남자도 결국 그런 여자와 다를 바가 없기에 애초에 짝을 만날 가능성이 매우 극히 낮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에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여자들은 남자보다 예민해서 그런 남자들은 애초에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많기에...

어쨌든 이렇게 생각해보면, 연애와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서로가 남녀의 성역할을 나눠놓고 그 역할에 기반해서 상대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특히 물질적인 측면에서) 기대하지 않고 그 사람 자체의 매력에 집중하는 관계가 가장 건강한 관계가 아닐까 싶다. 애초에 그런 것들은 조금 제쳐놓고 그 사람을 볼 수는 없는 것인지... 물론 그런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본인이 물질적인 측면 외에 다른 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이상주의자적인 글을 끄적인다.

그래서 사랑을 더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