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이란 프로그램이 한창 반영될 초기에는 방송을 나름 재미있게 봤었다. 진짜로 평범한 사람들이 나오는 평범한 소개팅이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압축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긴 했지만. 그런데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압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편집의 영향이 커지는 듯한 모습이 싫어서 점점 그 프로그램을 보지 않게 됐다.
그 방송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서 '짝'이 폐지되고 나서 몇 년이 지나자 작년부터 여러 방송들에서 리얼한 남녀 얘기를 다룬 프로그램들이 조심스럽게 만들어지고 있고, 그 방송들은 역시나 화제가 된다. 방송국들이 [일반인의 리얼한 소개팅과 연애]를 다루는 것 또한 그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시청률은 2% 초반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하트 시그널 2]는 화제성에서는 1위에 오르지 않았나? (사실 젊은 사람들은 온라인이나 IPTV의 다시보기로 TV를 대부분 본다는 걸 감안하면 20-30대에서 하트 시그널을 본 사람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데 짝, 하트 시그널, 로맨스 패키지와 같이 일반인의 연애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있다. 그 첫 번째 문제는 화면에서 나오는 장면들이 흥미를 위해서 편집되었다는 것이다. 그 프로그램들은 모두 제작진이 결론을 아는 상태에서 편집이 들어가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 결론으로 유기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편집될 수밖에 없다. 가장 화제가 된 하트 시그널의 예로 들자면 매 회마다 출연자들이 하는 선택을 읽어낼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하기 위한 편집이 이뤄질 수밖에 없기에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들은 그 과정에서 빠질 수밖에 없단 것이다.
그 두 번째 문제는 그 과정이 인위적이라는데 있다. 위 프로그램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인위적인 미션을 주고 제한된 틀 안에서 선택을 하게 한다. 하트 시그널의 예를 들자면,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같은 공간에서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기를 원했지만 출연자들은 서로의 번호를 몰라서 SNS로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현실에서 그런 관계가 어디에 존재하나? 물론 그들은 출퇴근을 하면서 집에서 얼굴을 보겠지만, 과연 집에 돌아와서 서로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나? 실제로 출연자들은 서로 며칠째 못 봤다는 말을 하지 않나? 그런 환경에서는 상호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제한됨으로 인해 오해가 더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방송을 위해 통제한 환경에서 이성 간의 감정이 정상적으로 커갈리는 만무하지 않나?
그 세 번째 문제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데 있다. 하물며 소개팅을 해서 연애를 할 경우에도 보통은 3번 만났을 때 사귄다고들 한다. 그것도 현실적으로 너무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내 경험으로는) 대부분이다. 그런데 위 프로그램들은 짧으면 2박 3일, 길어도 3주 안에 결정을 하게 한다. 몇 번의 데이트로. 그것도 완전히 사적으로 둘 만의 대화와 연락할 수 있는 채널은 제한을 둔 상태로 말이다. 3주 안에서, 그렇게 인위적으로 연애를 생각하도록 강제하는 틀 안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그 안에서 이뤄지는 생각과 만남들이 얼마나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더군다나 본인이 외모 등에서 즉각적으로 호감을 느끼게 되는 사람이 한 명 이상일 때 말이다.
하트 시그널의 결과로 인해서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에 몰입해서 출연자들의 SNS에 달려가는 걸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왜 저럴까'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1회 방송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짧으면 하루, 길어도 2-3일 분량의 일들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럴 수 있겠다 싶더라. 방송은 무려 13회에 걸쳐서, 세 달 동안 나갔으니 말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만약 세 달 동안의 일이라면 그 결론에서 김현우의 선택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겠지만, 김현우가 말했듯이 그 안에서의 시간은 3주에 불과했다. 그 시간 동안 어떻게 자신의 마음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겠나? 더군다나 결혼까지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말이다. 우리가 주위에 정말 매력적인 이성이 둘 있다고 하자, 아니 소개팅을 연달아했는데 두 사람이 정말 다 괜찮았다고 하자. 두 사람을 조금 더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우리는 일정기간 동안 하지 않을까? 그리고 각 사람 앞에서 우리 모습은 모두 어느 정도 이상 호감을 표현하고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경우에 어떤 선택을 할지 몰라서 두 사람을 모두 한 달 정도 만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나는 꽤 많이 봤다.
물론 현실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방송이 그런 채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연애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순수하게 짝을 찾기 위한 것이기보다는 방송이 되는 과정에서 본인 일을 홍보하기 위한 의도가 최소한 5할 정도는 되는 듯한 느낌이 있고,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인위적인 틀 안에서 남녀 간에 말 그대로 '감정노동'을 하게 만드는 프로그램들을 보면 재미보다는 안타까움과 갑갑함을 느낀다. 그나마 최근에 방영된 일반인의 연애 관련 프로그램들 중 가장 덜 인위적인 것은 첫 만남을 주선해주고 그 장면에 개입하지 않고 첫 만남만 자연스럽게 내보내는 선 다방 정도가 아닐까?
포털에 올라오는 기사들을 보면 본의 아니게 (?) 내용들은 파악할 수 있게 되지만 '짝'을 보지 않은 이후로 개인적으로 일반인의 연애 프로그램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는 않는다. 그 인위적인 게 싫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도 진짜라고 하기에는 어렵고 말이다. 두 사람 사이에서의 사랑과 감정이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 생각하기에. 어떤 사람들은 하트 시그널은 그래도 자연스럽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일단 상대를 놓고 매일 평가를 하면서 매일 어떤 형태로든 남녀관계에 시간과 에너지를 그렇게 쏟아야 하는 것 자체가 감정을 인위적으로 형성시키지 않을까?
사실 개인적으로는 연애 관련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연애'라는 소재를 갖고 방송국도, 거기에 나오는 출연자들도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게 주된 목적이 되어버린 느낌이 없지 않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출연자들이 카메라 밖에서 하는 일과 주고받는 연락에서는 어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카메라에 담긴 화면 안에서 만큼은 진짜 사랑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건 내가 너무 시니컬한 걸까? 사랑이 결국은 돈벌이의 소재로 사용되는 듯해서 안타까운 것은 내가 너무 멀리 나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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