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결혼식
내가 가 봤던 최악의 결혼식은 호텔은 아니었으나 호텔급(?)으로 진행된 결혼식이었다. 다른 의미는 아니고 밥이 코스로 나왔다는 의미다. 모 대기업 사옥 1층에 있지만 실질은 호텔과 마찬가지인 환경의 결혼식. 사실 그 식장에 몇 번은 갈 일이 있었고, 다른 결혼식에는 그 전이나 후에도 한 번도 그렇게 최악이라고 느낀 적은 없는데 그 결혼식이 내게 최악의 기억이었던 것은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사람들 때문이다.
식장은 훌륭하고 전체적인 식 분위기도 당연히 식장의 영향을 받아 괜찮았지만 문제는 내가 앉은 테이블이었다. 늦게 혼자 가서 테이블에 혼자 앉았는데 어쩌다 보니 그 테이블이 신랑 측 아버님의 일이랑 관련된 분들이 한나 가득 이셨던 것이다. 뻥 뚫린 홀에서, 그 테이블에서 신랑과 신부가 잘 보이는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업 얘기만 하고 계셨다. 20대 후반에 그 테이블에 앉은 덕분에(?) 이런 결혼식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단 생각에 그 이후로 30이 될 때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결혼식에 대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었다.
스몰 웨딩의 유행
그나마 5-6년이 지난 지금 그래도 스몰웨딩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으면서 그렇지 않은 결혼식들도 생겨나고 있는데 이젠 또 작게 결혼하는 게 돈은 더 많이 들기도 한단다. 유행 따라 그걸 준비해주는 에이전시들이 발 빠르게 생겨나서이겠지... 그러면서 스몰웨딩의 의미가 퇴색되었다는 식의 기사들도 나오고 있는데...
그런 기사들의 의미는 이해가 되는데 사실 그런 기사들이 문제를 삼는 것이 돈이라는 사실이 거슬리는 것은 내가 삐딱한 것일까? 스몰웨딩은 꼭 돈이 적게 들어야만 하는 것일까? 빚을 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만약 재력이 된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왜 결혼식의 규모를 얘기하는데 돈 애기가 먼저 나올까?
이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결혼식과 돈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다는 통상적인 인식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축의금은 받지 않는다는 결혼식은 부의 상징(?)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그리고 결혼식을 크게 하려고 하는 것 또한 부모님들의 의사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아무래도 뿌린 축의금들이 있기도 하지만, 부모님이 한창 높은 자리 나 커리어에서 피크에 계실 때 결혼식을 하는 게 좋다는 건 결국... 결혼식과 돈을 연계하는 생각이 아니던가...
결혼식이란...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결혼식이란 두 사람이 이제 부부의 연을 맺고, 서로를 믿고 살아가겠다는 평생의 약속을 하는 자리다. 그래서 사실 돈이 큰 영향을 미칠 필요가 없다. 원론적으로는 말이다. 결혼은 두 사람이 주위 사람들 앞에서 약속을 하는 자리지 장사를 하는 기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은 평생에 가장 화려해야 하는 날도 아니다. 평생 한번 공주나 왕자가 되는 그런 자리로써 의미를 갖는 날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해 보면, 사실 결혼식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는 하는 사람들 분수껏 하면 되는 게 아닐까? 돈이 많고 여유가 있다면 조금 더 식에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을 빌려서 하면 되는 것이고 조금 여유가 덜하다면 그에 맞춰서 하면 된다. 축의금도 사실 원칙적으로 생각하면 축하하는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은 알아서 내면 되고, 그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결혼식에 가지 않으면 된다.
결혼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주위 사람들' 앞에서 평생의 약속을 하는 것이다. 남녀가 서로의 인생에 들어가고 온전히 하나가 되겠다는 약속 말이다. 그걸 주위 사람들 앞에서 함으로써 더 책임감을 갖고, 또 상대방 주위 사람들을 알아가고, 대화하며 인사함으로써 서로의 인생에 더 깊게 들어가게 되는 입구가 결혼식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식의 핵심은 주례에도, 식 자체에도 있지 않다. 결혼식의 핵심은 사실 두 사람의 가까운 지인들이 모여서, 그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인사를 하는 데 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식 자체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만 사실 두 사람이 가정을 꾸리면 그 가정 안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모두 일어날 수 있는데, 그때 그 과정을 함께 털어놓고 같이 옆에서 붙들어줄 사람들이 그러해줄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런 사람들 앞에서 약속을 하는 것이 결혼식의 의미이기에 그걸 또 그렇게 부인하는 게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나라나 외국 모두 과거에는 결혼식이 열리는 날에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밥을 같이 먹고 어울렸었다. 그리고 지금도 외국에서는 그런 결혼식을 여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나 몇 명이나 결혼식에 왔는지, 돈을 얼마나 썼는지가 아니다. 두 사람이 진정성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 앞에서 약속을 하는 자리인지가 결혼식에 대한 판단을 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디테일은 결국 결혼을 하는 두 사람에게 달려 있는 것이고 말이다.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 > 결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정과 결혼의 손익계산서 1 (0) | 2020.03.21 |
---|---|
결혼에 대한 흔한 착각 (0) | 2020.03.10 |
결혼할 사람과 연애할 사람의 구분에 대하여 (0) | 2020.02.27 |
결혼은 현실이니까, 조건보다 사람이 먼저다 (0) | 2020.02.10 |
동거, 살아보고 결혼한다는 것에 대하여 (0) | 2020.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