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성애자
친한 형과 어제 카톡을 하는데 이 형이 연애 이외에 다른 영역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되게 반응이 이상해서 왜 그러는 거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뭔가 내 글이 누군가에게 그런 영향을 주는 게 적응이 안된다면서 내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며 나를 '연애 성애자'라고 불렀다. 사실 조금 더 과격한 표현이 있었는데 순화된 표현만 가져온 것이다.
그렇다. 사실 돌아보면 올해가 되기 전까지,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항상 연애를 엄청 싶었다. 내 상황이 너무나 힘들고, 누군가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정말 홀로 고립되어 있는 듯한 상황으로 인해 지쳐가면서 연애를 하지 않는 이상 지금 상황에서 나를 이해해주고받아줄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 없더라. 이젠 나이도 있는 만큼 죄송스러운 만큼 부모님께 의지할 수도 없었기에...
이기적인 생각이었음을
그런 내 상황을 나는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이 시기를 모르는 사람과 평생 같이 살 자신이 없어서 이 시기를 같이 보낸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표현으로 스스로의 생각을 포장했었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돌아보면 사실 결국은 그냥 지금 힘드니까 이 시기에 누군가가 내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고, 나랑 평생을 살 사람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어땠는지를 알았으면 하는 것이었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내가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어떻게 그 사람이 나로 인해서 힘든 시간을 보내기를 바란단 말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또 힘들어하는걸 어떻게 '원한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까지 생각한 건 아니지만 정말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던 그 시기에 누군가를 옆에 두고 싶어 했다는 것은 결국 상대가 힘든 것과는 무관하게 내 옆에만 있어주기를 바라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아닌가?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에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 것은 오히려 다행이었고 그런 시기 중에 나를 만나줬던 친구들을 떠올리면 고맙고도 미안하기도 하다. 그녀들도 내 상황 때문에 힘들면서도, 내 상황 때문에 나한테 그걸 티도 내지 못했겠단 생각을 하면 말이다.
연애를 하지 않아야 할 때
생각해 보면 대부분 사람들은 연애나 결혼을 '본인이 외롭거나 혼자 살기 싫을 때'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러한 외로움, 그리고 혼자 있기 싫다는 마음은 결국 상대를, 누군가를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맞추려 하는 방식의 연애를 하게 만든다는데 문제가 있다. 물론 연애는 두 사람이 서로 맞추면서 하는 것이기에 상대가 내게 맞추는 부분도 있겠지만 나도 상대에게 맞춰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은 연애가 연애일 수는 있지만 과연 그것이 사랑일까? 사실 그처럼 이기적인 연애는 어떻게 끝나게 될지도 분명하기 때문에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나은지도 모른다.
그리고 극도의 외로움은 상대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객관성을 상실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는 면에서도 극도로 외롭거나 연애가 엄청하고 싶을 때 우리는 '사람 보는 눈'이 그러한 감정적 동요로 인해 약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즉, 외로운 감정에 휩쓸리다 보면 사실은 본인과 맞지 않는 면이 많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사람과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본인이 고수하려던 조건을 양보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악수를 두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물론 그렇게 시작한 연애도 진짜 서로에게 인연인 경우도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나, 확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정말로 감정적으로 엄청나게 외롭고 (적당히가 아니라 엄청! 나게) 내가 얼마 전까지 그랬던 것처럼 머리의 한 부분이 평상시에도 연애에 할당되어 있는 상태라면 역설적이게도 브레이크를 잡고 연애를 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 시기에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에게 굉장히 이기적이게 굴게 되어 건강한 관계를 형성해 나가지 못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면 그러한 감정에 치우쳐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연애를 할 수는 있어도 사랑은 하기 힘들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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