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호감이 생겨서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 다가갔던 친구에게 '오빠가 여기저기 찌르고 다닌다는 얘기 다 들었어요. 그런 사람은 만나고 싶지 않네요.'라는 게 요지였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다. 그 당시에는 내가 누구에게 '찌르고 다녔냐'고 물어봤지만 그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물론 그런 오해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20대 때까지만 해도 여사친이 워낙 많았고, 어느 정도 이상 친하거나 같은 모임 틀 안에 들어온 사람한테는 이성적인 호기심 없이도 연락을 잘 했었다. 내겐 정말 친한 여사친이랑은 둘이 밥 먹고 영화를 보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가끔 오해를 받은 적이 있기에,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그런 오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우연히 나에 대해서 그렇게 오해를 했던 사람들이 누군지를 알게 됐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그 친구들은 좋은 사람이긴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내게는 단 한 번도 이성으로 느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그런데 그들이 한 오해로 인해 나에게 특정한 이미지가 씌워지고 그로 인해 호감을 가졌던 사람에게 이성으로 다가갈 기회도 받지 못한 게 억울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친구들이 잘못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해는 충분히 할 수 있다. 사람마다 자라온 배경이 다르고 그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달라지게 되어 있기에. 남중, 남고 공대를 나온 사람 또는 여중, 여고, 미대를 나온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이성을 대하는 데 있어서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아닌가? 그래서 사실 군대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남자끼리만 있는 공간을 경험해 본 적이 없고, 속한 집단에 항상 여자가 2/3 이상이었던 나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않은 남자들과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오해를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이 오해한 것 자체는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기분이 나빴던 것은, 오해일 수도 있는 자신들의 느낌을 사실인 것처럼 공개적인 장소에 얘기하고 다녔다는 데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그럴 여지를 줬겠지' 라던지 '애초에 누군가가 오해를 했다면 그건 오해하게 만든 사람의 잘못도 있는 거다'라고 피드백을 듣는 경우가 많은데, 그 논리는 최근에 미투와 관련해서 나오는 항변들과 묘하게 닮아 있다. 성추행, 성폭행을 당한 자들에게 '네가 여지를 안 줬다면 그랬겠어'라고 하는 것과 위 피드백들은 사실 동일선상에 있지 않나?
이런 문제는 남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여자들에 대해서도 남자들이 '걔가 꼬리를 쳤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 남자들이 많은데, 그 얘기들을 들어보면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상대가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 한 반응을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계속해서 밥을 먹자고 하거나, 선물을 주는데도 애매한 입장을 취하면서 '몰랐다'라고 항변하는 사람들, 혹은 그 과정을 즐기며 소위 말하는 어장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분명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더 많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밥을 한두 번 같이 먹자고 했다고, 저녁 늦은 시간이 한두 번 전화했다고 해서 그게 이성적인 호감을 표현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모두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이성 간에 오해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로 반복적으로 밥을 먹자고 하고, 대화하는 내용에서 과도한 칭찬을 하는 등 '누가 봐도' 호감의 표시인 게 분명한 게 아닌 이상 주위에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공개적으로 하지는 않는 게 예의가 아닐까? 그게 호감의 표시라 하더라도 본인을 좋아해주거나,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굳이 주위에 전할 필요가 있을까?
남자들 중에도 그냥 편하게 부담 없이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여자들 중에도 거절하는 게 불편하고 힘들어서 작은 것들에는 상대방에 적절히 응대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상대방의 분명한 직구가 있지 않은 이상, 굳이 상대방의 행동에 평가를 하지 않는게 최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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