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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프리랜서 수입의 허와 실

박사학위를 받고 당연히 취업준비를 했다. 그런데 지도교수님께서 학교에서 보직을 하시느라 논문 봐주시는데 약간의(?) 빈틈이 있었을 뿐 아니라 지도교수님의 철학이 '학위논문은 혼자 쓰는 것'이다 보니 2년간 혼자 주구장창 부딪히고 커미티에서 깨지면서 학위논문만 썼다 보니 등재지 실적이 없었고, 결국 그게 큰 걸림돌로 돌아왔다. 아, 소논문을 아예 쓰지 않았냐 하면 그건 아니다. 교수님께서 장이신 기관에서 내는 등재지가 아닌 논문집에는 코스웍 하던 시절을 포함해서 글을 5개 이상 썼으니까. 연구를 안 한 것이 아니라 실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할 글만 썼을 뿐이다. 그 또한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사를 받으면 모두가 그렇듯이 취업을 하거나 강사 자리를 받기 위해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역시나 '인생은 결국 혼자 사는 것'이라는 철학을 가지신 지도교수님의 특별한 지원은 없었다. 더군다나 작년에 조국 교수 사태 등이 터지면서 교수님께서 뭔가를 밀어주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아는 동생이 하는 마케팅 회사에 정규직으로 들어갔던 것도, 프리랜서로 일을 받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먹고살아야 했으니까.

사실 박사를 받고 곧바로 취업을 하지 못하면 먹고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다행히 연구과제 공모에서 선정되어 과제를 받았고, 정말 예상하지 못한 프리랜서 일들이 들어왔다. 있는 대로, 준다는 일은 모두 받았다. 언제 일이 들어올지 모르고, 일단 지금 벌어놔야 나중에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상황에 내몰려 프리랜서가 됐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작년 한 해는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은 누리면서 돈이 모인 정도의 매출"은 올렸다는 것이다. 너무나 고맙게도 정규직으로 받아줬던 동생 회사에서 월급을 받았던 것이 기초가 되어줬지만, 스스로 몸값을 낮추고 들어갔기 때문에 두 달치 월급으로 그 정도 생활을 1년간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작년 9월까지는 하루, 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는 계약한 일들의 입금일이 10월에서 12월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계획을 잡아 프리랜서로 일을 받으면서 돈이 안되더라도 내 기반이 되어 줄 일을 하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은 10-12월에 실질적으로 입금된 나의 매출(?) 영향이 컸다. 작년 경험과 내가 갖고 있는 인프라를 놓고 봤을 때 아주 극한으로 적게 잡아도 월평균 100만 원 이상의 수입은 들어올 수 있는 루트가 있다는 판단이 섰고, 그렇다면 들어오는 일들을 받으면서 내 인프라를 확장해 나가면 3-4년 정도 잘 버티면 최소한 생계 자체는 걱정하지 않을 시스템을 만들어 놓을 자신이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3-4년 후면 일하지 않아도 계속 뭔가 돈이 들어올 수 있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건 아니다. 3-4년 후면 당장 언제 일이 들어올지 가슴을 졸일 필요는 없을 듯하단 판단이 섰단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3-4년은 정말 미친 듯이 다양한 일하고 관계를 구축하면서 나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내가 일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이 나를 쫓아오게 될 수도 있을 듯하단 판단을 했다.

 

그런데 프리랜서의 '매출'과 '수익'은 엄청나게 다른 개념이다. 회사에 다니면, 아무리 복지가 없는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사무실 비용이나 낮에 쓰는 수도세, 전기세, 건강보험료 등은 본인이 내지 않는다. 그것까지 내라고 하면 그 회사 사장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만두는게 맞다. 조금 상황이 나은 회사들은 식대를 일부 지원해주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중소기업들도 복지몰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처럼 회사원들은 알게 모르게 일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비용을 회사를 통해 지원받는다. 그게 대단한 것이라는 게 아니라 당연한 건데, 어쨌든 회사는 그렇단 것이다.

 

회사원은 잠시 슬럼프를 겪으면서 방황을 해도 엄청나게 큰 실수가 아닌 이상 상사에게 깨지는 수준에서 일단락되고 개인적인 상황이 심각하면 양해를 받을 수 있지만 프리랜서는 그런 안전망이 없다. 내가 지금 받은 일이 많아서, 몸이 안 좋아서, 집안일이 생겨서와 같은 핑계는 프리랜서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사유로 일이 밀리는 순간 일이 끊길 수 있기 때문에 프리랜서는 무조건 납기를 맞춰야 한다. 그리고 계약이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납기를 맞추고 나서도 실제로 돈이 입금될 때까지 프리랜서들은 어느 정도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있을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의 '매출'은 그런 과정을 통해 발생한다.

 

프리랜서는 모든 것이 비용이다. 물 하나를 사 마셔도, 출장을 가도 모든 것은 나의 [매출] 안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프리랜서는 항상 모든 결정을 할 때 최대한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끼는데도 한계가 있다. 일을 받는 게 확정되지 않았어도 회의를 하러 가야 하고, 일단 한 번 보자고 하면 무조건 가야 하기 때문에 교통비나 그 인근에서 드는 식비를 아낄 수는 없다. 그리고 일을 하다 보면 집과 사무공간이 분리되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엄청나게 증가하기 때문에 별도의 업무공간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우리나라에 공유 오피스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는 것은 그러한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그 사용비용 또한 다 프리랜서의 매출에서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프리랜서가 수입 또는 매출이 많다고 해서 수익률이 높은 것은 아니다. 수익률은 그 프리랜서가 하는 일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 있다. 나는 그나마 모든 일이 앉아서 컴퓨터로 하고, 출장을 갈 일이 없어서 비용이 적은 편인데, 그게 또 역설적인 게 출장을 갈만한 일은 수익률을 생각해서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매출이 확 뛰지도 않는다. 프리랜서들은 보통 수입이 늘어나면 그만큼 지출도 늘어나게 되어있다. 이는 수입이 늘어난다는 것은 일의 규모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일이 커지면 보통 비용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이게 프리랜서의 딜레마이자 아이러니가 아닐까?

 

프리랜서들 중에 수입이 많은 사람들, 분명히 있다. 그런데 수입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는 사람들의 업무 하는 방식을 보면 그들은 실질적으로 프리랜서가 아니라 회사처럼 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프리랜서들의 수입과 매출은 상황과 사람에 의존적이기 때문에 단 한 푼도 감정노동이 섞이지 않고 발생하는 경우가 없다. 입금되기 전까지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만 해도 그렇다. 프리랜서들은 자신에게 일을 줄 조직의 업무가 돌아가지 않다 보니 계약 얘기가 오가던 건들 조차 계약이 미뤄지고, 그 계약이 이뤄지리란 보장은 없다. 아무리 잘 나가는 프리랜서라 할지라도 그러한 감정노동 없는 프리랜서는 아무도 없다.

 

내가 그에 해당하는 경우는 아니지만, 가끔 수입 많은 프리랜서들에 대해서 '쟤는 왜 저렇게 돈을 많이 받아?'라는 얘기를 들으면 난 항상 속으로 혼자 답한다. '그렇게 비용을 지불하고 일을 줄 수준의 능력을 갖추는 과정에서 흘린 피, 땀, 눈물에 대한 대가야. 그리고 지금도 그 사람은 그 피, 땀, 눈물을 흘려야 그 정도 수입을 받을 수 있어. 그 사람이 그 과정에서 겪고 혼자 감당해야 했던 인생의 무게를 모르면 함부로 판단하지 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