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ssay /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

입금일자를 다르게 설정하는 이유

프리랜서의 계약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건 별로 계약을 해서 그 일이 끝났을 때 받기도 하고, 전체를 프로젝트로 받아서 선급금, 중도금, 잔금으로 나눠 받기도 한다. 운이 좋은 경우에는 일정 기한 동안 월급처럼 매달 입금되는 형태로 일을 받기도 한다.

입금이 되는 날짜 역시 천차만별이다. 건 별로 계약을 하면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갑님들의 상황에 따라서 비용 지급 일정이 적지 않게 밀리기도 하고, 선급금, 중도금, 잔금으로 받는 경우에는 보통 날짜가 정해져 있어서 그에 대해서도 프리랜서가 의견을 낼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경우에도 좋은 회사들은 입금 일자를 지키지만 담당자가 조금만 신경을 안 쓰거나 내부적으로 정신 없는 일이 있으면 이 또한 밀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먼저 알아서 넣어주는 경우는 절대 없는 듯하다.).

아주 운이 좋은 경우 월별 지급이 이뤄지고 보통은 그 회사에서 대금을 처리하거나 직원들 월급을 지급하는 날에 맞춰서 입금이 이뤄진다. 엄청나게 운이 좋으면 입금일자를 정할 수 있게 해주는데 난 그럴 때 선택지들 중에서 다른 계약을 통해 입금이 이뤄질 가능성이 적은 날짜를 선택한다. 선택의 폭이 정말 넓다면 난 다른 입금 날짜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날짜로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럴 정도의 선택지가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건 프리랜서도 회사원과 마찬가지로 입금일자가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회사원들은 '우리는 진짜 월급 날만 기다리며 산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프리랜서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프리랜서들도 가장 행복한 날은 입금이 된 날이다. 회사원들은 특정 일자에 월급이 들어오는게 정해져 있지만 프리랜서는 심지어 이마저도 입금이 되기 전까지는 입금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입금일자의 행복감은 어쩌면 회사원의 그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런 입금일자의 간격을 최대한 벌려 놓는 것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즐거운 날을 하루라도 더 늘리고 그 늘어난 날의 행복을 최대한으로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는 한 번에 큰 금액이 입금되어도 그 행복감이 지속되는 기간은 조금 덜 되었을 때보다 엄청나게 크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2건에 대해서 200만원이 하루에 입금된다고 해서 1건이 100만원 입금되었을 때보다 행복한 기간이 2배로 늘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100만원이 15일 간격으로 입금이 되면 한 번 입금된 행복감이 강도는 조금 약해도 1-2일이 갈 수 있고 그 다음에 입금하면 또 그 정도의 행복감이 1-2일 정도는 갈 수 있다.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기 위한 선택이다. 난 피 마르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단 하루라도 더 웃기 위해 가능하면 입금 날짜를 다르게 설정한다. 이는 수십억을 이미 등에 업고 있는 프리랜서가 아니라면 다른 프리랜서들도 비슷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