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비판이 많다. 지금까지 본 게 아깝다는 평가도 많다. 작가의 필력을 탓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난 생각이 조금 다르다. 작가도, 감독도 모든 걸 의도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드라마 초반에 윤진아와 서준희의 관계가 너무 빨리 진전되면서 뒤에서는 무슨 얘기를 다루려고 하는지가 궁금했고, 정말 막장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물론 이해는 된다.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때로는 현실을 잊을 수 있을 정도의 무엇인가를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드라마만큼이나 거칠게 부딪히고, 대놓고 폭발하는 일은 현실에서 자주 발생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현실에서 일어나기는 하지만, 이 드라마처럼 종합 선물세트로 나타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해야 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서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걸 그대로 표현하면, 이 드라마에서 일어나는 그런 종합 선물세트를 우리는 주위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게 될것이다.
윤진아의 어머니처럼 자기 자식이 더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마음은 어느 부모에게나 있지 않나? 나도 어머니께서 별로 좋아하시지 않았던 배경을 가진 친구를 만나다 헤어졌을 때, 내가 그 친구를 만나는 동안 표현을 못하셨을 뿐 마음과 머리가 복잡한 상태 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반응을 우리 어머니에게서 본 적이 있다. 내가 그 친구를 만나고 있을 때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지만,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셨다면 어머니는 윤진아의 어머니와 똑같이 행동하셨을 것이다. 이 세상에 생각보다 많은 부모님들이 그러셨을 것이다.
윤진아가 이해가 안 되는가? 남자든 여자든,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어지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급해지고 생각이 많아진다. 나이가 들수록 감정에만 충실한 사랑을 하는 건 어려워지고, 철이 들면서 부모님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완벽한 사람이 없다는 건 알기에 다른 건 조금 아니어도 특정한 면이 괜찮은 사람을 놓고 고민하게 되고, 그러다 그런 사람과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긴 연애보다 짧은 연애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다 싶으면 결단을 하기 때문에. 그리고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덜 무모해지기 때문에 현실에 항상 발을 딛고 현실을 중심으로 생각하게 된다. 사실 드라마에서 윤진아가 살아내는 패턴들은, 우리나라에서 30대 중반을 넘은 상당수 싱글 남녀들의 마음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연애 외에 다른 일들이 있어서 그게 압축적으로 보이지 않고,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과 일상을 모두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윤진아와 같은 패턴을 현실에서 보지 못할 뿐이다. 아 물론, 그건 30대 중반 이상의 나이대에 싱글인 사람들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20대나 30대 초반에 결혼한 친구들은 그런 생각의 꼬리들을 이해하지 못하더라.
내가 이 드라마의 전반적인 구성에 감탄을 하게 되는 건, 윤진아의 가정과 서준희 남매의 관계를 설정해 놓은데 있다. 만약에 그 관계가 설정되어있지 않았다면, 이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흘렀을 수 없기에... 그 관계가 없었다면 윤진아는 서준희와 다시 마주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들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가끔 떠올려도, 굳이 다시 만나야만 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비판하고, 비난하는 그림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 눈으로 보게 만들기 위해서 그 관계를 그렇게 끼워 넣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이 드라마는 어떻게 사랑하고 무엇을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가 표현을 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원하는 많은 것들. 돈, 성공, 명예, 사회적 지위, 주위의 평판을 끝까지 추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를 이 드라마는 그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는 연애와 결혼을 매개체로 묻고 있는 듯하다. 사실 결혼 얘기를 할 때 상대의 스펙, 직장, 집안을 따지는 게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일반화되어있지 않나? 연애와 결혼만큼 그런 것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소재는 없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완벽한 남자도, 여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여자들은 똑똑하고, 돈 잘 벌고, 가족 챙길 수 있는 시간도 있으면서, 가능하면 잘 생기고, 집안도 멀쩡하길 바라지만 돈을 잘 벌면 시간이 없고, 집안이 좋으면 그만큼 상대에 대해서 요구하는 것도 많아지기 때문에 피곤해진다. 그리고 똑똑한 남자들은, 잔소리가 많을 확률이 높다. 많은 남자들은 예쁘고, 내가 애교가 필요할 때 애교를 부리고, 내가 혼자 있고 싶을 때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가능하다면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 경제력을 갖고 있는 여자를 바란다. 그런데 애교가 많은 사람들은 때때로 나를 피곤하게 할 수도 있고, 나를 내버려 둘 사람은 애교가 없을 확률이 높으며, 그 정도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은 당신에게 신경을 쓰고 애교를 부릴 시간이 없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상대를 원하지 않나? 그렇지 못하단 이유로 섭섭해하거나 화를 내고. 대놓고 그런 사람은 없지만 연인이나 부부간의 다툼의 내용을 보면 그 이면에는 '왜 내게 맞춰주지 못하지?'라는 생각이 깔려있는데 이 드라마는 그게 불가능하단걸 말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것을 가질 수는 없다. 무엇인가를 언젠가는 포기해야 한다. 연애와 결혼에 있어도 그렇지만, 사실 그건 우리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할 때 부작용이 생긴다. 돈을 많이 벌면서 내 시간도 많고 싶다 보면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되지 않겠나. 모든 것을 누리려고 하다보면 그 '모든 것'이 우선순위에서 사람들보다 앞서게 된다. 물론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그런데 그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다 가지려고 하면 다른 사람을 건드리게 되고, 다른 사람을 건드리면, 그 사람이 내 것을 빼앗으려 들기 때문에.
이 드라마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것은 사실 끝까지 사랑만을 쫓는 서준희다. 우리는 과연 그렇게 살 수 있나?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그런 사람을 원한다면서 우리는 과연 그런 삶을 살고 있나? 내가 그렇게 살지 않는데 어떻게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다가오길 바라는걸까?
이 드라마의 결론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좋은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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