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이혼'에서의 이별
최근에 유일하게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최고의 이혼' 일본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기존 드라마들에서 느낄 수 없는 특유의 느낌이 살아있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사랑이 무엇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날카롭게 짚어주고 있어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 본방사수를 하지 못하더라도 따로 챙겨볼 정도로. 소문에 의하면 촬영 현장에서 모 배우가 굉장히 날카롭다고 하지만 드라마 안에서는 그 날카로움이 느껴지지 않기에 난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로 즐기고 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스쳐 지나가듯이 나오는, 어찌 보면 말도 안 되지만 현실의 연인 또는 부부들이 많이 겪는 장면이 나왔다. '이별의 이유를 대라'는 의사 남자 친구의 집요한 요구에 답을 하지 못하는 여자 친구의 모습. 꼭 남자만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고, 현실 커플이라면 이별을 통보받은 상대가 굉장히 자주 설명을 요구하기에 그 장면만큼 현실을 잘 반영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별의 이유를 대라면서 아직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으니 관계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듯한 그의 태도에 그녀는 성관계를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도 좋을 거야'라는 식으로 강제했던 어느 하룻밤이 그 이유라고, 자신이 강간당한 느낌이었다고 말하면서 관계를 정리한다.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이 고마웠다.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스쳐 지나가듯이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과 대사가 우리나라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당하고 있는 사랑으로 포장된 폭력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기에 그 장면이 고마웠다.
이별하게 되는 계기
하지만 그 장면이 담고 있는 것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과연 그녀가 그와 이별을 결심한 것이, 이별하게 된 이유가 그 날 하룻밤 때문일까? 아니다. 사실 현실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거부하는 성관계나 스킨십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상대에 대한 사랑, 혹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남아있음으로 인해서 이별하지 못하고 관계를 이어간다. 스스로에게 '내가 혹시 이상한 건가?'라고 질문을 하면서도 말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 하룻밤 때문에 이 사람을 잃을 수는 없잖아'라고 생각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그 관계를 유지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남자들이 강제로 스킨십 또는 성관계를 당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그 자리에서 거부를 하고 나서도 그 관계를 유지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역시 좋았던 거야'라고들 착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 헤어지지 않더라도, 상대의 행위가 본인에게 폭력적으로 느껴졌다면 그 얘기를 두 사람 사이에서 반드시 꺼내고 그에게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연인과 부부는 단순히 한 사건만으로 이별하지 않는다. 물론 한 사건이 이별의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겠지만,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사건이 이별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그 사건이 지금까지 두 사람의 관계에 쌓여온 수많은 피로감, 상처, 엇갈림을 trigger 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이면에는 두 사람의 관계에 수많은 금이 이미 가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수도 없이 많은 금이 가 있지만 그 형태는 유지되고 있는 도자기에 아주 작고 결정적인 금이 하나 더 추가됨으로 인해 그 도자기가 깨지는 것과 같이, 그 관계에 이미 금이 많이 가 있는 상황에서 그 사건이 이별의 도화선이 되었을 뿐이란 것이다.
이별에는 여러 가지가 작용한다
따라서 이별을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대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로 딱 집어서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두 사람이 이별하게 되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에서 쌓여온 수많은 경험들이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을 힘들게 만들고, 두 사람 모두, 또는 둘 중에 한 사람이 그로 인해서 함께 있는 것보다 헤어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동적으로 이별을 통보한 경우가 아닌 이상 상대가 이별을 통보할 경우, 그 마음과 결정은 최대한 존중해 줄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이유를 대지 못한다고 해서, 본인이 상대의 이별의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해서 그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이별을 통보한 것은, 그만큼 상대가 표현을 하지 않았더라도 안에서 느끼고 있었던 그 관계에 대한 버거움이 상당한 기간 동안 쌓여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한 번 이별을 했다고 그 관계가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도자기가 깨어지더라도 그 조각이 크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시 이어 붙이고, 그 깨졌던 부분들을 오히려 그 도자기가 깨어지기 전보다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게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이별을 했던 사람들이 다시 만나서 더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별이 욱하는 마음에 홧김에 뱉은 말이 아니라면, 그 관계를 그렇게 회복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깨진 도자기를 다시 붙이는 작업이 얼마나 시간이 만들고 힘든 과정인가? 이별을 한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이별을 반복해서 충동적으로 통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것 또한 이 때문이다. 두 사람은 당장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그러한 습관성 이별통보는 두 사람의 관계에 이미 금을 내고 있으며, 그러한 이별통보는 마치 도자기의 일부분을 계속해서 갉아내는 작업을 하는 것과 같아서 그 이별통보가 반복되면, 그 역시 상대를 갉아먹음으로 인해서 그 관계를 완전히 끝내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연예인들이 이혼할 때 이유로 드는 '성격차이'를 진부하다며 비아냥대기도 하지만, 이별의 이러한 속성을 생각해보면 두 사람이 헤어지는 이유는 사실 '성격차이' 이외에 다른 표현으로 설명될 수 없는지도 모른다. 특정한 이유 하나 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한 약속을 깨는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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