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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때로는 감을 믿어야 한다

상대의 조건을 따지는 것의 한계

사람들은 대부분 연애와 결혼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때 상대의 조건을 따진다. 상대의 외모, 집안, 배경, 직장과 같은 객관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조건들을 말이다. 이처럼 명확하게 눈 앞에 드러나는 스펙이나 조건을 중심으로 보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상대의 취향,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이전 글들에서도 설명했지만 난 그런 조건들을 어느 정도, 그리고 본인의 상황을 고려해서 따지는 것은 나쁘지 않고, 때로는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조건들을 따지는 것이 어디까지 의미가 있을까? 브런치에서 쓰는 글들에서 반복적으로 해온 말이지만, 사실 그런 조건들이 갖는 효과는 제한적이고 그런 조건으로 인해 행복감이 유지되는 기간에도 한계가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상대의 취향, 성격을 파악한다고 하지만 사실 오랜 기간을 서로 알아왔던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러한 취향이나 성격은 두 사람이 만나는 시간 동안 '그러한 척'할 수도 있지 않나? 결혼한 후에 많은 사람들의 자신의 배우자, 과거의 연인이 결혼 후에 상대가 바뀌었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이 연애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데이트를 하는 동안에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의식과 무의식

자신이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도 없다. 이는 '의식의 영역에서 상대의 모든 면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할 수밖에 없지 않나? 물론, 사람들은 누구나 다양한 사람들을 경험하고, 나이가 드는 과정에서 그 데이터가 생기면서 어느 정도는 소위 말하는 '사람을 보는 눈'이 길러진다. 그래서 어렸을 때보다는 나이가 들어서 상대의 작은 디테일에서도 그 사람의 성향을 읽어내는 능력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의 무의식의 영역은 의외로 우리의 의식세계가 잡아내지 못하는 상대방의 특징을 본능적으로 느낄 때가 있다. 상대가 굉장히 나이스 해 보이지만 왜인지 모르겠지만 걸리는 게 있을 때, 머리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나도 모르는 나의 무의식 어디에선가 상대에 대해서 거부할 때는 나의 무의식을 믿는 것이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무의식의 세계가 우리가 의식하는 세계보다 우월하다는 게 아니다. 상대에 대해서 머리로 따지고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머리로는 완벽한 듯한데 뭔지 모르지만 결정적으로 거슬리는 면이 있다면 그 감을 믿어야 할 때도 있단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의식과 무의식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뭔가 마음에 걸리거나 불편한 게 있으면 그게 내 속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두 사람의 관계가 소원해지거나 문제가 생기면 결국 그 지점이 문제를 확대시키고, 많은 경우에는 이별로까지 이어진다. 

완벽한 사람은 없지만

특히 결혼을 앞둔 사람들 중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정말 좋은 사람인데 이상하게 망설여져'라던가, '마음이 안 가기는 하는데 이만한 사람 없잖아'라는 식의 생각을 하고, 때로는 그런 말을 직접 하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상대가 완벽한 사람인지 여부와는 상관이 없다. 오히려 너무 완벽한 사람을 만날 때 그런 불안함이 커지기도 하기도 하지 않나? 나 역시 연애하기 전에 난 항상 상대에 대해서 망설여지는 지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좋은 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놓치기가 아까워서, 또는 감정적으로 너무 끌려서 연애를 시작했다가 결국 처음에 망설여졌던 그 지점 때문에 헤어진 경우가 많았다. 

연애를 시작할 때도 물론이고, 결혼을 할 때도 상대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오히려 상대에 대해서 내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가 완벽할 것이라는 기대가 든다면 한 걸음 물러나서 상대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그런 관계도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결혼만큼은 상대와 같이 있으면, 같이 살면 A라는 점은 정말 좋을 것 같지만 B라는 점은 부딪힐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같이 있을 때 더 행복할 것 같을 때 결정하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마음이 들면서도 만약 뭔지 모르게 걸리는 게 있다면, 그 관계에 마침표는 아니더라도 쉼표는 두는 게 맞을 것이다. 이는 첫 번째로 뭐가 마음에 걸리는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 사람과 평생을 약속하는 것은 상대의 그런 면이 바뀔 것임을 기대하는 이기적인 마음이거나, 자신이 그걸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착각인 이유는, 내가 무의식 중에 불편한 건 이미 내 감각기관들이 그건 감당할 수 없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뭐가 마음에 걸리는지를 모르겠다면, 최소한 그 부분만이라도 명확하게 해결하고 결혼을 결정하는 게 맞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연애를 하거나 같이 살면 그 결정을 할 때 내다보지 못한 문제들이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관계를 발전시킬 때만큼은 모호한 찜찜함은 남겨두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

이런 조언을 하면 어떤 이들은 '이만한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잖아'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역으로 물어보자. 그 사람과 가정을 꾸린 후에 얼마 안 되어서 그런 찜찜함이 없는 이성을 알게 되면 어찌할 것인가? 그리고 그 찜찜함이 결혼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무의식을 믿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날씨가 바뀌거나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동물들이 알아채듯이, 우리에게도 머리로 설명할 수 없는 상대의 무엇인가를 본능적으로 느끼는 감각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