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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기독교인이 되어가고 있다

내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부르기가 어느 순간서부턴가 부담스러워졌다. 내 모습이 예수님과 너무 다르고,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으며 내가 세상 사람들과 다를바 없다는, 어떤 면으로는 더 세속적이란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내 자신을 쉽게 '기독교인'이라 부르지 못한다. 그 이름의 무게가 언젠가부터 굉장히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제 있었던 일로 인해 조금씩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프로젝트 기회에 이름이 올라갔었는데, 4대보험이 보장되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병행하면서 할 수 있어서 프로젝트가 심사를 통과할 경우 내 연수입이 적지 않은 수준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총 6개년 프로젝트여서 내가 여러가지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주2회 정도 출퇴근에 사무실도 집에서 멀지 않았고.

그 프로젝트 결과가 어제 저녁에 나왔는데 심사에 통과하지 못했더라. 내가 노력한 건 없고, 난 정말 프로젝트에 이름만 올린 수준이기 때문에 노력적인 측면에서는 아쉬울 게 없었지만, 과거에 내가 간절히 원하던 것이 되지 않았을 때 나의 반응에 비춰보면 한 일주일은 짜증내고, 원망하고 하나님께 온갖 불평, 불만은 다 토로했어야 했다. 그게 나의 본 모습임을 나는 수 차례, 어쩌면 수십 차례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평안했다. 그리고 뜬금없이 수개월 동안 미루고 있었던 논문을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내가 왠지 모를 이유로 시작 못하고 미루고 있었던 일들을 해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평안한 마음으로.

사실 이 프로젝트 기획안이 제출된 6월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아... 이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안 한 날이 없었다. 이젠 좀 안정되고 싶었으니까. 6년이면 그 사이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기반을 쌓아서 40대 중반에는 좀 진짜 자리 잡고 안정되게 내가 하고 싶은 일들 할 수 있겠네...란 생각도 했었고. 사실 그래서 내 마음에 찾아온 평안이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지난 약 3개월 간의 기간은 내가 왜 글을 쓰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왜 내가 논문과 연구가 안되고 쓰기 싫은지도. 처음에는 내가 박사학위논문을 쓰면서 힘들었던 것의 후폭풍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내 자신을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다른 글 쓰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난 내 글로 내가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고, 그게 쉽게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글을 쓸 의미를 찾지 못하겠어서 글을 못 쓰고 있더라.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다. 우린 그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며 뚜벅뚜벅 걸어가면 된다.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그런데 난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망이 있었던 시절이 있기에 그걸 내려놓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꽤나 사람다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내 안에 그런 욕망은 "글을 통한 영향력"이란 형태로 변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평판을 의식하며 눈치도 보고 있었단 것을 지난 3개월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쉽게 일을 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이젠 그냥 글을 쓰기로 했다. 영향력과 무관하게 마음이 가고 써야겠다고 생각하면 쓰기로 했다. 금전적인 부분, 경제적인 안정, 결혼과 가정에 대한 부분은 최대한 하나님께 맡기고 그 부분은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그에 대한 생각이 시시때때로 올라오겠지만 그때마다 내 힘과 의지로 내려놓기 위해 발버둥치기로 했다.

이번 일 이후에 내게 찾아온 평안함은, 원망과 분노와 짜증이 아니라 평안함이 찾아왔단 것은 그래도 내 안에 변화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있긴 하단 걸 보여주는 듯해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게 해준다. 다행이다.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