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말하는 모태신앙이다. 머리로는 물리적으로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뭐가 엄청 잘못되거나 하나님께서 분노하신다는게 아니라는 것을,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몸부림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단 것을 알면서도 주일성수를 하지 못하면 뭔가 불안해지는 관성이 있는, 모태신앙이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성경 자체를, 본문을 그렇게 많이 읽지는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 교회에서 성경 통독하면 상준단 말에 제대로 읽지도 않고 페이지 슥슥 넘기면서 '읽었다!'고 하면서 1년에 삼독했다고 여겼던 경험과 읽긴 했지만 머리는 다른 곳에 있었던 학부시절 성경 일독은 사실 말씀을 읽었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에 제대로 읽은 건 지금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고도 1-2년 정도가 지난 재작년 부터 올해까지 정도인 듯하다.
그 전에도 성경은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신앙서적을 많이 읽었던 시절이 있었고(10-20대까지), 전공자가 아닌 것 치고는 신학서적도 읽지 않은 편은 아니었다(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정도까지). 주위에서 넌 로스쿨을 간거냐 신대원을 간거냐고 물었으니까.
그런데 재작년부터 성경본문을 꼼꼼하게 읽고, 작년과 올해는 억지로라도 교회 통독표의 진도를 따라 읽으며 블로그에 항상 묵상 글과 생각을 쓰다 보니, 특히 1년 8개월 정도 블로그에 정리하면 읽다보니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몰랐는지를 여실히 느낀다.
솔직히 신학서적까지 읽을 때 약간은 오만했고, 내가 다른 교회 다니는 사람들보단 낫고 하나님도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며 지냈던 시절도 있었고, 대놓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목회자들을 폄하하며 지냈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무의식 중에. 돌아보면 그렇단 것이다.
그 과정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지금의 상태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과정 없이 지금 나의 마음, 신앙적 상태가 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후회하거나, 아까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신앙서적이나 신학서적, 특히 신학서적이나 기독교적인 베이스로 쓰여진 다른 책을 읽으며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쌓아가려 한다면 난 지금 당장 그 책 내려놓고 말씀부터 읽으라고 할 것이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것은, 난 평신도들도 궁극적으로는 신학서적도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신교 신자라면 목회자와 나는 이 땅에서 맡는 역할이 다를 뿐이지 하나님을 알아가는 수준이, 깊이가 달라도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기에 읽을 필요가 있는 신학서적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주위에 민폐만 끼치지 않는다면 깊어질수록 좋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 본문을 읽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다루시고 계신지를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인격적으로] 알아가지 않으면 신앙서적도, 신학서적도, 위험하다. 이는 신앙서적과 신학서적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인격을 이해하고, 전제하고 읽고 해석해야 하는데 성경 본문을 직접 읽고,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집중하고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굴리시고, 그 이후에도 계속 벌하겠다고 협박하며 분노하셨는지가 이해되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떤 면이 하나님을 그렇게 만들었고 하나님은 왜 그들을 그렇게 다룰 수밖에 없는지가 정리되지 않으면, 신앙서적과 신학서적은 오히려 사람들을 하나님과 상관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갈 수도 있다. 이단이 별건가. 그런게 이단이지. 성경에서 말해주고 있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하나님을 전제로 세상을 보고 인생을 말하는 건 다 이단이고, 사실 그런 기준에선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정통의 간판을 달고도 실질적인 이단인 교회들이 적지 않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이 땅에서 복음이 땅에 떨어지고 짓밟히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닐 뿐,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고양되긴 하지만 머리로, 이성으로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말씀이, 하나님에 대한 믿으과 신뢰가 그 사람 안에 뿌리 깊게 자리잡지 못함으로 인해 오늘날 이 땅에서 복음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면서 신앙서적과 신학서적을 읽으면서 머리만 커지는 건 기초공사 없이 지은 건물과 같고, 산수도 배우지 않고 미적분을 배우는 것과 같으며, 알파벳을 모르면서 영어를 배우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하나님은 일주일에 한두번, 아니 설사 매일 새벽예배에서 설교를 듣는다고 해서 알게 되지 않는다. 이는 설교는 귀로 들어와서 반대쪽으로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 마음에 깊게 새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읽고, 스스로 고민하고, 질문하는 과정은 힘들고 고되지만 그 과정에서 정리된 것들은 내 안에 깊게 새겨진다. 그리고 그게 기초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말씀을 암송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본문을 토막내서 QT를 하는 것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토막내서 QT를 하는 건 개인적으로 유익이 크게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암송이 주는 유익은 분명히 있다. 이는 암송을 하는 건 나의 무의식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놓음으로써 상황에 따라 말씀이 떠오르고 내가 하나님 안에 설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토막내서 QT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지 안냐고?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QT잡지 한쪽 정도에 들어간 토막난 말씀으로, 그 안에서 묵상포인트를 찝어서 생각하게 하는 건 결국 내 멋대로 말씀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내 중심으로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말씀 암송의 유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말씀 암송은, 성경 전체를 어느 정도 알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안에서는 유익하다. 하지만 그런 기초도 없이 성경 말씀 한 두절을 암송해서 무의식에 담아놓는 것은 말씀을 잘못 해서, 적용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토막낸 말씀으로 QT하는거... 진짜 성경을 읽고 이해하기 시작하면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 갑갑해서. 그 앞뒤에 어떤 말씀이 있고 어떤 맥락에서 그 말씀이 있는 지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 갈급함 때문이라도 절대 그렇게 말씀 묵상 '못'한다. 그게 되고, 그거로 만족한다면 그건 아마도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을 아는 것에 관심은 딱히 없고 본인의 종교적인 성취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나는 생각한다.
성경을 읽고, 고민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는 건 지난하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진짜로 내 인생의 1순위라면,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다면 그건 하게 된다. 그리고 말씀을 읽고 고민하는 습관이 하루 아침에 들진 않지만, 아니 최소한 1-3년은 이 악물고 의지로 해야 지속되는 습관이 들지만, 그게 습관이 되고 나면 이틀 이상 말씀을 보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의식하고 싶어지기 때문에.
무엇이든 처음이 어렵다. 말씀 읽는 것만 그런가? 세상 모든 것이 다 그렇다. 기초가 없는 것은 본래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는지 여부는, 내 마음이 어디있냐에 달려 있다. 내가 말씀을 읽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내 마음이, 내 안에서 하나님이 우선순위에서 높은 곳에 있지 않단 것이다.
성경도 읽지 않으면서 신앙서적과 신학서적만 읽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위해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생활은, 매우, 매우 위험하다. 차라리 본인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인정할 수 있다면 괜찮은데 그런 책들만 주로 읽는 사람들은 사실은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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