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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결혼

한 사람과 평생 산다는 것에 대하여

어느 배우가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결혼이 목표였는데 이젠 한 사람과 평생 사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서 이젠 결혼을 미뤄놨다는 듯한 인터뷰를 봤다. 이해가 되면서도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한 사람과 평생 살 자신이 없다는 말이다.

그 말을 뒤집으면 여러 사람과는 같이 살 수 있단 것일까? 아니면 한 사람과 만나다가 맞지 않는 면이 있어서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게 더 자연스럽다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은 어차피 완벽하게 맞는 사람은 없다는 것일까? 모르겠다. 그 사람을 직접 아는 것은 아니고 인터뷰에 한 줄 있었을 뿐이기에 내가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건방진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결혼을 하기로 '결단'한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그 말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말이 너무나도 잘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한 사람과 평생 산다는 것은 사실 엄청나게 행복한 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한 사람과 평생 사는 것은 여러 사람과 함께 살거나, 사람을 바꿔가면서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일이다. 물론 한 사람과 사는 것은 관계를 만들어 나갈 때의 재미, 예전에 없던 풋풋하고 새로운 느낌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한 사람과 산다는 것은 그와 다른, 관계의 깊이를 선물해주기 때문에 한 사람과 평생 사는 것이 관계적인 측면에서는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것이다. 노부부가 아름답고 편해 보이는 것이 그걸 잘 증명해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난 개인적으로 정말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시절에 정말 간절하게 지금 누군가와 연애를 해서 그 사람과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평생 잊지 못할 이 힘든 순간에 대해서 알고, 같이 힘들어했던 사람이라면 조금 더 신뢰할 수 있을 것 같고, 나중에 싸우더라도 화해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는 추억이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게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이었는지는 나도 잘 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라는게 정상이지 나랑 같이 힘들기를 바라는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인가? 그땐 혼자 그 시간을 버티는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랬을 뿐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두 사람의 관계의 깊이와 관련이 있었다. 사실 오래된 친구가 좋은 것은 그들이 우리의 옛 모습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가장 보잘것없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서로 더 허물이 없을 수 있고, 서로 공유하는 기억이, 추억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그게 그 관계를 깊게, 편하게 만들어주지 않나? 서로 공유된 경험이 많을 수록 두 사람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되며 자신을 그만큼 편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되지 않나? 그래서 아마도 내 인생에 가장 힘든 순간으로는 앞으로도 다섯 손가락을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던 그 순간을 아는 사람과 평생을 같이 살고 싶단 많이 이기적인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그 정도로 서로 깊게 이해하고 편한 사람이 우리 주위에 몇이나 되는가? 난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동기들이 그런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10년이 넘게 지나고, 그 친구들은 먼저 결혼을 하고 평범한 회사원으로 지내다 보니 그들과 내가 공유한 삶의 양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지금은 그보다 공유되지 않는 삶의 양이 훨씬 많아지면서 사실 예전 같은 느낌이 많이 희석된 것은 사실이다. 내 상황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 삶이 달라지면서 그렇게 깊고 편했던 관계가 조금은 변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깊고 편한 관계가 가능한 것은 그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같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느 글에서 썼던 표현을 가져다 쓰자면 '그들의 인생에 내 인생을 쌓고 내 인생에 그들의 인생을 쌓은'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 사람과 산다고 생각해보자. A라는 사건을 그 사람들에게 다 공유할 것인가? 그러면 n명과 산다면 같은 얘기를 n번 하겠단 것인가? 똑같은 말을, 비슷한 반응을 받으면서? 어느 순간 그 얘기하는 것에 질리지 않을까? 모임에서 이미 한번 나온 얘기를 늦게 온 사람이 또 물어보면 그 사람이 이해는 되지만 조금 그렇지 않나?  

예를 들어 두 사람과 연애를 하면서 A라는 사건을 a한테만 말하고, B라는 사건은 b에게만 말한다고 치자. 그런데 A와 B가 다 관련된 C라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치자. 그러면 a와 b 중 누구에게 그 얘기를 할 것인가? a에게 말하려면 B를 설명해야 C를 설명할 수 있고, b에게 말하려면 A를 설명해야 C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또 C와 관련된 D 사건이 일어났다고 치자. 그런데 당신이 C에 한 설명은 b에게 했는데 b가 오지로 출장을 갔고 누군가와 꼭 그 얘기를 공유하고 싶다면 당신은 a에게 B, C, D에 대한 설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 누군가를 만날수록 나의 과거에 대해서 설명해줘야 하는게 많아지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데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진다...) 반면 우리가 한 사람만 만나고 있고 그 사람에게 A와 B를 말했다고 치자. 그러면 우리는 A와 B에 대한 설명 없이 C라는 사건에 대해서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조금 더 편하지는 않을까? 

순정이라든지, 책임감이라든지, 예의라든지 하는 말들도 유효하고 중요하지만 그건 조금 추상적이니까 일단 접어놓는다고 치자. 여기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그런 것들을 옆으로 밀어놓는다고 해도 사실 <욕심이나 욕정>이 아닌 '효율'과 '관계'라는 점만 생각한다면 연인은 한 명인 게 훨씬 편하고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한 사람과 평생 살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것이 아닐까. 물론 그렇게 관계가 형성되고 서로의 인생이 상호 간에 쌓이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빨리 끝내는 게 낫겠지만, 가끔 부딪혀도 상호 간에 그렇게 관계가 깊어지고 쌓이는 관계가 있다면 그 사람에 집중하는 게 내가 행복의 길로 가는 지름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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