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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소개팅을 끊었던 이유

 나이가 있는 만큼 소개팅도 할 만큼 했고, 소개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난 보통 소개팅을 몰아서 많이 했었다. 보통 때는 소개팅을 하지 않다가 누군가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열심히(?) 소개팅을 했으니까. 앞의 글에서도 썼지만, 30대 초반이 넘어가니 다양한 동호회에서 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연애를 위해서는 소개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더라.

그걸 깨달은 이후에도 1-2년 정도는 소개팅을 끊었던 시간이 있었다. 소개팅을 할 만큼 한(?) 이후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 정도로 소개팅을 하고 나면 소개팅에 무뎌지게 되어있어서 그냥 습관적으로 나가기도 한다는데, 나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원래 소개팅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소개팅을 증오하지는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소개팅이라는 것 자체가 싫어지더라.

소개팅을 할 만큼 하다 보니, 소개팅 첫 만남에서 최소한 상대가 나를 싫어하지는 않게 할 수 있는 요령이 생기더라. 처음 인사를 하고, 대화를 10-15분 정도 하고 나면 상대가 초면에도 말을 많이, 그리고 잘하는 사람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이뤄지고 그 이후에는 그에 맞춰서 대응하는 게 몸에 익더라. 좋은 의도였다. 상대가 나를 다시 볼지 여부는 사실 상대가 갖고 있는 기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지만, 최소한 주선자가 욕은 먹지 않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도 때문에 난 그렇게 행동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어느 순간서부터 주선자들이 '애프터를 할 줄 알았는데 연락이 없다더라'와 같이 매우 긍정적인 피드백을 하는 비율도 꽤나 높았고 최소한 '좋은 사람인 건 알겠는데 본인 스타일은 아니라더라'는 피드백은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게 싫더라. 그분 앞에서 보인 내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었던 게 너무나도 싫었다. 그분들 앞에서 보인 내 모습은 내가 상대에게 전적으로 맞춰주는 행동들이었고, 그렇게 해서 연애를 한다고 해서 내가 계속 그렇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항상 상대에 맞춰서 그렇게 수동적으로 반응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턴가 내가 상대에 대해서 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여부가 스스로 혼란스러워지더라. 소개팅에 나가서 너무 기계적으로 상대를 대하다 보니 말이다. 또 그렇게 해서 연애를 시작한 사람과는 결국 그 사람과 나의 본모습이 나오면서 헤어지게 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나는 소개팅을 끊었었다. 

그 이후에 내가 소개팅을 한 번도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소개팅을 하지 않고 1년 여가 지났고, 내 휴대폰을 아무리 뒤적이고 주위 지인들을 봐도 관계가 발전할 수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으며,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경로가 소개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소개팅에서 나는 조금 더 나답게 행동했다. '나 답게 행동해라'라는 말을 들은 어떤 사람들은 첫 만남에서부터 본인의 가치관, 세계관 등의 얘기를 쏟아내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만큼 확실하게 상대를 밀어낼 수 있는 방법도 드물 것이다. '나 답게 행동하는 것'은 상대를 최대한 배려하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소개팅 자리에서 대화가 끊긴 적도 있고, 1시간 조금 넘어서 헤어진 적도 있고, 1차로 만남이 끝난 적도 있었다. 나와 그분 모두 '우린 잘되지 못하겠구나'라는 확신을 갖고. 그리고 그때부터 가끔씩은 '조금 더 맞춰주지 그랬냐'라는 피드백을 듣기도 했지만, 소개팅을 할 만큼 하고 주선은 매우 많이 해 본 경험에 의하면 잘될 사람들은 '맞춰줘서' 맞는 경우보다는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대화가 흘러가는 경우가 많더라.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하겠지만, 내가 평생 맞춰줄 수 없는 점은 억지로 맞추지 않는 것. 몇 년째 소개팅에선 그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