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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스킨십에 대한 오해와 진실

예전에 썼던 글에 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다신 분도 악의는 아니셨고, 나도 화를 낸 건 아니겠지만 서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내용의 댓글이 오갔다. 댓글을 달고 나서 친한 형과 연락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내가 스킨십에 대해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봤다. 대부분 1년 전에 썼던 글들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내가 얼마나 보수적으로 스킨십에 대한 글을 써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나를, 내 생각을, 내 경험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글들에 대한 아쉬움과 한계도 느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써온 논조와 조금은 다른 글을 쓸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난 스킨십에 대해서 그렇게 보수적인 편은 아니다. 오히려 주위에서 스킨십에 대해서 너무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스킨십이 얼마나 아름다운 건데, 사랑하는 사람과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게 얼마나 관계를 깊게 만들어 줄 수 있는데 그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느냐고, 마음을 열기 위한 노력을 해보라고 설득을 하는 편이다. 나는 심지어 굉장히 보수적인 친구와 만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헤어진 적이 있기도 하다. 그리고 그 표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소위 말하는 '혼전순결'이라는 영역에 대해서 강균성 씨와 같은 보수적인 입장도 아니다. 모든 스킨십을 차단해야 상대를 지켜줄 수 있다는 생각을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저게 말이 되나? 그렇다면 그 관계는 더 깊어지는데 한계가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남녀 간에 스킨십은 가장 내밀한 영역이기 때문에 내 경험을 공유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나의 내밀한 영역임과 동시에 나와 만났던 친구의 내밀한 영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스킨십에 대한 글을 쓰면서 꼭 끝까지 가야하는 것은 아니며 서로 책임질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끝까지 가는 게 가장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킨십을 통해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두 사람 간의 친밀도가 소위 말하는 '진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스킨십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경험을 했고, 그러한 경험담들을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입장을 유지하는 것은 그 경험이 보편적이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란 걸 알게 해 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전 글들에서도 썼지만 난 스킨십의 수준에 대해 논하는데 있어서 물리적으로 혼인신고를 했는지, 결혼신고를 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 달린 것이고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가장 보수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결혼 이후'라는 기준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모두 괜찮다면, 자신의 행위로 인해 발생할 수 잇는 가능성에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진도가 무슨 문제가 되겠나? 그리고 난 혼전'순결'이라는 표현도 좋아하지 않는다. 왜 어떤 행위를 하는 것까지는 순결하고, 특정 행위를 하는 것은 순결하지 않은가? 그 기준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순결'이라는 표현은 종교와 사회가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았던 시절에 위에서 설명한 기준선에 대한 설명을 사람들이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표현이었을 뿐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쩌면 일부 사람들에게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스킨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읽힐 수밖에 없는 논조의 글들을 주로 써온 가장 큰 이유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 연애와 스킨십에 대해서 '연인이라면 당연히...'라고 생각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강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에 휩쓸려서 본인의 '마음'이 편하지 않고 허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상한 건가?' 싶어서 그 흐름에 끌려가는 사람들을 봐왔고, 그것이 어떤 후유증을 남기는 지를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그것이 본인의 일이기에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말하지 못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또 스킨십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글들은 너무나도 맹목적으로 결론만을, 행위 중심적으로 설명하고 있었기에 그렇지 않은 글을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댓글을 달고 나서 1년 전에 내가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그 글들도 어쩌면 그런 글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그 글들을 다시 읽어보니, 그 글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오해는 '남자들이 모두 짐승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게 아닐까 싶었다. 물론 모든 남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런데 모든 남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라는, 어쩌면 객관적 사실에 더 가까운 '남자들이 모두 짐승 같은 존재는 아니'라는 내용을 담지 않은 것은 실제로는 욕구 중심으로 움직이는 남자들도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변명을 하기 때문이다. 그 실제 마음과 상관 없이 모든 남자들이 하는 말을 굳이 또 글에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나는 '모든 남자'가 그런건 아닌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스킨십과 관련된 논조를 그렇게 유지해 온 다른 이유는, 스킨십에 있어서 만큼은 많은 경우에 여자들이 약자의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남녀관계에서 스킨십에 더 강한 필요를 주장하는 것은 남자인 경우가 더 많지 않나? 그래서 나는 남자들이 '이것 봐 스킨십은 이렇게 아름다운 거라니까'라는 주장을 하면서 설득을 하기 위한 근거가 될 글보다는 여자들이 남자들의 그런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글들이 주로 그런 논조를 유지해 온 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여자분들은 남자들이 '사랑'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요구를 할 경우 본인이 편하지 않은 경우에도 거절을 하지 못하는 듯했기에, 초점을 그 부분에 맞추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스킨십과 관련된 문제가 이렇게 복잡해진 것은 사실 우리나라 가정에서는 스킨십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향이 크다 (사실 어쩌면 '스킨십'이라는 영어에도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영어인 것처럼 쓰게 된데도 우리나라의 스킨십과 관련된 보수적인 문화가 상당한 수준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만약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포옹하고 뽀뽀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부모 다양한 형태의 스킨십을 하는데 익숙하다면 남녀관계에서 스킨십이라는 것이 이렇게 문제가 될 이유가 없다. 그러한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스킨십은 사랑한다는 걸 표현하는 수단이구나'라고 자연스럽게 배울 것이기에. 그런데 그러한 스킨십을 가족 안에서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남자들 중 생각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은 성적인 호기심이 왕성해지는 사춘기 때 왜곡된 방식으로 스킨십을 받아들이고, 그러한 왜곡된 방식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보수적으로 변하게 되면서 남녀 관계에서 스킨십에 대한 인식과 현실이 부정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는 것이 현실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미투가 그러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그래서 사실 '사랑하면 스킨십은 하는 게 당연한 거야'라는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하다. 사실 두 사람이 정말로 온전히 사랑한다면 그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통로는 스킨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경험상, 두 사람이 정말로 스킨십으로 본인의 마음을 표현할 줄 알고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일 줄 안다면 스킨십은 두 사람의 관계를 매우 깊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꼭 스킨십을 해야만 두 사람이 사랑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그리고 우리나라의 제반 상황이 모든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스킨십에 대한 트라우마가 없는 건강한 사람이라면) 사랑하면 스킨십을 하게 되고 사랑이 전제된 스킨십은 관계를 깊고 친밀하게 만들지만, 그렇지 않은 스킨십이 사랑을 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런 스킨십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망가뜨릴 뿐인 것도 현실이 아닌가?

연인과의 스킨십 자체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사람들을 봤을 때 내 안에 가장 먼저 드는 마음은 안타까움이다. 그 경험은, 그리고 그 경험이 선물해 주는 친밀감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오히려 누구도 어떠한 행위를 절대로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무엇인가를 그렇게 했을 때는 그 경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더 강하게 남아서 더 강한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고 그런 트라우마로 인해서 스킨십 자체를 기계적으로 하게 된 사람들은 생각보다 매우, 매우 많다. 그리고 내 경험에 의하면, 그렇게 닫혀 있는 마음을 여는 것은 억지로 스킨십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그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면서 그 마음을 열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주는 한 사람의 사랑이더라.  

물론 그렇게 옆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그러한 면을 있는 그대로 옆에서 기다려 줄 자신이 없다면 상대에게 그것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맞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헤어지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고도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스킨십을 억지로 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그렇게 억지로 하는 것이 그 사람 안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경험상 그렇게 억지로 하는 스킨십은 두 사람 간의 관계에서 분명한 한계를 갖더라.

다만, 만약 본인의 마음이 상대에게 열리기 시작했다면, 이전에 본인 안에 두려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을 따라 가보라고 나는 권하고 싶다.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의 스킨십은 그 관계에서 놀라운 친밀함과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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