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결혼

결혼의 손익계산서 1

가정은 왜 생겨났을까?

나는 무엇을 하든지 기본으로 돌아가서 생각을 해보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래서 back to the basic이라는 너무나도 흔한 명제를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기본을 좋아하고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있어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는 고민하는 대상의 핵심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결혼의 문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사람들은 '결혼'을 얘기하고 결혼을 빨리하라고 하지만 사실 결혼을 한다는 것의 본래 의미는 '가정'을 꾸리는 것이기에 나는 결혼의 문제를 생각할 때는 항상 가정을 먼저 생각하는 편이다. 가정을 꾸린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것과 단순히 결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사고의 틀을 조금 바꾸기에.

자 그렇다면 가정은 어떻게 처음 생겨나게 되었을까? 그 시초가 무엇이든 간에 분명한 것은 예전에 내가 브런치에서 '집사람'이라는 호칭에서도 썼지만 그 용어가 사용된 것은 원시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여자들이 집안에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가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그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형성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외부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결혼하는 건 원시시대 때나 있던 일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국가 혹은 정부가 지방까지 통제를 제대로 하는 것은 조선시대에나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다. 태조 왕건이 자신과 고려를 보호하기 위해서 여러 지역의 부족들과 혼인관계를 맺는 것도 사실 본인의 집단을 다른 부족의 위협에서 지키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중앙정부의 역할이 커졌다 하더라도 개인의 삶의 영역에서는 생존 자체는 여전히 매우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남자의 중요성과 그 한계

사실 이처럼 '생존' 자체가 중요한 사회에서 남자는 여자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보통 근력이 더 강하기에 전쟁을 하는데 일종의 무기로 사용이 될 수도 있고, 농사를 짓거나 사냥을 할 때도 더 유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남아선호 사상 역시 그 시초는 그런 현실적인 '남성의 필요'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유가 조금 그렇지만 집안에 소를 한 마리 더 두거나, 노비 한 명을 더 두는 것과 남아를 선호하는 것이 사실 같은 맥락에서 선호되었을 것이란 의미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산업화가 이뤄지기 전까지만 해도 남자가 여자보다 활용도가 더 높기 때문에 선호되었을 것이고, 그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남자와 여자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인식의 차이는 상당한 것 역시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세상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이제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상태에서 역사적으로 그렇게 중요하고, 필요하며, 가치 있었던 남자들 고유의 '남성성'이 필요한 곳이 거의 없어졌다는 데 있다. 남자들이 확실히 우위를 가졌던 육체적인 분야는 기계들이 대부분 하고 있고, 이제는 육체적인 힘을 사용하는 분야는 선호되지도 않고, 대우를 받지 못하는 직종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에 사실 사회적으로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더 우위를 갖는 것은 사실 거의 없다.

이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남자들이 가정을 물리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치안은 공권력에게 맡겨져 있고, 전자기기들이 집을 보호하며, 이제 직접 사냥을 하거나 농사를 지어서 먹는 사람들의 비율은 아주, 매우, 엄청나게 낮아졌다. 최소한 한국에서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가정에서 남자들이 역사적으로 가져왔던 고유의 역할은 큰 의미가 없어졌다. 

현대사회의 문제점

그런데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누구도 왜 남자들이 사회적으로 더 선호되고 우위에 있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사실 만약 지금이 고려시대 때만 되더라도, 아니 조금 더 현실적으로 초기 산업화 시대만 되더라도 어쩌면 남자들이 더 선호되고 우위에 있는 것으로 취급받는 것이 조금은 정당화될 여지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사실 그런 육체적인 노동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남자가 더 우위에 있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상당 부분에서 아직도 남자들이 더 선호되는 경향이 있는 것은 그런 관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영향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그런 관습이 그런 현상을 야기하는 많은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과거에 집에서 여자들이 많이 하던 노동도 단순해졌다. 세탁기, 가스레인지, 냉장고, 청소기, 건조기 등이 그 역할을 다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집 안에서 여자들이 주로 하던 일의 노동강도도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에 따라 집안일을 하는 사람들도 과거보다 시간이 훨씬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 변화로 인해 자연스럽게 여자들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들은 사실 과거에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이뤄지는 업무분장의 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미 그렇게 된 지가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집안일을 하는 데 있어서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을 구분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 없는 구분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에이 그건 남자가 할 일이 아니지'도 시대에 뒤처진 꼰대스러운 말이 되었고, '남자가 돈을 잘 벌어와야지'라는 말도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게 현실이다. 사실 힘이 필요한 집안일은 남자가 더 잘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제 집안일을 하는데 시간이 덜 들어가니 여자가 외부에서 돈을 벌어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물론 이 모든 것의 전제는 남녀가 모든 면에서 역할분담을 어느 정도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혼 혹은 가정에 대한 생각과 논의를 할 때 사실 이러한 사회적인 변화들을 전제로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