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과 관련된 사례들이 하루를 멀다 하고 온라인에서 폭로되고 있다. 그런 현상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 안에 어두운 곳에 숨길 수밖에 없었던 상처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새삼 깨달으면서, 그런 일들이 어느 정도는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야에서 그런 폭로들이 이뤄지는 것을 보며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어두운 면들이 얼마나 많을지가 두려울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폭로들이 지금이라도 이뤄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어둠 속에서 그와 같은 일들이 더 빈번하게 이뤄졌을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기사들을 보던 중에 문득, '그래도 저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상대방에 대해서 폭로를 할 수 있지. 우리 사회에서 연인에게 당한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대해서는 과연 폭로할 수 있을까? 지인에게서 당한 성추행과 성폭행에 대해서도 주위에서 쉬쉬하라거나, 합의하에 이뤄진 게 아니냐는 시선이 압도적인 사회에서 과연 연인 간의 성추행과 성폭행에 대해서 폭로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이런 의문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연인 간에 무슨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있냐 다 합의 하에 이뤄지는 것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에 '폭행과 협박에 따른 강제적 성관계는 부부 사이라도 일반적인 강간죄와 다를 것이 없다'며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침해되는 경우 부부간의 관계에서도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대법원이 판결한 바 있다. 부부 간에도 강간이 성립할 수 있다면, 그보다 결속력이 약한 연인 간에는 당연히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성립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사실 연인 간의 관계에서도 강제적인 스킨십이 많이 이뤄지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사랑하는데 왜?'라는 말로 말이다.
사실 '의사에 반한 스킨십'이 성추행 또는 성폭력이라고 한다면 성추행과 성폭력이 가장 빈번하게 이뤄지는 관계는 연인관계일지도 모른다. 내가 거절하면 상대가 떠날까 봐 두려워서, 혹은 뭔가 불편하고 스킨십에 응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사랑'이라고 말을 하기 때문에 '그런가?'라는 불확실성 때문에 그런 행위들에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인 간의 관계에서 이와 같은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은 실제로는 가해자인 사람이 상대방의 명시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그래서 연인관계에서 이뤄지는 스킨십에 대해서는 가해자가 '나는 동의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싫었다면 표현을 하면 되는 것 아니었냐.'는 반응이 더 쉽게 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강요를 받은 사람은 두 사람의 연인관계가 끝난 이후에도 그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그 사람들은 다른 성추행이나 성폭행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그 사람들보다도 더 깊게 그에 대한 감정과 마음을 숨기고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은 사랑일 수 없다. 상대방이 불편해하고 힘들어하면서 부담스러워하는 게 어떻게 단순히 '네가 아직 몰라서'일 수가 있나?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서 무엇인가를 강요한다면, 졸라댄다면, 상대방이 명시적으로 동의를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의사 혹은 행위를 밀어붙였다면, 그것은 분명 추행이고 폭행이 아니겠나? 돈을 뜯어내는 깡패가 두려워서 반항하지 않고 돈을 줬다고 해서 그게 자의로 돈을 준 것이 되지는 않지 않나?
그래서 나는 사실 '그러지 않으면 그 사람이 떠날 것 같았다'는 말을 한다면 '그 이유로 떠날 사람이라면 어차피 언젠가는 떠나게 되어 있다'고, '정말 그런 건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라고 한다면 분별이 되고 본인의 마음이 확실히 괜찮은 행위만 하는 것이 맞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이들은 '연인 간에 무슨' 또는 '사랑하는 사이인데 무슨'이라고 말을 하지만 만약 그렇게 육체적인 관계를 강요하는 것이 사람의, 인간의 사랑이라면 그것이 짐승의 그것과 다른 게 무엇이 있나? 아니 짐승도 그렇게 육체적인 행위나 관계를 강요하지는 못하는 것을 자연 속에서 우리는 보지 않나? 혹자는 또 '몸이 열려야 마음이 열린다'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다 기꺼이 그런 성향의 사람이라면 문제가 될게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니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이 맞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열려야 스킨십이 편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사람은 모두 다르니 말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고, 최소한 내가 아는 범주 안에서 대부분 사람은 마음이 편해야 몸도 편해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은 폭행일 뿐이다. 그리고 연인은, 아니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되고 평등한 인격체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사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의 폭로가 이뤄질 때마다 처음에는 물음표를 던진다. 왜냐하면 두 사람 간의 관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그런 폭로는 이뤄지는 순간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을 사회적으로 매장할 수 있기에 그런 용도로 폭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난 1달 정도 동안 이뤄진 폭로들은 거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증언들이, 그것도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것에 비춰봤을 때 대부분이 사실일 듯하다. 그래서 안타깝고, 아마도 어두운 곳에 숨겨지고 알려져 있지 않은 그와 같은 일들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과 사례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때로는 어쩌할 바를 모르겠는 게 사실이다.
아마 지금처럼 폭로가 이어진 이후에도 누구도 모르는 곳에서 그런 일들은 분명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것을 폭로하거나 밝히지 못하는 사람들이 폭로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연인관계에서 만큼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이니까. 하지만 어쩌면 그런 문제가 가장 심각한 관계는 연인관계일지도 모른다. 이는 연인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랑'이라는 모호하면서도 그럴듯한 표현으로 포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연인관계에서 더 분명히 기억해야 할지도 모른다. 강요하고 강제되며 상대방의 의사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이지 '사랑'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연인은, 본인은, 누구나 독립된 인격체다. 누구도 누구의 신체에도 어떠한 행위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을 강요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 > 연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애에 필요한 노력에 대하여 (0) | 2020.01.20 |
---|---|
비교는, 절대하지 말자 (0) | 2020.01.19 |
연애에서 신뢰의 의미 (0) | 2020.01.17 |
연애할 때 비교는 하지 말자 (0) | 2020.01.17 |
연애상담 받지 말자 (0) | 2020.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