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어떻게 형성해야 하나?
어제 연애, 결혼과 신뢰에 대한 글을 쓴 것이 조금은 추상적이라고 느껴졌다. 뭔가 당위적으로 해야 하는, 누구나 머리로는 알 법한 얘기를 정리해서 풀어놓은 느낌. 그렇다면 그런 신뢰는 어떻게 형성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신뢰를 강요하는 대표적인 표현은 '오빠 믿지?'라는 말일 것이다. 사실 두 사람 사이에서 정말 신뢰가, 믿음이 있다면 이 말은 어쩌면 할 필요가 없는 말인지도 모른다. 일단은 한쪽에서 신뢰를 하지 않는다는 표시를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응으로 나가는 말이 '오빠 믿지?'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말 한마디로 상대를 믿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의 생각, 마음, 욕구, 의도를 말로는 다르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오빠 믿지?'라 함은 무엇을 믿는다는 것일까? 왜 그 목적어가 빠져 있는 것일까? 나도 남자지만 왜 남자들은 이 말을 뱉을 때면 오빠의 '무엇'을 믿어도 되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하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사실 '오빠 믿지?'라는 한 마디에 그 오빠를, '당신 나 못 믿어?'라는 말에 상대를 그냥 믿어버려서는 안 된다. 신뢰가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아직까지 그 정도의 신뢰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연애의 기초이자 기본이다.
'난 아직 당신 못 믿겠는데'라는 말에 화를 내거나 그 사람이 떠나버린다면, 그 사람은 당신이 자신의 완전한 소유물이 되지 않는다면 어차피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상대가 떠나갈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해서 내가 갖는 신뢰와 믿음의 수준에 대해서 솔직히 지는 것이다.
신뢰의 핵심, 경험
그렇다면 두 사람 간의 신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그 기본 중의 기본은 경험이다. 사실 내 경험에 비춰봤을 때도,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사례를 봤을 때도 끝이 좋지 않은 연애와 결혼은 대부분이 상대방과의 경험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데서 이미 그 씨앗이 있었던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상대방이 폭력적인 행동이나 말을 던지고 나서는 무릎 꿇고 비는 것을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또는 '결혼하면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버티는 사람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완전히 안 들고 너무나도 불편한, 본인이 수용이 되지 않는 면이 있어서 그걸 고쳐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수차례 표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언젠가는 맞춰질 거야'라고 생각하며 버티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사람은 바뀌지 않으며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한 사람이 보이는 모습은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그 사람과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신뢰는 그 사람이 자신과의 관계에서 보이는 행동,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보이는 행동, 그 사람이 하는 생각, 그 사람이 좋아하는 장소와 먹는 음식 등의 직간접적인 경험 또는 그 사람에 대한 관찰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이는 상대에 대한 신뢰를 그것을 <주관적으로 해석>함으로써 형성되어서는 안 된단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연애를,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 마음도 중요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이성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여기에서의 <경험>은 같이 데이트를 하는 등의 직접적인 경험은 물론 그 사람이 하는 생각,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법, 가족과의 관계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만약 상대가 나의 특정한 면에 대한 신뢰가 없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신뢰를 갖지 못하는 점에 대한 실망감을 갖기보다 우선 내가 했던 행동들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아무리 말을 번지르르하게 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상대가 나에 대해서 신뢰를 갖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약속 시간에 절대로 늦지 않겠다고, 늦게 되면 미리 연락이라도 하겠다고, 담배를 끊겠다고,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전혀 안마시는건 힘들고 어느 정도까지 줄이겠다고 말만 하면 뭘 하겠나? 자신의 말을 완전히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러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지키지 못한 경우 진심으로 미안해할 줄은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랑이 '상대방을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그런 것처럼 아끼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정도의 모습도 보여주지 못한다면 상대가 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을 넘어서 당연한 것이 아닐까?
물론 사람들 중에서는 상대가 어떠한 모습을 보여도 쉽게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상대가 변해 가는 모습을 조금씩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의심하고, 너무 많은 것을 캐묻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 또는 부부 사이에서 두 사람 간의 신뢰가 없는 경우에는 두 사람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지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신뢰와 대화
그래서 연인 사이에서는 대화가 중요하다. 아니 대화가 기본이다. 그런데 대화의 측면에서는 남자들이 많은 약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는 남자들은 대화를 하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남자들은 말이 많지 않을 것을 강요받지 않는가? 말을 많이, 혹은 잘 하는 남자들은 '남자가 뭐 그렇게 말이 많아. 남자가 좀 진득한 면이 있어야지'라는 지적을 한 번쯤은 받았을 것이다. 남자들이 연인, 부부관계에서 대화를 '잘' 하지 못하는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그런 문화적인 영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에 따라 상당수 남자들이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도 대화를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보니 연인 간의 데이트는 같이 밥을 먹으면서 여자들이 본인의 일상을 얘기하고, 남자들은 주로 들으면서 밥을 먹고, 두 사람이 영화, 공연, 전시회를 보는 것 외에는 할 것이 없어지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남자들 중에 영화, 공연, 전시회 등을 즐겨보는 사람들이 (예전보다는 많아졌지만) 여자들에 비해서 비율적으로 훨씬 낮다 보니 어느 순간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연인이 같이 할게 마땅히 없어지게 된다.
사실 연애에 있어서 스킨십적인 요소가 계속 부각되는 것은 이러한 남녀관계의 특징이 반영된 것이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것은 분명하고, 서로 좋아하는 건 같은데, 대화거리가 항상 있지는 않고, 그렇다고 두 사람이 마땅히 같이 할 게 없으면, 그 관계에서는 스킨십적인 요소가 자연스럽게 강조된단 것이다. 내 주위에는 그러한 관계로 인해 상처를 받고 이성과의 스킨십 자체에 반감을 가진 사람도, '남자는 원래 스킨십이 전부라고 생각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고 남자를 만나는 사람도, 연애기간이 길어질수록 사실할게 스킨십 밖에 없지 않냐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스킨십은 스킨십의 영역 안에서 두 사람이 익숙해지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 관계를,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주는 역할은 해주지 못한다는데 있다.
사실 사랑해서 연애를 하고, 사랑이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만큼 상대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면 연인은 서로의 일상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상대가 오늘 아픈지, 학교나 회사에서 힘든 일은 없었는지 등이 궁금한 게 자연스럽지 않은가? 힘들고 아픈 것은 같이 아파하고, 기쁜 것은 같이 기뻐해야 하는 것이 연인 혹은 부부관계가 아닌가? 그렇다면 두 사람 사이에서 대화거리가 끊어질 수가 없다. 아무리 같이 집에서 사는 부부라고 할지라도 각자의 삶의 영역은 분명히 있기에. 인생은 계속되며, 어느 하루도 완전히 똑같은 날은 없지 않나? 그렇다면 연인과 부부 사이에서 스킨십이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데이트가 아니더라도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서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닌가?
대화가 안 되는 이유
이렇게 쉽게 말했지만, 사실 연인 간의 대화가 '통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일만은 아니다. 사람들마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고, 표현하고 싶은 게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힘들 때 그걸 폭발적으로 뱉어내고 나서 털고 일어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혼자서 어느 정도는 힘든 상황을 극복해야 표현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에 대한 세세한 디테일을 다 알아야 상대에 대해서 불안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묻지 않는다는 것 자체에서 상대가 나를 믿어준다고 느낀다. 그런 '대화와 표현의 방법'에서의 차이는 일정 수준까지는 서로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쉽게 바뀌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연인 간의 관계에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통하는 것, 그리고 서로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이해하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두 사람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기에 우리는 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 한걸음 물러서서 상대의 대화 방법을 고려했을 때 그 말과 행동이 무슨 의미일지를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같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고 해석하기까지는 두 사람이 공유하는 '대화의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의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대화 방법이 잘못된 경우도 있지만, 한 사람이 느끼는 불편함이 '틀림'이 아니라 표현 방법의 '다름'에서 비롯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연인 또는 부부간의 대화에서의 불편함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연애하는 과정', 특히 '연애 초기'에 경험적으로 알아갈 필요가 있다.
그러한 '대화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를 통해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조금씩 더 해 나갈 때야 비로소 두 사람 간의 의미 있는 신뢰가 형성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연애, 경험, 대화 그리고 결혼
나는 개인적으로 연애란 서로가 서로의 삶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상대의 일상, 성격, 기호, 가족, 친구들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것들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두 사람 간의 대화에서 그러한 요소가 묻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가능하다면 같이 경험하는 것이 좋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내가 상대에 대해서 완전히 알고 있어' 또는 '상대가 나를 어느 정도 이상 알고 있어'라는 전제보다는 '나도 상대에 대해서 모르는 면이, 상대도 나에 대해서 모르는 면이 있어'라는 전제를 하는 것이 두 사람의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그런 연애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상대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지 않을까? 때로는 내가 스스로에 대해서 자각하지 못하는 면을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을 때도 많으니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결혼이란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삶 속에 충분히 깊게 들어갔을 때,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과 서로의 삶 속에 더 깊게 들어갈 자신이 없을 때, 혹은 더 깊게 들어갈 만한 사람을 찾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될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하기 전에 연애기간이 반드시 길어야 한단 건 아니다. 두 사람이 만난 시간과 서로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때로는 한 사람의 작은 행동, 말이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두 사람 간의 이해와 신뢰가 꼭 그 만남의 시간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결혼을 한 후에 얼마 안 되어 이혼을 하는 것은 두 사람이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감정적인 설렘이나 흥분은 있었을지 몰라도 서로 간의 대화,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서로를 충분히 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사실 결혼을 언제, 누구와 할 것인가의 문제는 특정한 시기나 부모님 등 외부의 요인에 따라 결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날, 혹은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계속해서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삶을 공유하며 맞춰갈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결정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사실 좋은 연애, 좋은 결혼 생활을 하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은 두 사람 간의 대화, 그리고 공유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기본적인 이러한 사실을 상당수 사람들은 자신의 욕심, 욕구, 욕정과 다른 사람들의 말과 기준에 휘둘려서 망각한다는 것이다. 기본만 지키더라도 우리네 삶은 그렇지 못했을 때보다 훨씬 행복해지지 않을까?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 > 연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교는, 절대하지 말자 (0) | 2020.01.19 |
---|---|
연애와 추행 (0) | 2020.01.18 |
연애할 때 비교는 하지 말자 (0) | 2020.01.17 |
연애상담 받지 말자 (0) | 2020.01.16 |
연애는 내 방식대로 하자 (0) | 2020.0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