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프리랜서의 일상생활

회사원이 프리랜서가 되기 힘든 이유

겸업 허용 조건으로 회사에 들어온 지 3주 차. 이번 주 초에 스스로 경각심을 갖게 하는 상태가 되었다. 글이 안 써지더라. 내가 월요일에 글을 4개나 써서 올린 것은 글 쓰는 감을 찾기 위함이었다. 끊겠다고 했던 연애에 대한 글까지 쓴 것 역시 마찬가지. 회사라는 시스템에서 중간관리자로 복귀한 지 겨우 2주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내 안에 있던 프리랜서로서 사는 패턴은 이미 희석되고 있었다.

이런 경험을 처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첫 직장을 최대한 빨리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던 계기 중 한 가지는 어느 순간 내가 회사 일과 무관한 책은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끝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학부시절에는 어떤 글을 봐도 요지를 추리고 건너뛸 건 건너뛰면서 읽었는데 회사생활을 반년 넘게 하고 나니 책이 잘 안 읽어지더라.

그건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을 할 때 쓰는 뇌근육과 한 조직 안에서 사용하는 뇌근육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난 회사생활을 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사실 그 스트레스는 대부분 관계와 조직 안에서 나의 지위, 미래에 대한 것이지 일 자체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리고 사실 큰 회사일수록 회사의 조직은 사람 몇 명이 빠져도 운영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일 자체의 난이도가 높은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래서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일부 특수한 직역이나 회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뇌에서 특정한 부분만 기계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뇌 전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예를 들면 주니어들의 경우 매우 작은 task들을 반복적으로 하고 쳐내는, 말 그대로 공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주니어들은 아직 전체적인 그림을 관망하는 그림을 그릴 줄 모르기 때문에 자신 나름대로의 생각을 말해도 그게 틀리거나 제한적인 시사점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회사에서 사람들은 시니어가 되어 갈수록 주니어 때 그렇게 사용하던 '일하는 머리'가 아닌 '관리하는 머리'를 쓸 것을 요구받는다. 어떤 일을 누구에게 할당하고 '큰 틀'에서 어떤 방향으로 조직을 끌어갈지에 대해서. 그렇다 보니 몇몇 정말 예외적인 시니어를 제외한 대부분 사람들의 뇌에서는 작은 일들을 반복적으로 처리하는 영역이 둔해진다.

내가 회사일과 무관한 책을 읽지 못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글을 읽지 않았냐고? 아니다. 홍보실에 있었던 사람이 어떻게 글을 안 읽겠나? 안 썼냐고? 아니다. 회사 블로그 담당자였던 난 주기적으로 글도 썼다. 다만 내 뇌는 다른 영역에서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뇌에서라도 스트레스를 덜어내기 위해 정말 필요할 때 외에는 작동하지 않는 습관이 든 듯했다.

모든 회사원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회사원들은 이런 길을 간다. 그리고 회사생활이 길어질수록 그 사람들의 뇌는 동서남북쪽을 다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만약 '나 어렸을 땐 이러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하신 적이 있다면, 그건 본인의 뇌가 회사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작동을 최소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프리랜서의 삶은 다르다. 프리랜서는 디테일도 챙겨야 하고,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내 인생이 가는 방향을 고민해야 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최대한 유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이렇듯 프리랜서의 뇌는 항상, 모든 상황에서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프리랜서의 경우 혼자 일하거나 소수의 사람들과 협업을 하기 때문에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덜한 반면 항상 긴장상태여야 한단 어려움이 있다. 그러다 보니 프리랜서의 뇌는 쉼 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회사생활로 인해 단순화된 인간의 뇌는 프리랜서 모드로 잘 전환되지 않는다. 회사에서 사용되지 않는 뇌의 영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 동안 그 능력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을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회사생활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한 학기 정도는 책이 제대로 읽히지 않아서 엄청 고생을 했었다. 회사에 들어갔을 때 선배들이 '너희는 눈빛이 똘똘하네, 너희 선배들도 입사할 땐 다 그러다가 한 5년 차 정도 되면 눈이 생선 같이 되더라. 너희는 그러지 마라.'라고 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회사의 특성상 개인은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개인이 모든 걸 다 챙겨야 하는 종류의 회사들도 있다. 방송국, 잡지, 신문사, 각종 대행사가 그런 대표적인 예다. 그런 회사에서 한 사람은 다양한 업무를 혼자서 해 내거나, 어떠한 일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이해하고 챙길 수 있어야 한다. 회사원들 중에 프리랜서를 하거나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그 영역에서 많은 것은 그러한 업종의 특징의 영향이 크다.

그런데 그런 회사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면 개인은 어느 순간 회사의 부품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부품에 조직에서 떨어져 나와서 자생력을 갖기가 힘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