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연애
평범하다는 게 뭔지 이제는 정의하기가 너무 어려워졌지만 분명한 건 난 아주 특별나게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또 엄청나게 빚이 많거나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성장한 것 또한 아니다. 좋은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나 많은 것을 누렸지만, 그 이면에는 평생 회사원이셨던 아버지의 월급을 알뜰하게 쓰고 모으신 어머니의 노력이 있었던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그렇다 보니 사실 돈을 쓰는 데 있어서 짠돌이 수준으로 아끼는 것도 아니지만 또 내 기준으로 과다한 지출이 이뤄진다고 생각하면 예민해지는 편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연애를 할 때 한 번씩 뮤지컬을 보거나, 인당 3-5만 원 이상 하는 식사를 하는 것은 수용 가능하긴 하지만 사실 데이트에 항상 그 정도 지출을 해야 한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를 넘어서 '굳이 이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지출을 하면서 연애를 하는 듯한 모습에 사실 개인적으로 당황을 하고는 한다. 예를 들어 차를 끌고 교외로만 나가도 기름값까지 합하면 한 번 다녀오는데 10만 원 이상은 들어가게 되어있는데 그 정도 지출을 평상시에 항상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나랑은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싶어 지나치게 된다.
풍요로운 연애의 한계
사실 그런 연애를 하는 것이 단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나쁠 것은 별로 없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좋은 것을 하는 게 나쁠 것이 뭐이 있겠는가? 그리고 나 또한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은 지금은 그런 쉼을 누리고 싶을 때 (남자들이 많이 그렇듯이) 연애를 하고 있지 않다 보니 같이 누릴 사람이 없어서 포기하게 되는데 그럴 때는 솔직히 '아 이런 게 참 싱글의 비애구나...' 싶을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에는 한 콘서트에 남동생과 같이 갔는데 이참 남자 둘이서... 그렇더라. @_@
하지만 그러한 단기적인 측면이 아닌 장기적인 측면, 특히 결혼을 생각한다면 그런 풍요로운 연애는 단점이 더 많다. 우선 그러한 풍요로움을 누리다 보면 그 풍요로움과 여유에 젖어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우리가 콘서트나 공연을 보러 간다고 해서 연인에 대해 더 깊게 알게 되거나, 근사한 저녁식사를 먹으면서 그 식사에 대해서 대화를 한다고 상대를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사실 풍요로운 연애를 하다 보면 내가 상대를 좋아하고, 상대와 내가 잘 맞는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람과 있을 때 누리게 되는 풍요로움이 좋은 것인지를 분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풍요로운 연애만을 하는 관계에서는 상대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고, 그걸 버텨낼 수 있는 사람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한계가 있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평생을 같이 살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인데, 그 가정 안에서 어찌 힘든 일이 없겠는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도 둘 간의 관계에서, 두 사람의 부모와의 관계에서, 주말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 대립이나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사실 가정을 꾸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 서로가 어떻게 그 문제를 대하는지에 대한 것인데 풍요롭기만 한 연애는 사실 갈등의 상당 부분은 물질적인 것으로 보완이 되기에 서로의 그런 면까지 알 수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가난한 연애를 꼭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한 연애를 꼭 해야 한다거나, 여유가 있어도 일부로 가난하게 지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더군다나 결혼을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지금 당장 연애의 풍요로움 여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어쩌면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가난한 연애의 과정에서 오히려 상대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가난한 연애가 갖는 장점도 많다는 것이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준비하는 다른 것이 있는 백수로 지낼 때 만나던 친구와 헤어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말이 하나 있다. '내가 지금 너 상황을 배려해서 데이트할 때도 얼마나 식사도 저렴한 곳으로 가주고 있는데!'라는 말이었다. 갈등이 쌓이고, 쌓이는 과정이었지만 난 여전히 그녀를 참 좋아했었고, 그녀의 생각과 가치관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말 한마디가 내 눈에 있던 콩깍지가 떨어지게 하더라. 그리고 그제야 그녀의 SNS에 올라와 있는 그녀의 친구들과의 식사자리 사진들이 눈에 들어왔고, 다른 연쇄작용들이 일어났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됐었다.
개인적으로 힘든 상황은 나와 주위 상황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게 해주는 힘이 있다. 그리고 사람이 힘들어지면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가 구분되기 시작하듯이 가난한 연애는 서로의 속에 있는 모습들을 알게 해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물론 '가난'의 수준에 대한 개념이 두 사람 사이에 다르다면 그 두 사람은 맞을 수가 없지만, 그러한 극복하기 힘든 수준의 차이가 아니고 연애와 데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이라면 사실 데이트의 풍요로움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풍요롭지 못한 상황이 서로를 더 가깝게, 그리고 더 잘 알게 해줄 수도 있다. 물론 이는 결혼까지 생각할 때 얘기다.
그러니 어쩌면 지금 누군가와 연애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지금 연애가 가난한지 여부가 아니라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이고, 만약 상대가 경제적인 측면에서 포기상태가 아니고 계속해서 노력을 할 사람이거나 정말 건강한 가정을 꾸리는데 소망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의 가난함은 조금 옆으로 놓고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어쩌면 그러하는 것이 상대를 더 잘 볼 수 있게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 > 연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 (0) | 2020.02.05 |
---|---|
연애도 현실이다 (0) | 2020.02.03 |
연애에 실패는 없다 (0) | 2020.02.02 |
연애는 거래가 아니다. (0) | 2020.02.01 |
연애는 필수가 아니다. (0) | 2020.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