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와 영화 속 사랑
나는 만화 자체를 어렸을 때부터 잘 보는 편은 아니었고, 그나마 본다 해도 전형적인 '남자'들이 즐겨보는 만화들을 즐겨봤다. 그래서 순정만화는 거의 보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어머니의 취향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드라마나 로맨스 류를 좋아하는데, 내가 잘못 아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랑에 대해서 그리는 것은 로맨스 영화와 순정만화가 비슷한 것 같다.
스토리를 전하는 만화나 영화, 드라마들의 특성상 로맨스 영화나 순정만화에서의 사랑은 엑기스가 농축되어서 들어있다. 마치 그 사람들은 연애만 하는 사람들인 것처럼. 그래서 그들은 빨리 사랑에 빠지고, 이벤트 가득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며, 빨리 틀어지고 헤어졌다가 드라마틱하게 다시 합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사랑하는 것 이외의 영역에서 그들의 삶을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영화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얘기를 우리는 모른다. 그렇게 다시 합쳤다가 이혼했을지 누가 아는가? (하하하...)
그래서일까? 현실에서도 연애를 할 때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주고받고, 주기적으로 이벤트를 기대하며, 순정만화나 영화에서와 같은 연애를,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나 만화가 현실로 들어오면.
하지만 현실에서의 연애와 사랑은 많이, 아주 많이 다르다. 아니 만약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을 생중계한다면 그들이 그렇게 지지고 볶는 것이 그들 삶의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짧게는 하루, 길면 수십 년의 시간에서 영화의 흐름에 맞는 부분만 편집해서 짧으면 1시간에서 길어봤자 3시간으로 편집한 것이니까. 영화도, 만화도.
그리고 모든 것이 영화에서 처럼 낭만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현실에서는 당장 이벤트만 하더라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헬륨을 가득 넣은 풍선을 차 트렁크에 넣어도 풍선이 날아가지 않고 트렁크에 있을 수도 있고, 날아가더라도 영화처럼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몇 개는 날아가고 몇 개는 남아있겠지. 촛불로 길을 만들고 하트를 만드는 것도, 직접 해보면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고 몇 명이 같이 작업을 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지막 촛불을 켰을 때 처음 킨 초가 다 녹아있을 수도 있다. 그것도 타이밍을 잘 맞춰야지 잘못하면 깨져버린 하트가 완성된다.
무엇보다, 그렇게 이벤트를 한다고 상대가 항상 엄청나게 감동을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예를 들면 현실에서 모든 남자들이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닌데, 상황에 따라서는 그렇게 어설프게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노력하면서 노래하는 게 귀여워 보일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만약 다른 사람들이 많은 데서 3-4분을 그렇게 노래를 하고 있으면 그 시간은 몇 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엄청나게 감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게 당연하지 않을까? 그 때도 노력을 알아줘야 한다는 건 가혹한 일이 아닐지...
연애는 현실의 일부다.
처음 연애를 할 때는 나도 그랬던 것 같다. 항상 연락하고 싶고, 답이 곧바로 안 오면 안달복달하고, 매일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마치 사랑이 떠나갈 것만 같고... 그런데 그건 비단 나만 그랬던 건 아닌 듯하다. 휴대폰이 현대사회 사람들의 기다리는 능력을 앗아가 버린 걸까? 그나마 메신저가 없었을 때는 문자하고 답이 오지 않으면 '확인을 못했나 보다, 일이 있나 보다'하고 기다리기라도 했는데 이젠 읽은 게 확인되는데 답이 없으면 '읽씹'했다며 분노하는 경우들이 꽤나 많다.
그런데 연애는 현실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현실을 살아가면서 그 가운데 어느 지점에선가> 연인과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는다. 양쪽이 모두 연애'만'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회의에 들어가 있다가 카톡을 봤는데 거기에서 카톡을 할 수 없으니 회의가 끝나고 나서야 연락을 할 수도 있고, 아니 정말 바쁜 날은 회의를 하다가 카톡이 왔단 걸 깜빡할 수도 있다. 물론 영화와 만화에서는 그 중간 단계는 다 삭제되고 곧바로 답하는 장면이 나오겠지만... 어떤 경우에라도... 그리고 내가 시간이 될 때 상대가 안될 수도 있고, 상대가 시간이 될 때 내가 안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상대의 상황이 어떨지에 대해서 너무 빨리 예단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 답이 없으면 지금 당장 섭섭해도 반사적으로 반응을 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일단 '믿고' 한 박자를 쉬고 직접 만났을 때, 통화했을 때 자연스럽게 연락을 했던 내용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자연스럽게 물어보면 된다. 답이 없어서 걱정되었다거나 바쁜가 보라고 생각했다는 말과 함께.
연애는 상대의 삶의 '일부'가 되는 것.
그렇게, 연애는 상대방의 일상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영화나 순정만화에서 나오는 이벤트들이나 특별한 일들이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항상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도, 연애도 우리 삶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화면에서, 책에서 보는 것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나 만화와 현실이 다르게 드러난다고 해서 상대가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물론, 이 역시 상황에 따라 다르다. 상대가 정말 바쁠 수도 있고, 사실 딴짓을 하느라 시간과 마음을 덜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정말 마음이 떠나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특정한 현상이나 패턴을 놓고 '이렇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라'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건 사람마다, 연애마다 다른 것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그게 어떤 상황인지는 결국 본인이 판단을 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상대에게 섭섭할 때, 두 사람 모두 한 번쯤은 브레이크를 잡고 상대가 어떤 상황인지 왜 그렇게 반응하는지를 생각해 줄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인에게는 정말 솔직하게 자신의 상황들을 오픈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연인에게 걱정을 끼칠까 봐 삶의 일부를 나누지 않게 될 수도 있지만 사랑이 둘이 서로를 자신만큼 아끼는 것이라면, 둘이 하나처럼 되는 관계라면 연인에게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상황들을 솔직하게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상대방도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오해를 할 가능성도 낮아진다. 그게 신뢰를 쌓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처럼 연애는 현실이다. 그저 사랑하면 마음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데도 머리를 써야 하며, 서로에게 맞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연애는 상대방을 내 것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내 삶의, 내가 상대 삶의 '일부'가 되는 것이기에, 상대방의 삶 전체를 존중해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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