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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두 글자로 보는 세상

실력

학벌주의에 반대하면서 나오는 말이 '실력'으로 사람을 뽑으라는 것이다. 그 말이 맞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첫 번째는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실력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람을 뽑을 때 실력이라는 것이 측정 가능해야 한단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란 것이고, 사실 사람을 뽑을 때 분명하게 측정 가능한 실력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사실 두 가지 전제 중에서 더 근본적인 것은 과연 사람을 뽑을 때의 기준은 '실력'이라는 것이 측정 가능한지 여부에 있다. 내가 있었던 회사에서는 우리 기수부터 1박 2일 동안 면접을 봤고, 내가 주니어일 때 1박 2일 면접 때 그룹 면접에서 면접자들을 인솔하면서 혹시라도 주니어들한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적어내는 역할을 하러 갔었다. 그렇다. 면접자들은 몰랐겠지만 사실 입사 1-2년 차였던 나는 가서 면접관들이 없는 곳에서 다른 얼굴을 하는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서, 즉 누군가를 붙일 수는 없어도 불합격을 시킬 수는 있는 사람으로 갔던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었고, 나는 한 사람의 이름과 행동을 적어냈었다.

그렇게 철저하게 면접을 보는 회사에서도 실력이란 것은 분명하게 측정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연수원 생활을 할 때 우리 특징들을 교육 담당하는 선배들이 정리했고 우리는 그에 따라 부서를 배치받았다. 하지만 2개월 동안 비슷한 또래들끼리 있으면서 보였던 실력은 필드에 나가면 또 다르게 드러났다. 연수원에서 그저 그랬던 사람이 현장에서는 굉장히 잘한 경우도 있었고, 연수원에서 탁월했던 사람이 현장에 나가서는 적응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면접 최선을 다해서 디자인하고, 합숙을 하면서 그 사람을 지켜봐도 다른 환경에서는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이 되기에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실력이란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회사들도 그걸 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회사들은 눈에 보이는 학점과 학력으로 사람들을 1차적으로 거르는 것이다. 그 사람이 일정 수준의 학력을 갖췄다는 것은 그 사람이 상대적으로 조금 더 끈기 있고 주어진 구조에 자신을 잘 맞춘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학점을 잘 받았다는 건 그만큼 성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니까. 그렇다면 왜 출신학교에 따라 학점을 다르게 평가하냐고 묻는다면, 그건 학교별로 수업에서 요구하는 학습의 강도가 다르다는 것을 회사에서 다 알기 때문이다. 즉, 회사들이 학력과 학점을 보는 것은 면접에서 볼 수 없는 그 사람의 일상에서의 자세가 그 안에 묻어 있다고 생각하고, 확률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3이나 수험생일 때 가정에 어려운 일이 있었을 수도 있고, 수능을 볼 때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점수가 계속 잘못 나왔을 수도 있고, 그저 우리나라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 누군가의 가능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 내가 아는 형은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그저 그런 학부를 나왔지만 학부시절 정말 탁월한 능력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서 지금 남들이 다들 가고 싶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깊고 똑똑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가 가진 시간과 자원은 유한하고, 위에서 설명했듯이 사람이란 존재는 어떻게 성과를 낼지 여부가 예측 가능하진 않기 때문에 회사들은 '확률'의 싸움으로 사람을 뽑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어떤 회사는 블라인드 면접을 진행했는데 몇 년 동안 계속 선발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특정 학교들 안에 있었어서 결국 블라인드 면접이 투입되는 자원에 비해서 효율성이 떨어진단 판단하에 다시 과거의 방식으로 사람을 선발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건 아마도 특정 학교 출신이 아닌 사람들 중에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 특정 학교 출신들에도 분명히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회사들이 꼭 실력만으로 사람을 뽑지 않는다는 것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학교 출신들이 선호하지는 않는 회사들에 평생 다니셨는데 아버지께서 면접관으로 들어가시면 스카이 출신과 인서울 중상위권 대학에서 학점이 좋은 사람들은 일단 최대한 안 뽑으셨다고 한다. 유학파도 당연히. 이유는 간단했다. 그 친구들은 금방 그만두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회사는 그 회사에 오래 다니면서 적정한 능력과 자세를 가진 것 같은 사람을 뽑는데 중점을 뒀다고 한다. 이처럼 사람을 뽑는 데는 다양한 요소가 작용을 한다. 

그래서 만약 내가 '그러니까 학력주의는 괜찮은 거야'라고 주장하는 것이냐고 하면 그걸 그렇게 옹호할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게 최선은 아니겠지만 사람을 뽑는 입장에서는 차악의 방법이란 것이다. 민주주의가 그런 것처럼.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왜 사람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회사에 가고 싶은 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건 그 회사들이 보통 임금 수준이나 복지 등이 더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대기업'과 그 외의 기업들, 아니 대기업에서도 기업들 간에 그 구성원에 대한 대우가 그렇게 차이가 나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첫 번째는 대기업들과 일하는 중소기업들이 착취당하는 수준으로 일을 해야 해서 이익이 별로 나지 않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이익이 나는 경우에도 중소기업 사장들이 또 직원들에게서 착취하는 수준의 임금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그런 시스템이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물론 그건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국가적으로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개선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결국에는 그만큼 정부를 감시하고, 정쟁은 그만하고 이와 같은 상황을 개선시킬 노력을 하도록 여론을 조성하고, 선거를 통해 그러지 않는 이들을 심판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가 중요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생각해보자.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연봉'으로 약 300-400만 원 차이가 난다면 지금처럼 사람들이 대기업으로 몰릴까? 문제는 많은 경우에 일한 지 몇 년이 지나면 '월급'으로 약 200-300만 원 차이가 난다는데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렇다 보니 중소기업들은 오히려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그걸 또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닌 게, 만약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돈은 그만큼 더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아무 배경도 없는 사람이 중소기업에서 받는 월급으로는 현실적으로 그걸 감당할 수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중요한 건 대기업들이 어떻게 사람을 뽑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이나 복지 수준의 격차를 줄이고, 중소기업 사장님들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게 할 수 있을지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닐런지. 그게 해결되면 실체가 분명하지도 않은 실력에 대한 논쟁도 끝날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정책에 대해서는 시늉만 낼뿐 정쟁만 일삼는 정치 뉴스를 보는 보통 사람들은 가슴이 갑갑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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