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직장생활
결혼의 손익계산서에 대해서 쓰면서 가정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여자가 임신을 한다는 사실이라는 요지의 글을 쓰다가 문득 임신에 대한 생각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전부터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주제를 쓸 타이밍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회사에 다닐 때 우리 팀은 10명이었는데 그중에 남자가 4명이었고, 내가 있었던 2년 동안 여자 선배 3명이 출산을 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나머지 사람들이 출산휴가 기간 동안 대무를 해야 했고, 사실 개인적으로 그때는 '사람을 고용하는 입장에서는 남자를 뽑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매우 극히 '이성적으로' 생각을 했었다. 정말 '오직' 효율성만 계산한다면 말이다.
사실 남자는 군필자만 뽑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차이가 있다면 남자는 애초에 뽑을 때 군 복무 문제를 해결한 사람만 뽑고, 여자는 아직 낳을지 여부도 분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필터링을 한다는데 있다.
임신과 사회의 관계
모든 것에 시장의 역할만 강조하거나, 사회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지 않거나, 효율 지상주의자들이 하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이 그런 것들로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자유주의도 아닌 완전한 자유주의자라면 말이다. (다만 그런 경우 문제는 고전적 자유주의는 사실상 이미 사장된 이론이나 마찬가지라는데 있다...) 하지만 채용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생각을 갖거나, 사람들이 물건을 적정한 가격에 팔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부가 지원을 해줘야 한다거나, 회사에서 사람을 함부로 해고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니, 사실 의료보험제도나 최저임금의 혜택을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양심이 있다면 그런 얘기는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는 '사회적인' 요소가 존재하고 그에 대한 고려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임신했거나, 할 가능성이 있는 여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정이 떨어질 정도로 이성적으로 분석을 해보자면, 신생아가 태어나서 성장하지 않을 경우 유아 관련 시장이 사장될 것이고, 그러한 출산율 저하가 계속되면 안 그래도 작은 내수시장이 더 작아질 것이고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기업들이 문을 닫기 시작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세수가 줄어들게 되어 국고도 바닥을 드러내게 되면서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회서비스들이 하향평준화될 수 있다. 맞다. 극단적인 예시이고, 너무 이성적으로만 접근을 한 사례다. 그리고 이렇게 접근하면 여성들을 무슨 아이 낳는 공장으로 취급하는 듯해서 나 역시 이런 예시를 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왜 출산율이 중요한 지를 설명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분명한 것은 저렇게 극단적인 수준이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현상은 발생할 것이란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를 낳는 것은 그 가정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도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필요하지 않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건 결국 돈과 연결된 문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아이를 낳고 잘 기를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는 한 가정에 일정 수준 이상의 금전적 수입을 보장해 줘야 하는데, 한 사람의 임금을 올려주는데 한계가 있다면 여성들도 같이 금전적인 수입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저임금 수준을 올려줘서 한 사람만 벌어도 아이를 충분히 양육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보장해주던지...
임신과 여성 채용
그렇다면 기업들은 (역시나 이런 접근이 너무나 이성적이지만) 사실 자신들이 판매하는 물건을 사고 사용할 시장을 만들어낸다는 차원에서(B2C의 경우), 혹은 자신들의 클라이언트가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B2B의 경우) 투자를 한다고 생각하고서라도 여성을 채용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투자를 하는데 심지어 일도 하는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여성이라고 무조건 채용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되는 경우에만 채용하라고 하는 것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출산휴가 얘기를 할지 모르지만 사실 정말 작은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이상 규모의 회사들의 경우 시스템이 회사를 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이 몇 달 빠진다고 해서 그 회사가 돌아가는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만약 그 정도로 능력이 있고 중요한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 사람을 뽑는 게 회사를 위한 이익이 아닐까?
가정 속에서의 임신
어쩌다 보니 글을 쓰면서 흥분을 해서 사회적 맥락에서 임신과 관련된 쟁점들에 대해서만 쓰게 되었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와 닿을 부분은 가정 안에서 임신에 대한 부분일 것이다. 난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지만 결혼한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의 갈등 중 유의미한 부분은 육아와 관련된 영역에서 발생하는 듯하다. 그리고 그런 얘기들을 또 역시나 이성적으로,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여자와 남자의 차이는 모두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자의 입장에서 남자가 육아에 너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러한 경향은 여자는 10개월간 임신한 상태로 있었던 경험이 있었던 것과 남자는 그 경험이 없었던 차이에서 오는 듯하다. 사실 모성애라는 것도 여성 안에 타고나게 심겨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10개월간 아이를 몸에 품고 있으면서 여성에게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남성은 아무래도 직장생활을 하거나 아내와 같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아이에 대한 인식을 거의 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패턴이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어느 정도 이상 유지되는 듯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이 육아와 아내가 임신한 상태에 대한 배려를 충분히 하지 못하는 것은 문화적인 영향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아니 사실 대부분 문화권에서 남자들이 육아에 깊게 참여하는 경우는 역사적으로 많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그게 정당화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에, 역사적으로 남자들이 육아와 임신한 아내에 대하여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은,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럴 필요가 조금 적었던 것은 당시에 사회, 문화적인 배경의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에 남자들은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러 나갔다 왔을 것이고, 생존을 위해서 한 가족씩 살기보다는 여러 가족이 모여 살면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형태로 마을이 꾸려졌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우리 조상들은 옆집 수저가 몇 개가 있는지도 알았을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실 임신한 여성에 대한 필요는 남자들이 일을 하러 갔을 때 그 마을에서 여성들끼리 서로 돌봐주며 충족시켜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남자들은 사실 고된 육체노동을 하고 돌아오다 보니 돌아와서는 어딘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지 않았을까?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우리 조상들이 살았던 시대와 많이 다르지 않나? 결혼의 손익계산서 1(링크)에서도 썼지만 사실 여러 가지 변화로 인해서 사회적으로 이제 남자와 여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 돌봐주는 역할 또한 변해야 하는 것은 아닐런지. 그런데 사실 육아는 아기가 태어난 이후가 아니라 여자가 임신을 한 순간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난 이후 부부가 같이 잘 돌봐주기 위해서는 여자가 임신을 했을 때 여자가 아기를 품고 아기를 돌본다면, 남자는 그 아기를 품고 있는 여자를 돌봄으로써 같이 육아를 시작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여자가 임신했을 때 남자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남자가 육아에 덜 적극적이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힘과 에너지를 쏟은 만큼 마음을 갖게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아기가 태어난 이후에 애정을 쏟기 위해서는 아기가 잉태되었을 때부터 남자도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힘과 에너지를 쏟고, 아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을 때야 비로소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육아를 더 자연스럽게 같이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아직 아기를 갖기는커녕 싱글로 있는 남자가 해보지만 그게 맞는지는 경험자만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