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 : 가장이 가족성원에 대하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가족을 지배 ·통솔하는 가족형태
로마시대에는 가장이 아이들의 생살권, 매각권, 징계권과 혼인 및 이혼에 대한 강제권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던 시대이고, 평등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시대였으니 그랬을 수 있다. 중국의 가부장제는 그 관계가 사회영역까지 확장되어나간다. 그래서 신분제를 전제로 할 때 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 '밑'에 있는 사람들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합법적으로 말이다.
그러한 극단적인 가부장제는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생각해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그럴만한 상황에 있었다. '로마황제'라는 호칭을 쓰지만 사실 로마제국은 법원칙보다 황제의 힘에 의해서 지배가 이뤄지는 제국이었고, 이는 로마는 원칙이 아니라 힘이 지배하는 사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들이 강력한 권한을 갖고 통제하지 않으면 그 가정의 구성원들은 오히려 더 큰 외부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국가가 엄청나게 컸고, 그에 따라 모든 지역에 대한 중앙통제가 이뤄질 수가 없었다. 따라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최대한 많은 영역을 통제 하에 두기 위해서는 상하위 개념으로 사람들을 구속하는 일종의 피라미드 구조의 권력관계가 필요했다.
로마와 중국의 공통점은 '법과 원칙'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국가였단 것이다. 그리고 그 두 국가에서의 가부장제는 '힘의 원리'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도입된 '수단'이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형식적으로는 해방 이후, 1987년에는 형식적이지만 일정 부분에서는 실질적으로도, IMF 이후에는 상당한 수준으로 '법치주의'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한 국가다. 이는 1987년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형식적으로는 법을 제정하고 민주주의 외쳤지만 실질에 있어서는 독재자의 권력에 의해 통치되었고, 1987년 헌법이 제정된 이후에는 법이 조금씩 유의미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권력의 영향이 강했고, IMF에 손을 벌리면서 법치주의 원리를 반강제로 사회 곳곳에 적용해야 하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우리나라에는 여전히 '힘의 논리'가 강하게 작용한다. 그리고 그 힘의 논리는 가부장적인 가족에서 시작된다. 지금 성인이 된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부모는 일제치하에서부터 독재정권 하에서 가부장적인 가정과 사회에서 자랐고, 그런 부모 슬하에서 자란 자녀들은 그런 경향성을 일정 수준으로는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IMF 전후 혹은 그 전에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들 세대까지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하는 말은 순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런 가정과 사회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분들이 그런 경향성을 가진 것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권력작용'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내려지던 시절에 의사결정을 하던 사람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있다. 이는 지금 정치인들과 주요기업의 CEO들 나이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국회의원들 중 상당수는 90년대부터 정치를 해왔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IMF이전에 힘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문화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이 위에서 찍어누르고 일방적으로 끌고 나가는 경향이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젠 그들이 살던 사회와 다른 사회라는데 있다. IMF 이후 우리나라에는 법을 중시하는 문화가 급격하게 확산되었다. 그 시작은 경제영역이었지만, 경제영역은 사람들의 일상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이다보니 사람들은 그런 문화를 모든 영역에서 빠르게 흡수한 듯하다. 더군다나 1997년에 성인이 아니었던 지금의 20-30대들은 대학교와 사회생활을 '법과 원칙'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젊은 사람들은 '힘'이 아니라 '원칙과 시스템'에 의해서 모든 것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가부장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힘으로 뭔가를 추진할 때 그것이 '먹히는' 사회가 있을 수 있다. 변화가 빨리 일어나지 않고, 그에 따라 이전의 경험이 계속 유용할 때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효과적일 수 있다. 반면에 사회가 빠르게 변화해서 그 구조도 엄청나게 빨리 변화는 사회에서 그런 방식은 모든 것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다. 이는 기존에 맞았던 방식이 지금은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가, 사회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사는가? 10년이면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건 수십년전 얘기다. 이제 강산은 1-2년에 한 번씩 뒤집어진다. 2000년대 초반에 300만 화소 짜리 디지털카메라를 사면 그게 꽤나 괜찮은 카메라였는데, 이젠 휴대폰으로 막 찍은 카메라도 그 디카보다 나은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않고도 회의를 하고, 팀장과 팀원이 다른 국가에 살아도 일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런 사회에서 가부장제 방식의 일처리와 커뮤니케이션은 '악'이다. 이는 그들이 경험하고, 아는 것들은 상당부분이 중고서점에서 땡처리 되는 책과 같이 되어버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부장제가 주가 되었던 가정과 사회에서 성장한 분들은 그 당시 방식으로 대화를 하고 집단을 끌고 나가려고 시도한다. 원칙과 시스템이 아니고 말이다. 그런 그들의 대화가 '요즘 세대'와 맞지 않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방식은 물론이고 그 방식의 내용까지도 지금의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가부장제에서 대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권한은 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권한 또는 권력을 가진 사람은 듣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뱉고 상대가 따를 것을 요구하지만, 그 아래 종속되어 있는 사람은 원칙과 시스템을 먼저 생각한다. 그런데 위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찍어내리기 때문에 종속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를 갈면서 입을 다문다.
여기에서 문제는 시대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런 가부장적인 생각과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 된 방향성은 현실에서 실패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큰 문제는, 그러한 권한을 행사한 사람이 그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이 찍어누르고 대화를 하지 않은 상대 탓을 한다는데 있다. 진짜 가부장적인 사람이라면 실패도 본인이 책임을 져야하는게 맞지 않을까?
이러한 싸이클은 '가부장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정이 깨어지는 것도 거의 이러한 가부장제의 문화 때문인 경우가 많다. 여전히 무의식 중에 남존여비 사상을 갖고 있으면서 책임은 지고 싶어하지 않는 남자, 가부장제에서 남자에게 지워지던 책임은 강요하면서 본인은 원칙과 시스템 하에서 보장되는 권리를 요구하는 여자.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남녀 또는 부부 간의 문제는 상당부분 이러한 남녀의 경향성으로 인해 시작되고, 그런 경향성은 또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자식은 부모 말을 잘 들어야지'의 방식으로 강요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구분 없이.
사회적으로는 이러한 가부장적인 문화로 인해 변화가 이뤄지지 못한다. 가부장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들이 가부장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함으로써 우리 사회와 기업들은 변하지 못한다. 사회와 기업뿐인가? 이는 법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가부장적인 커뮤니케이션과 생각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유연성이 결여되어서 우리나라 산업들 중 상당수는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고 새로운 산업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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