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묵상/말씀 묵상-2020년

사사기 10-12장 말씀 묵상

사실 이런 부분들이 성경을 읽을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그렇게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바로 서 있었던 입다. 그런데 그를 들어서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시면서 그가 서원한 것에 대한 답으로 하나님은 입다의 딸이 그를 맞이하게 한다. 왜 그의 딸이어야 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이를 조정하실 수 있었다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설명은 만약 그게 입다 본인의 딸의 아니었다면 그게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어떤 파급효과를 가졌을 지에 대한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와서 입다를 맞이했다면, 그리고 그를 제물로 들었다면 입다는 하나님의 일을 그 안에서 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 입다에게 반항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분란을 일으키고 하나님을 떠났을 것이다.

이는 입다가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자신의 믿음을 이렇게 보여줬음에도 그 후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그에게 들고 일어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본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지 않으셨다면 이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하게 보이는 구절일 수 있다. 잘하고 수고한, 희생한 사람의 자녀를 데려가다니... 상을 주기는 커녕. 이는 분명 통상적인 신이 보여주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땅에 이로운 가치를 두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하신다. 누군가가 이 땅에서 죽는 것이 우리에게는 아프고 힘든 것이다. 그 사람을 더이상 볼 수도 없고 그 사람과 교제할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 땅에 뜻과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사실 죽는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슬퍼하거나 힘들어 할 일은 아니다. 이 땅에서는 기쁨과 즐거움 만큼 혹은 그 이상의 고통이 있고 죽는건 그걸 더이상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까. 사실 우리가 누군가가 죽는 것을 놓고 하나님의 벌이냐 상이냐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성경적인 기준을 놓고 봤을 때는 맞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인간이기에 그에게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린 죽음 이후 어떤 세계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모두가 두렵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런 인간이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때까지 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심기 위해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보내신 것도 그 때문이었고, 그것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입다의 딸의 희생을 애곡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이후에도 수도 없이 하나님을 떠나고 본인들이 힘들어지거나 죽을 것 같을 때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나온다. 우리는 이와 얼마나 다른가?

우리가 또 봐야 하는 것은 입다의 출신이다. 그는 기생의 아들이었고 그 아버지의 정식 부인의 아들들에게 멸시당한 자였다. 우리는 교회에서도 세상에서도 집안을 출신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의 대형교회들도 그렇고. 하지만 하나님은 출신을 보지 않으심을 입다를 통해 보여주신다. 신앙은 절대로 그대로 물려가서 아버지의 신앙이 아들의 신앙이 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그걸 염두에 두고 개인은 개인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지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말씀묵상 > 말씀 묵상-2020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사기 16-18장 말씀 묵상  (0) 2020.03.23
사사기 13-15장 말씀 묵상  (0) 2020.03.23
사사기 7장-9장 말씀 묵상  (0) 2020.03.20
사사기 4-6장 말씀 묵상  (0) 2020.03.20
사사기 1-3장 말씀 묵상  (0) 2020.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