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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데이트의 정석

A: 연애할 때 뭐가 제일 힘들었어?

B: 전에 만나던 남자 친구랑 시간이 지날수록 스킨십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지는데 난 그게 정말 싫더라고.

A: 응? 아니 현실적으로 연애를 하면 할수록 다른 건 할 게 없지 않아? 영화, 미술관, 야외 산책, 각자 좋아하는 거 몇 개 하고 나면 연애 몇 달하고 나서 사실 새로운 걸 할만한게 없잖아.

B: 아니 뭐 그렇긴 한데... 그래도 관계가 그렇게 되면 너무... 좀 그렇잖아...

데이트, 잘하고 있나요?

실제로 이뤄졌던 대화는 아니고, 데이트와 스킨십에 대해 내 지인들이랑 나눈 여러 대화들을 종합하면 이 정도로 요약될 수 있겠다 싶었다. 사실 소개팅을 3-4번 하고 나면 연인으로 서로 시작점을 찍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3-4번 정도 만나고 나면 정형적인 데이트는, 연인이 아닌 관계에서 할 수 있는 데이트나 만남과 대화의 종류는 거의 바닥이 나니 말이다.

그렇다면 데이트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들은 어떻게 데이트를 할까?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않지만 사실 이는 꽤나 중요한, 아니 어쩌면 연인과 부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연인을 연인으로 만드는 것은 정기적으로 만나는 데이트가 아닌가?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일은, 그것도 1주일에 1회 정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지 않나?

그런데 데이트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물론 두 사람이 모두, 또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항상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데이트에 그렇게 에너지가 많이 들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매주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꽤나 피곤한 일이다. 가끔 한 번씩은 그런 것들이 있겠지만. 연인의 데이트가, 만남이 많은 경우 스킨십으로 끝나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딱히 뭘 할지 모르겠어서.

데이트의 의미

그런데 스킨십으로 끝나는, 그것이 중심이 데이트는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사실 긴 연애 이후에 가정을 꾸렸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안에 갈라서는 부부가 많은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연인들의 데이트가 그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부분 데이트가 그저 뭔가를 같이 하고, 끝은 똑같게 내기 때문에. 때로는 일처럼, 때로는 습관처럼 말이다.

이전에도 비슷한 요지의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사실 연인이라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의 핵심은 대화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데이트'라 함은 두 사람이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서로 더 친밀해지고, 그와 함께 '대화거리'를 만드는 과정으로서의 의미도 갖지 않나...라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같이 영화를 보고 그에 대해서 생각을 나누고, 미술작품을 보면서 보면서 느낀 것을 공유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사실 데이트는 두 사람 속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매개체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명제에 동의를 하시는 분들에게는 두 사람이 공유한 그 경험을 통해서 각자의 삶과 생각이 묻어 나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데이트가 될 것이다. 그렇게 공유한 경험을 통해 서로의 삶과 속 사람이 묻어 나오면서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더 알아고, 신뢰가 형성되고, 친밀해지는 과정. 그게 데이트가 연인에게 갖는 의미가 아닐까?

대화가 쉽진 않다

많은,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연인들이 그런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대화의 기술을 잘 습득할 기회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보다 세상과 학교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을 체화해야 승리하는 교육체계 안에 12년을 보낸 사람들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대화하는 법을 교육과정에서 익힐 수 있겠나?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생각과 고민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에 따라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무엇인가를 좋아한다고 생각 또는 착각하는 경우는 많지만...

그런데 본인이 본인을 모르면, 아니 본인이 본인을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런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에 따라 본인의 삶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다면 그것들을 표현할 줄 모르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이라면, 어떻게 무엇인가를 같이 하고 나서 그 안에 자신을 묻혀서 상대와 대화를 하겠나?

'아까 영화 어땠어?'라는 질문에 '재미있었어'라는 식의 답 밖에 할 줄 모른다면, '그 작품 너무 예쁘지 않아?'에 대해서 '난 잘 모르겠던데'라는 대답 외에는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데이트의 끝이 어떠할지는 분명하다. 무엇인가를 한 이후의 데이트에는 '나는 저 영화를 보면서 이래저래했어'라는 식의 대화가 최소한 그 날만큼은 이뤄지는게 맞지 않을까? 스포츠를 좋아한다면 단순히 그 스포츠에 대해 설명하고, 그 경기에 대해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스포츠와 관려된 자신의 삶의 에피소드를 연인에게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데이트와 대화가 아닐까? 내 경우를 예로 들자면 난 올림픽을 보느라 공부를 안 해서 재수를 하게 됐고, 학부시절에는 기회가 되어서 해외에 나가 경기들을 직접 볼 기회도 있었다. 그런 내용을 같이 공유하는 경험을 통해 나누는 것이 내가 말하는 '내 삶을 데이트에 묻혀내는 것'이다.

그런 대화를 할 줄 모른다면, 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더 잘 알아갈 수 있을까? 그 관계가 어떻게 깊어질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연애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고민들을 안 해서 공유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런 고민을 시작하고, 그런 고민을 해도 그런 것들을 누군가와 나누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본인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연인과 그걸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두 사람이 서로를 더 잘 알아감으로써 더 가깝게, 그 관계를 더 깊게 만드는 건 결국 그런 대화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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