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연애

30대 프리랜서의 결혼과 연애

A: 선배님!

B: 오랜만이다!

A:  그때 부탁드렸던 소개팅 시켜주세요!

B: [임시 직장+프리랜서+박사=지방대 졸업]인 거 알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우선은 그 답변에 있는 '지방대'에 대한 선입견이 불편했고, 그럴듯한 직장이 없거나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상태인 것을 기준으로 '너 몇 점 짜리인지 알지?'라고 낙인을 찍는 듯한 내용이 그렇게 편하게 다가오지만은 않았다. 나보다 거의 20살이 많으신, 자녀가 다 대학에 다니는 나이가 있으신 선배님이 하신 말씀이고, 원래 돌직구를 던지시는 스타일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그 파도의 여파는 며칠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물론, 그분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이나 감정은 없다. 그분은 원래 좀 돌직구이고 좋게 표현하자면 엄청난 극 현실주의자이시니까. '여자 나이 많이 들면 안 돼. 애 낳기도 힘들고, 결정적으로 그거 때문에 너희 부모님도 이제 너 나이에는 나이 든 여자 별로일 거야.'라는 말. 여자의 입에서 나와서 그나마 다행인 얘기를 거침없이 하시면서 '야 남자도 변호사든 뭐든 마흔 넘어가면 사람 못 만나. 변호사인데도 나이가 있으니까 30대 초반도 안 만나려고 하더라'라고 말씀하셨던 분이다. 어찌 보면 객관적이고 어찌 보면 공격적인.

분명한 건, 그 안에 밖에서 보는 시선이 묻어있단 사실이다. 30대 후반에 아직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으면 경제적으로 안정이 안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만나는 것에도 기본적인 필터링이 될 수 있다는 건 현실이다. 나는 내 미래에 대한 자신이 있고, 시간과 일한 경력이 더 쌓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 과정에서 조직 또는 회사에 들어갈 기회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날 전혀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 친절하게 모든 것을 고려해서 만나주지 않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프리랜서인데 연 수입이 1억이 넘어'라는 말이 뒤에 붙을 수 있다면 분명 많은 게 달라지겠지만. 내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뭐...

비단 프리랜서의 경제적인 안정적인 부분만 그럴까? 사실 소개팅을 하는 사람들이 따지는 모든 조건들이 그렇다. 나이도, 외모도, 학벌도, 사는 지역도, 사람들은 '통계적으로' 안전한 선택을 하기 위해 특정 항목들로 사람들을 필터링하고, 주선자에게서 '주관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지에 대해서 설명을 듣는 데는 관심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주관적인 평가보다 객관적인 조건을 더 신뢰하니까.

내게 그런 선입견이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어떤 조건에서도 자유로운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그리고 사실 프리랜서로서의 불확실성이란 얘기만 듣고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앞으로 경제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에 대한 정보나 주관적인 평가는 들어보지도 않고 'PASS'를 누르는 사람이라면, 어차피 내가 그 요건들을 갖춰서 만났더라도 내가 그것을 잃는 순간 떠나거나 그로 인해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면서 씁쓸함을 달랬다. 그 선배와의 기나긴 카톡 후에.

어떤 이들은 '어떻게 거기까지만 듣고 만나보지도 않을 수가 있냐'라고 하지만, 거기까지만 듣고 만나지 않는 건 그 사람에게 그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은 상대가 그걸 갖추지 못했다면, 그 관계를 유지하기 힘든 사람이다. 그런 선택은 또 그 자체로 그 사람의 특정한 면을 보여주기에 그로 인해 억울할 필요도, 분노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맞다. 조금은 억울해서 쓴 글.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씁쓸한 감정이 드는 건 또 어쩔 수 없다.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 > 연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독교인의 연애에 대하여  (0) 2020.05.28
바람 피는 이들에게  (0) 2020.05.27
눈이 높은 사람은 드물다.  (0) 2020.05.18
바람 피우는 이들에게  (0) 2020.05.18
연애에서의 다름과 틀림  (0) 2020.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