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 중 상당수는 착한 사람병에 걸려있다. 내가 항상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병.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것도 오만이다. 내가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난 이런 것이 의식된다는 것을 솔직하게 하나님 앞에 인정하는 것이 기독교인이 견지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모든 조건에 있어서 그렇다. 내 안에 이런 욕망이 있습니다. 이런 욕구가 있습니다. 라고 솔직히 하나님 앞에 내놓고 이 문제를, 이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바로 잡아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것이 가장 기독교인다운 기도가 아닐까? 어설프게 내 의지로 이런저런 것을 추구하려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내가 갈 수 있는 길이라 착각하지 않고, 내 안에 있는 적나라한 욕구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상태로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 그게 우선일 것이다.
연애와 관련해서는, 기독교인들은 상당수가 이런저런 조건을 본인은 보지 않는다거나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듯해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 그렇게 움직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결국 그 방향으로 움직인다. 자신 안에 그런 것이 있고, 그로 인해 자신의 결정이 그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그냥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전 이런걸 추구합니다. 이런 걸 원하네요.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건가요? 아니라면 내가 아예 의식하지 않을 수 있게 거두어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일단 이런걸 추구하며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라고 내놓는게 하나님 앞에 나가는 첫 걸음일 것이다.
지금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난 이성의 외모를 의식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난 단순히 이성의 외모뿐 아니라 키, 나이, 학력 등 상당히 많은 것을 의식하며 살아왔더라. 거기에서 학력에 대한 부분은 점점 덜 의식하게 되었지만 상대의 나이는 나이가 들면서 더 의식하게 되었고, 키도 작은 부분이 아니게 되었다. 상대의 직장도 의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내 상황이 불안정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난 상대 직장의 안정성은 의식하고 있더라. 특히 상대의 직장을 의식하는건, 하나님을 여전히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기에 그러는 내 자신이 너무 싫어졌다.
삶에 있어서 모든 영역도 그렇지만, 연애와 결혼의 영역 역시 내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영역이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일하시기 시작하면 내가 지금 의식하고 내가 중요시하는 것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지금 내가 그런 것은, 지금 내가 시궁창 같이, 세상이 따지고 중요시하는 것들이 내 안에서도 중요하다는 것을 일단 인정하는 것이 연애와 결혼의 영역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첫 걸음이다.
정말 부끄럽지만... 30대의 문을 닫기 직전에 와 있는 이제서야 하나님 앞에 그렇게 설 수 있게 됐다. 내 한계와 내 욕망, 욕구를 있는 그대로 두 손에 들고. 본질적이지 않은, 쓰레기 같은 그것들을 내 마음이 욕망한단 것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만 그게 나의 진짜 모습이다. 인정하자. 그게 첫 걸음이다.
이제서야 그 영역에서 첫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많은 경험을 하고 나서야. 내 안엔 여전히 내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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