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본성(?)에 반하는 제도?
20대 초반에 남자들끼리 모임에서 농담이라고 했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진담이 섞인 대화가 오간 적이 있었다. 그 요지는 일부일처제는 남자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한 사람에게 집중하지 않게 타고나는 존재이며, 종족번식을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이다.
나 역시 남자이기에 그들의 그런 말이 어떤 맥락에서, 그리고 왜 이뤄지는지에 대해서 이해는 충분했지만 그 안에서 왠지 모를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꼈다. 하지만 과연 그럴지 여부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도 하지 않았고 어차피 일부일처제가 법으로 강제되어 있는 사회에서 그런 얘기를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며 그 문제를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었다.
일부일처제에 대한 고민의 현실적 의미
하지만 그런 생각과 그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에 아예 의미가 없지는 않다. 간통죄가 폐지된 마당에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에게 '바람을 피우는 것'이라고 불리는 행위는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갖거나 양다리, 세다리, 문어다리를 걸치고도 뻔뻔스러운 건지 당당한 건지 모를 태도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일부일처제에 대한 논의를 하는게 법제도적으로는 바꿀 것은 없지만 이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연인과의 관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다처제가 있었던 시대적 환경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부일처제보다는 일부다처제가 보편적이었던 기간이 훨씬 더 길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조선시대까지 실질적으로 일부다처제 사회가 유지되지 않았나?
하지만 어떤 제도가, 사회적 관습이 유지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 본성에 더 적합한 제도"라고 할 수는 없다. 때로는 사회적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그리고 만들어지는 제도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일부다처제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의학이 지금과 같이 발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다처제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생존할 가능성, 남자와 여자가 생존할 가능성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해서 그런 제도가 자리를 잡았을 것이란 말이다. 실제로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많이 죽었기 때문에 일부다처제가 발달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처럼 일부 다체가 자리 잡고 있었던 시대에는 다양한 변수들이 있었다. '생존'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제도들을 놓고 '인간의 본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변수들을 배제해야 '인간 본성'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는데 그 시대를 그렇게 읽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남녀의 특성에 비춰봤을 때는 어떠할까?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고, 의학이 발전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한 국가에서 '생존'의 문제는 어느 정도 이상 해결이 되었고 '삶의 질'이 화두가 되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어쩌면 지금이야 말로 정말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연인과 부부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남자와 여자의 특성을 보고 있으면 일부일처제가 훨씬 '인간의 본성'에 맞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남자는 워낙 단순해서 한 사람 이상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마음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고 여자는 애초에 그렇게 '많은 남자'를 만나는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잘 모르지만 바람을 피우거나 양다리를 걸치면, 여자들이 그런 징후를 금방 읽어낸다는 사실에서도 이러한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남자들이 한 명 이상과 이성적인 측면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금방 탄로 나는 것은, 연애는 어쨌든 일상의 일부에 불과한데 남자들이 자신의 일을 하면서 양쪽 또는 한쪽에 자신의 생활의 일부를 완벽하게 숨기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완벽하게 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런 사람들은 그런 관계를 유지하는 게 '업'인 사람인 경우가 많고, 다른 본업을 하면서 연애를 하는 경우 그런 사실을 길게 숨길 수 있는 남자는 많지 않다. 본인이 숨겼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여자가 눈을 감아줬을 것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 남자들에게는 이렇듯 '온전히' 한 사람 이상의 여자에게 '집중'할 능력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자들의 경우 사실 남자보다 멀티태스킹 능력이 뛰어난데, 일부다처제가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일처다부제에 대한 욕망이 있는 여자는 많지 않은 듯하다. 실제로 일부다처제 사회에서도 한 남자가 다른 처를 더 사랑해서 이를 질투하여 암투가 벌어지거나, 본인의 남편이 자신에게 소홀히 해서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경우는 있어도 둘 사이의 관계가 원만한데도 다른 남자를 또 찾는 경우에 대한 전승은 (있긴 하지만) 많지 않지 않은가? 그리고 현실에서도 한 사람과의 사랑이 식어가는 과정에서 다른 남자를 같은 시기에 좋아하게 되는 경우는 많아도 양다리를 위한 양다리를 하거나 그런 욕구를 가진 여자들은 (있긴 하지만) 남자들보단 적은 듯한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이 남녀관계에 있어서 남녀의 특징에 비춰봤을 때는 남녀가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연애와 결혼에서도 가장 '인간 본성'에 맞는 제도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자에게든, 여자에게든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위해서 본인을 위해서 나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제대로 된 건강한 사랑을 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이는 건강한 사랑을, 연애를 하면 두 사람이 서로를 점점 깊게 이해를 하게 되고, 그에 따라서 서로를 품어줄 수 있게 되는데 그런 관계가 분산이 되면 깊은 관계를 두 갈래로 형성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밑 빠진 독 두 개에 물을 계속 붓는 것과 같은 관계를 형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간의 본성을 들먹이며 여기저기에 다리를 얹혀놓지 말자. 그리고 지금 만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만 집중하자. 사실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쓰게 되는 에너지도 만만치 않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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