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전에는 갈 줄 알았지
어렸을 때 나는 30이 되면 당연히 결혼을 했을 줄 알았다. 어머니께서 아들이 30이 넘도록 결혼을 못하고 있을지 모르셨다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30대 초반을 한참 전에 넘어서 이미 중반에 온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결혼'이라는 말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결혼이라는 단어는 물리적으로 식장에 들어갔다 나오고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혼인신고를 하고 같이 살기 시작하는 그 순간을 보통 의미하는데 결혼이라는 것 이후에 "가정"이라는 커다란 존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서른 즈음에야 깨닫게 됐기 때문이다.
서른에 결혼을 했다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주위에서 사람들은 보통 결혼식 준비와 예물, 집은 누가 하며 어떤 예식장에서 결혼을 하면 얼마가 들고, 밥은 얼마 짜리로 해야 하며, 축의금은 어떻게 해야 하고, 웨딩촬영과 청첩장, 사람들에게 어디까지 연락을 할 지의 문제들과 같은 물리적인 '결혼' 자체에 대한 얘기만 하니 나도 거기만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결혼'을 하는 것 자체도 굉장히 힘이 든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뒤에 결혼을 하는 것보다 더 힘든 본 싸움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 뒤에 있는 가정이라는 놈은 현실이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항상 그 사람이 옆에 있고, 아침밥을 같이 먹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저녁을 같이 먹고, 주말을 같이 보내며 우리 부모님 생신만 챙기기도 버거웠는데 이젠 상대 부모님도 챙겨야 하고, 양쪽에 균형을 어떻게 맞추며, 양가 중 누군가 어려우면 어떻게 헤야 하고... ... ...
가정을 꾸리는 것의 가장 어려운 점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이 모든 것을 '다른 집안 분위기와 그 안에서 평생을 보내온 사람들'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작은 것들이 문제가 된다. 수저를 어떻게 놓고, 아침밥을 어떻게 먹으며, 냉장고는 어떻게 정리하고, 자기 전에 씻는지 일어나서 씻는지, 신발은 어떻게 신발장에 넣는지, 옷은 어떻게 정리하는지 등...
예전에는 치약 짜는 방법 때문에 이혼한다는 게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그럴 수 있겠다 싶더라. 물리적으로 그것 때문에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서 부딪히고 힘들어하다가 그걸 계기로 폭발할 수 있겠다 싶었다. 양쪽이 아니라 한 쪽이라도 절대로 양보를 할 줄 모른다면 말이다.
그래서 확신을 했다. 내가 서른에 결혼했다면 지금은 돌아와 있을 것이라고. 빨리 돌아오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고 말이다.
가정을 꾸린다는 것
이렇듯 이제는 30대 중반인 사람들에서도 베테랑에 속하는 나이가 되어보니 현실을 너무 많이 봤고, 이제 머리로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더군다나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결심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20대 중후반에야 현실을 모르고 핑크빛에 서로 좋아서 할 수도 있지만 30대 초중반만 지나도 알건 다 아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결혼을 '결단'할까... 20대에서 30대 초반에 결혼한 친구들은 결혼을 무슨 결단까지 하냐고 하지만 그건 그들이 30대 중반의 싱글을 경험해보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30대 중반의 싱글에게 결혼은 비장한 결단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나이가 더 들면서 내가 누군가에게 어느 정도는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면서, 누군가와 같이 살 수 있겠다는 확신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고, 30대 초반에 있던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두려움은 희석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무엇보다 결혼의 나쁜 예가 아닌 좋은 예들을 보면 그들의 일상은 어떨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같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닌 사람과 매일 밥을 먹을 사람이 있는 건 어떤 느낌인지가 궁금하다. 또 아이를 낳은 사람들을 보면 매일 같이 나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생명체를 보는 건 어떤 느낌일지도 궁금하다.
상상만으로도 설레이는데 그 상상이 현실이 되면 얼마나 설레일까?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아무리 대들어도 어린 시절에 부모님께 드린 기쁨이 내가 난리 치는 양의 총양보다 더 크기 때문에 넘기실 수 있는 것이라는데 그 기쁨이 어떤 것인지 나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얼마나 많이 대들고 언성을 높였는데...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런 인간의 희로애락은 다 경험해보고, 이해할 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정을 꾸리는 것의 현실을 아는 상황에서는 사실 결혼 자체에 대한 환상보다는 누군가에게 기댈만한 나무가 되어주고, 내게 그런 나무가 생기는 것과 함께 경험하지 못한 경험과 감정들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때문에 가정을 꾸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야 건강한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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