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가 급하지 않은 사람들
20대 중반에 동아리에서 파트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연습이 끝나고 있었던 술자리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친한 후배 셋이서 진지하게 난상토의를 벌이고 있었다. 그 주제는 내가 왜 연애를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 그 결론이 궁금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의 결론은 내가 연애가 급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 순간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난 정말 연애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아주 가끔씩 그 시점을 돌아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 난 사실 연애가 우선순위에서 그렇게 높은 곳에 있지 않았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고, 그중에 연애가 포함되어 있었을 뿐,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안에서 만약 진지하게 우선순위를 꼽았다면 연애는 그렇게 높은 순위에 있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연애를 하는 대신 포기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라고 했다면 난 어느 것도 포기하지 못했을 것 같더라.
연애를, 결혼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당시 내 모습과 비슷하다. 하고 싶은 게 정말 많고 그 안에는 연애도 포함되어 있기에 '나는 연애가 하고 싶다'라고 말하지만 만약 '그 대신 뭘 포기할래?'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에 대해서는 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연애도, 결혼도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일이 많고,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일을 어느 정도 줄이지 않으면 연애도, 결혼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아닌가? 연애도, 결혼도 못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우가 꽤나 많다.
까다로운 사람들
물론 일을 정말 많이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연애와 결혼을 어렵게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렇게 까다롭지 않은 사람들이고, 두 번째는 까다로움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운이 좋아서 자신이 생각하는 성향의 사람을 쉽게 만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사실 후자의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부분의 경우는 전자에 속한다.
여기에서 '까다롭지 않다'는 것이 '눈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눈이 높아도 까다롭지 않은 사람들은 분명히 있는데, 굳이 비유를 하자면 그 사람들은 보통 상대에 대해서 A+적인 요소 한 두 가지만 충족되면 다른 요소들에 대해서는 크게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에 해당한다. 외모, 학력, 경제력, 집안 등에 대해서 한 두 가지 정도만 중요하게 여긴다면 사실 남녀불문 30대 초반까지는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생각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이는 보통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 주위에는 그와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서는 본인은 전혀 꾸미지 않으면서 상대의 외모는 엄청 의식하거나, 본인의 학력보다 과도하게 우월한 사람을 찾거나, 상대의 경제력을 갈취할 의사가 있는 등 자신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들은 상대를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닌 이상 한 두 가지 조건에 대해서만 기준이 높은 사람들은 일이 많고 바빠도 연애도 꾸준히 하고, 결혼도 어렵지 않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보다 연애, 특히 결혼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어떤 요소에 있어서도 최고일 것을 기대하지 않지만 적정한 외모, 적정한 학력과 경제력, 적정한 집안 분위기의 [조합]을 가진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외모도 단순히 예쁘다, 아니다 수준이 아니라 어떤 건 어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한선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기가 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그런 조건을 따지면서 자신이 상대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연령대의 싱글들이 많이 남아있는 30대 초반 정도까지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있지만 30대 중반 이상으로 가면 보통 일도 많아지고 조건도 잘 굽히지 않게 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게 그만큼 어려워진다.
자신에게 솔직해 지자
물론 여기까지 해당하는 사람들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 아예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결혼을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안'하는 사람들이니 위 내용에 해당사항이 있을 리 없다.
결혼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적나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돌이켜보니 내가 그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러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주위에서 나보다 조금 어리면서 '결혼하고 싶다'라고 하면서도 일 얘기를 해보면 사실 결혼이 우선순위에서는 크게 높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서 깨달아가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몇 년 전 나의 모습을 참 많이 닮아 있더라.
그런데 내 인생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고, 다른 영역으로 눈을 돌릴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더라. 그런 변화들은 대부분 내가 생각했던 것들에서 덜 중요하게 여겨도 되는 요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일어나고 있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씩 마음으로 포기가 되는 것이 느껴지면서 말이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먼 듯하다는 생각, 정말 이대로 더 나이가 들어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함께 들면서...
모든 것은 내 상태를 인지하고 인정하는데서 시작된단 것을 감안하면 그런 느낌과 생각이 들지 않은 사람들은 나보다도 더 결혼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결혼을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한번 정도는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연애와 결혼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예를 들면 '밝을 때 밝고, 차분할 때 차분한 사람' 같은 건 말도 안 되는 조건이 아닌가? 그건 결국 '내가 밝은 상대가 필요할 때 밝고, 차분한 사람이 필요할 때 밝은 사람'을 의미하는데 그게 연인이나 배우자를 원하는 것인가? 장난감을 원하는 것이지...
모든 현상은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결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다면 나 자신부터 돌아봐야 한다. 물론 남녀 모두 나이가 들어서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 수는 있다. 그렇다면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왜 본인이 가정을 꾸리지 못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새로운 방향으로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ps. 추신은 글에 처음 쓰는 듯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예시 외에도 사실 과거의 연애에서 큰 상처를 받아서 이성을 잘 믿지 못해서 연애 시작이 쉽지 않으신 분들, 그리고 연애경험 자체가 적어서 상대와 만나도 될지 망설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의 경우 내용에서 다루는 것이 오히려 그 분들의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을 듯해서 생략했습니다. 그런 분들의 경우 사실 본인이 상대를 믿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저는 감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사랑, 연애 그리고 결혼 > 결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정을 꾸리고 싶은 이유 (0) | 2020.05.29 |
---|---|
결혼할 때는 불편함이 중요하다 (0) | 2020.05.21 |
비혼 (0) | 2020.05.07 |
결혼, 꼭 해야 하나? (0) | 2020.04.30 |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 (0) | 2020.04.20 |